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요12:27~28, 새번역)
시시각각 다가오는
폭력적인 죽음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주님의 마음도 편치 않았나 봅니다.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처럼은 아니더라도
이 같은 간곡한 소원의 순간
다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위험한 초조함이 짙게 드리운
아슬아슬한 결정의 순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택의 결과가 힘들수록
옳은 뜻이라도
따르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러기에
‘아니다’는
주님의 이 한 마디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아마 이런 걸
‘믿음’이라고 하겠지요.
내 마음과 달라도
사랑하는 이의 뜻을 믿고 따라가려고 하는 마음,
예, 믿음 맞습니다.
흔들리는 거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지만, 믿음이 우리를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아니다’는 말 한마디 못해서
삶이 비굴해지고, 누추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다’는 말로
사람들에게 보이는 삶은 추락할지 모르지만
그 추락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추락이기에
아름다운 추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추락하는
아름다운 추락의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비켜주는 저 나뭇잎은
슬프지 않네.
남아 있는 이를 위해
미련없이 자신의 한 몸 떨구는
떨어지는 순간에도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저 나뭇잎의 아름다운 추락을 보면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만 매달려온
내가 부끄러웠다.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려온 나의 집착
억지만 부려 그대 마음 아프게 한
내가 부끄러웠다.
(이정하, 아름다운 추락,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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