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3. 주일 설교.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5:버킷리스트, 생명 예수(요일1:1~4). 양은익 목사.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5: 버킷리스트, 생명 예수(요일1:1~4)

1.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새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이어령, 정말 그럴 때가, 부분)

노년의 감정을 나타내는 장면입니다. 노년의 때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고, 외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노년의 때에 이런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노년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 사도의 노년은 대단히 전투적이고, 열정적입니다. 자신의 경험, 자신의 신앙, 자신이 발견한 삶의 가치들을 충만한 기쁨을 가지고 일필휘지, 요한 문헌을 통해 남겼고 오랜 세월 지났지만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기적같은 일입니다.

2.
요한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생명 예수’ 때문입니다. ‘생명 예수’ 라는 말은 예수님에 대해 요한이 알게 된 사실로 인해 요한이 가지게 된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듣고 보고 만지고 함께 했던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절 끝입니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이해하기 쉽지 않고, 고백하기도 쉽지 않은 사실인데도 요한은 끊임없이 이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던 요한복음도 이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예수님에 대한 일대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다’라는 사실을 명토박고 시작합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한번 더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요한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알리고 싶었고, 그 이름으로 얻는 생명을 얻게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초대교회 어떤 이들보다도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아보고 그 사실에 감격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이 고백은 요한만 한 건, 아닙니다. 성경 자체가 이 사실을 말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셨고, 결국 이것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성육신은 믿음으로 밖에 받을 수 없는 신비의 사건이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는 분들에게는 받을 수 없는 사건이지만 성육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성육신 신앙이 주는 구원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대충 넘겨서는 안되는 신앙의 고백이고, 신앙의 베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과 낮아지심이 베어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건입니다.

3.
성육신이 의미하는 바를 한자 단어 두개로 말하면 同病相憐과 易地思之입니다. 이 둘 다 깊은 이해와 사랑이 있을 때 나오는 모습인데, 성육신 속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동병상련과 역지사지가 들어 있습니다.

동병상련은 함께 아파 하는 것입니다. 함께 아프기에 아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래서 위로가 됩니다. 동병상련은 위로의 출발입니다. 히2:18절 입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가재 개편이듯 주님은 우리편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당신도 고난을 받아 우리의 고난이 무엇인지 뼈속까지 알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맙고, 귀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지사지의 마음이 만든 사랑의 실천이고, 구원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 편에 서신 역지사지의 극치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 인해 시작됐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의 엄중함과 과정과 방식을 빌2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무한자가 유한자가 되는 방식으로 , 가장 존귀한 분이 종이 되는 방식으로,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은 자가 되서 무력하게 죽는 방식으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은 동병상련과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마음이고, 이 예수님의 마음이 생명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하여, 생명을 경험하고, 삶에서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고 싶으면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 깊게 ‘예수의 마음’, 성육신의 마음, 동병상련의 마음, 역지사지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생명’을 만들어 냅니다. 세상에 만연한 자기 강화, 자기 주장으로는 생명이 나올 수 없습니다. 뭔가 간절한 것이 있는 분들은 이 마음을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4.
사도 요한이 인생의 끝자락에서도 열정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섬김과 사랑과 십자가가 만들어낸 놀라운 ‘생명’을 봤기 때문입니다. 전해주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어떻게 보면 사도 요한의 버킷리스트나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이 죽는 순간까지 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사 자신이 보고 듣고 만져서 알게된 생명의 예수를 더 깊게 알고, 만나고, 누리고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알라. 그분을 만나라, 그분 안에 빠져라, 그분 안에 머물라’. 그의 버킷리스트입니다. 좋은 버킷리스트 많이 가지십시오. 하지만 제일 먼저 가져야 할 버킷리스트는 생명 예수가 되면 좋겠습니다. 예상을 깨는 노년의 삶이 나타날 것입니다.

생명 주시는 주님 정말 좋아하고 싶습니다. 주님 하신 모습 그대로 따라하고 싶습니다. 걱정이 생기면, 주님처럼 들의 백합화, 공중의 나는 새를 보면서 힘을 내고 싶습니다.미움이 생기면 복수의 칼을 갈지 않고 용서를 말씀하시던 주님의 호기로움도 따라하고 싶습니다. 불의한 도시 예루살렘을 보면서 흘리셨던 예수님의 뜨거운 눈물도 흘리고 싶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서 천국도 가지고 싶습니다. 애통하는 자 되서 하늘의 위로를 많이 받고 싶습니다. 마음이 청결해서 하나님을 밝게 보면 좋겠습니다. 팔복이 전부 내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성부 하나님께 나가 온 힘을 다해 기도하시는 주님 처럼, 저도 그렇게 해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주시는 놀라운 힘을 받고 싶습니다. 어려서부르던 찬송 지금도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님 따라 살기로 했네. 예수님 따라 살기로 했네. 예수님 따라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얼마나 멋있는 버킷리스트입니까? 성육신하신 주님의 사랑과 생명을 마음에 품고 사는 아름다움이, 나이 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꿈이 되고, 삶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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