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아마 맞을 겁니다.
갈수록
우리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주님 말씀처럼
기꺼이 죽으려고 하는
희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共産主義가 팽창할 때
한 공산주의자가 교회를 향해 도전했던 글입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말장난을 안한다. 우리는 현실주의자들이다. 일단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각오하면 그 수단을 획득할 줄 안다. 만일 당신이 복음을 실천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고 복음을 위해 시간과 돈을 희생하지 않는다면 누가 복음의 고귀한 가치를 믿겠는가? 우리는 공산당 메시지를 믿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런데 당신들은 손에 흙 묻힐까 두려워하고 있다.(데이빗 왓슨, 제자도)
이런 상황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주님은
영광과 높음의 열매만을 기대하는
제자들에게 一鍼을 놓고 있는 거지만
우리에게도 같은 一鍼을 가하는 중입니다.
주님의 논리는 분명합니다.
生則死, 死則生 입니다.
죽어야 살고,
죽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희생만큼 설득력이 강한 것도 드물 것입니다.
닫혀있던 마음도 기꺼운 양보와 희생 앞에서는
무장해제 되기 마련이니까요.
지금도
기꺼이 희생하려는 밀알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는 와서
죽으라고 명한다’는 본 회퍼의 말은
과격한 것 같지만, 여전히 진실입니다.
사과 씨 한 알에서
과수원을 보는 게 믿음이라는데
내가 하는 작은 섬김과 희생이
맺게 될 열매도 그려봤으면 좋겠습니다.
‘씨앗은 온갖 어려움을 다 겪어야 나무가 될 것이지만, 이 작은 씨앗 하나에서 100m 넘는 나무가 큰다'(신준환, 다시 나무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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