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 주일설교: 겨자씨 처럼 작아도(마13:31~32). 양은익 목사

 

말씀: 겨자씨 처럼 작아도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1-32)

12월 첫 주를 시작하는 주일 아침입니다. 교회력으로는 대림절 시작하는 귀한 주일 아침입니다. 감사한 아침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대림절 아침을 맞이하면서 ‘아.. 나는 참 작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뭔가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되지 못한 것을 보면서, 주변에 잘 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위축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에 안되는 것보다는 잘 되는 것을 원하고, 왜소하고 작은 것보다는 크고 번듯한 것이 더 좋아 보이고 마음이 더 끌리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겨자씨처럼 작아도’입니다. 이 시대에 ‘작음’이란 불편을 주고, 아픔을 주는 단어입니다. 그 작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작다고 하면 일단 실망하고 ‘에게’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어디를 기대감을 품고 갔는데, 작고 왜소하면 그 작음 속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애씀보다는, 겉으로 드러내놓고 실망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에게..하면서 실망합니다. 요즘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일단 작은 것에 대해서는 더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에게..하는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자기 자신의 작고 왜소함을 깨닫는 이들도 같습니다. 작음은 평가절하당하고, 하찮게 여겨집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물질에 중요한 가치를 두는 문명의 큰 흐름 속을 살고 있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감사한 것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세계에서는 세상 기준으로 하찮게 보이고 보잘것없는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 속에서 뭔가를 찾으려는 자세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휩쓸고 있는 세태 속에서도 세상 한쪽에서는 많은 반성을 하며,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작은 것들의 가치에 눈뜨는 신앙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것들의 가치를 쉽게 지나치지 마십시오. 사소한 것, 작은 것, 나의 일상의 삶들을 연말에는 세심히 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겨자씨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작은 것의 비유로 겨자씨가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겨자씨 비유를 했을 때 ‘에게’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를 물리쳐야 하는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드시는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의 역설입니다. 크고 강하게 압도하는 힘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겨자씨’를 말씀하십니다. 그토록 작은 겨자씨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와 맞먹는다 하십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작음’이 무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작음도 대접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찮게 보이는 것도 무시당하지 않고 좌절당하지 않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와 너무 다릅니다. 작음은 크게 무시당합니다. 권력자와 비권력 자의 싸움입니다. 작은 자와 큰 자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선포하십니다. 작은 것 속의 생명과 가능성을 살려내서 나무로 성장하여 새가 깃드는 풍성한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사람이 대접받는 나라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이 겨자씨입니다. 예수님의 스펙은 작은 시골 나사렛 목수가 스펙의 전부입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토록 작은 이가 작게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섬김, 사랑)이 세상을 삼키는 물결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 대제국을 무너뜨리려는 열망은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겨자씨 한 알이 해낸 것입니다.

작아 보이는 것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무시하면 안 됩니다. 갓난아기가 자라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기 속에 있는 생명이 자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앙인은 잘 대처해야 합니다. 세상 기준으로 작은 것, 큰 것을 대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세상 현상들을 평가할 때 세상 기준으로 하면 안 됩니다. 작은 씨앗이 바위에 뿌리를 내리면 바위조차도 깨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씨앗에는 드러내지 않은 미래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합니까? 씨앗에는 생명과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씨앗 안에 당신의 은혜와 사랑을 담아 놓고 있습니다. 소박한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작은 것으로 무궁무진한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보여줍니다.

[조금, A little]
설탕을 조금 가지고도 음식 맛이 달게 되네. 비누를 조금 가지고도 내 몸이 깨끗이 되네. 조금의 햇볕으로도 새싹이 자라네. 조금 남은 몽당연필로 책 한 권을 다 쓰네. 조금 남은 양초 하늘하늘 춤추는 불빛. 아무리 작더라도 불빛은 귀하지. (Elizabeth Novell)

정말 소박한 시입니다. 그러나 정말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작은 나와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시기에 무궁무진한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나약함을 압니다. 세상 속에서 힘들어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각자는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기쁨으로 동참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 기준에 사로잡혀 작음에 아파하며 전전긍긍하며 지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기에, 세상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너무 많이 영향받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A little’.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귀하게 보십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 작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함께해 주신다는 말씀을 받아 매일의 일상의 삶을 귀하게 잘 살아내야 합니다. 연말에 ‘아! 내가 정말 작구나!’ 실감할 때마다 일상의 삶을 잘 살아야 합니다.

삶은 일상의 삶과 비상의 삶으로 구성됩니다. 비상은 말 그대로 특별한 삶입니다.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짧은 시간에 큰 것을 이루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일상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설거지하고 밥 먹고 매일 매일 똑같이 반복되어 때로는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 일상입니다. 일상과 비상 중 어느 것이 삶에서 중요합니까? 일상이 더 중요합니다. 일상에서 실패하면 삶은 실패합니다. 일상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일상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제가 늘 말씀드리고 있는 것을 실천하셔야 합니다. 즉 하루하루를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갑자기 은혜받아 1 달 만에 성경을 다 통독하며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대하고 일상의 삶에서 매일 해야 할 것을 미루면 안 됩니다. 기도와 말씀의 매일의 삶은 나 자신을 매일 돌보는 삶입니다. 이렇게 겸비한 일상의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며 믿는 자들은 일상의 삶을 놓치면 안 됩니다. 비상한 일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능력이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일상의 힘입니다. 일상이 무너지면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며, 말씀 보며 성실히 겸비한 자세로 살아가십시오. 어느 날 문득 새들이 깃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상만을 바라며 일상을 놓치고 살면 새가 깃드는 넉넉함을 갖춘 성품에 이르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릴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4:4)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생 중 일어나는 모든 일 (그것이 비록 실패와 고통이라 해도) 중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실패와 아픔도 나를 이뤄가시는 섭리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제는 ‘나’입니다. 나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바로 핵심입니다. 중심을 잘 잡으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중심을 놓치면 안 됩니다. 작다는 것은 (경제적 문제든 이루지 못한 일들이든) 우리를 흔들리게 만듭니다. 오뚝이는 흔들리기는 하지만 중심을 금방 바로 잡고 다시 바로 섭니다. 우리도 오뚝이처럼 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중심을 잘 잡으시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는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흔들림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강하게 중심을 잡으십시오.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이목과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과 반대편에 섰던 사르트르가 정말 귀하고 깊은 말을 남겼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나를 타락시킨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넘어집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목사인 저도 약합니다.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들의 어려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버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타인들의 시선이 아픕니까? 우리의 약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벗어 나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메어남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수도사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너무 기준이 높은 것 같으십니까? 그러나 귀한 것이 담긴 말씀입니다. 무시하고 그냥 넘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보다 쉬운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을, 보다 맛있는 것보다 보다 맛없는 것을. 보다 즐거운 것보다 차라리 덜 즐거운 것을, 쉬는 일 보다도 고된 일을, 위로되는 일보다도 위로 없는 일을, 보다 큰 것보다 보다 작은 것을, 보다 높고 값진 것보다 보다 낮고 값없는 것을, 무엇을 바라기보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기를, 세상의 보다 나은 것을 찾기보다 보다 못한 것을 찾아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온전히 벗고 비고 없는 몸 되기를 바라라’

연말을 보내면서 이루지 못한 것들, 한없이 작은 나를 보게 되면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작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내 안에 심어 주신 겨자씨입니다. 그냥 가지고만 계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은총으로 키우셔야 합니다. 중심을 잘 잡으십시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말입니다. ‘너의 끈질김을 초과하는 것을 끈질기게 밀고 나가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라. 중단 속에서도 끈질기게 밀고 나가라!’

하나님의 사람도 넘어지는데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해줍니다. 도전받으실 분은 크게 도전받으시기 바랍니다. 더욱 크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은총이 우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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