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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요13:1) 주님에게는 우리가 벌써 오래전에 잃어버린 ‘끝까지’라는 말이 죽지 않고 살아 있네요. 그것도 사랑을 말이지요. 철없는 제자들,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사랑해 주실 텐데 목이 맵니다. 한없이 가벼운 우리로서는 벅찬 게 사실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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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요12:27~28, 새번역) 시시각각 다가오는 폭력적인 죽음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주님의 마음도 편치 않았나 봅니다.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처럼은 아니더라도 이 같은 간곡한 소원의 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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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함께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던 [말씀 그리고 하루]를 묵상집으로 엮어 보게 되었습니다. 함께했던 말씀이니만큼 책 제목도 나누고 싶어 ‘현상공모’를 하려고 합니다. 좋은 題號로 새롭게 발간되는 책에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김명숙 전도사님이나 Facebook에 댓글로 남겨 주시면 됩니다. 추신: 1. 들풀교회 교우 아니어도 됩니다. 2.2015.3.29~4.11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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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겠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있어서 좋다. 외톨이는 넘어져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어 보기에도 딱하다. 그뿐이랴! 혼자서는 몸을 녹일 길이 없지만 둘이 같이 자면 서로 몸을 녹일 수 있다. 혼자서 막지 못할 원수도 둘이서는 막을 수 있다. 삼겹으로 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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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아마 맞을 겁니다. 갈수록 우리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주님 말씀처럼 기꺼이 죽으려고 하는 희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共産主義가 팽창할 때 한 공산주의자가 교회를 향해 도전했던 글입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말장난을 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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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 어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마리아는 누구의 눈치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중심이 명하는 데로만 할 뿐입니다. 무엇을 보았기에 무엇에 감격했기에 이리도 절절한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눈물이며는 눈물에 감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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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좋다’ ‘대단히 좋다'(Very Good) 그야말로 하나님은 감동과 감탄에 휩싸여 있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최초의 감탄사는 하나님 몫이었네요. 아담도 하나님에게서 배웠는지 하와를 맞이할 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1:28)이라 하면서 얼마나 크게 감격하고 있습니까? 죄가 들어오면서 계속 그러지 못한 게 아쉬울 뿐입니다. 감탄은 관계를 이어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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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 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 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엡4:32, 공동번역) 이 말만 귀담아 들어도 참 많이 달라질텐데요. 늘 엄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요? 항상 너그럽고 따뜻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근본 심성은 인색과 엄격보다는 어짐이어야 합니다. 너그러움은 상처와 아픔을 안아주고, 품어 주기 때문에 사람을 얻는 힘이 있습니다. (寬則得衆,관즉득중) 언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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