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0. 주일 설교.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 6: 참회, 영혼을 다시 푸르게(요일1:5~10). 양은익 목사.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 6: 참회, 영혼을 다시 푸르게 (요일1:5~10)

1.
‘빛은 상처난 곳을 통해 들어온다’고 합니다. 신비하고, 감사하지요. 13세기 시인 루미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상처는 고통을 주지만, 고통만 주지 않고 빛도 줍니다. 상처를 통해 받은 빛은 더 따뜻하고, 더 환합니다.

요한일서를 보면서 해질녘 묵상을 하고 있지만 우리 노년의 삶이 우울과 상처와 후회와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은 흔적을 남깁니다. 좋은 흔적도 남기지만 힘든 흔적들도 많아서 가슴 한켠에 쌓이고 쌓여 힘들게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베드로 보세요. 절대 부인하지 않을 거라고 큰 소리 쳐놓고 허망하게 무너진 자신을 볼 때 얼마나 부끄러워겠습니까?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오래도록 남아서 트라우마처럼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베드로 못지 않은 ‘부끄럽고’, 생각하면 ‘낯 뜨거운’ 모습이 없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살펴보십시오. 그동안 ‘하나님’에게, ‘타자’에게, ‘자신’에게 어떤 ‘부끄러운’ 모습이 있었습니까? 어떤 장면들이 떠 오르십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과거의 일이고, 벌어진 일이니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에게는 드러내지 못해도, 하나님과 자신에게는 밝히고 드러내서, 의식 깊은 곳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과거의 ‘부끄러움’들, 마음의 짐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은 해질녘의 삶에 꼭 있어야 하는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면서 아파했던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윤동주의 서시에도 이런 마음이 잘 나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부끄럼’이 있기에 잎새의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하지만 그래서 더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럼 없기를 시인은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부끄럼’을 느끼면서 기도한 장면도 감동적입니다.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시51:10~12). 자신에게 있는 부끄러움과 낯 뜨거움을 변명하지 않고 ‘참회’하면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사 ‘영혼을 다시 푸르게’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2.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신실하고, 의로우셔서 영혼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와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발견한 사실이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새번역)

여기서 ‘죄’를 ‘부끄러움’으로 바꿔서 읽어도 됩니다. 평생에 가지고 있는 부끄럼이 있지만, 그 부끄러움을 자백하고, 고백하면, 예수의 피까지 흘리게 하신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나의 부끄러움을 사하시고 그 모든 불의와 낯 뜨거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게 많은 우리들이 항상 품어야 하는 말씀이고, 확신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겸허하고 진실되게 자신의 죄와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용서와 회복을 구할 때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능력과 사랑과 권세가 있으십니다.

우리는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사랑에 마음을 열고, 참회가 필요할 때, 진실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참회가 부끄러움(상처.짐,트라우마)을 극복하게 해서 영혼의 푸르름을 가져 오게 합니다.

오늘 본문 1:5-10절에서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하여 빛되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고 사는 이들은 어둠이 아닌, 7절, 빛 가운데 살라는 것입니다. 설사 죄를 범한다 해도 8절, 죄 없다, 10절, 죄 짓지 않았다 하지 말고 겸허하게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불의(부끄러움)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귀한 발견이고, 믿음이고, 고백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보화같은 은혜고 특권입니다. 참회는 나를 살리고,모두를 살려내는 숭고한 행위입니다.참회하는 자가 많으면 가정, 교회, 사회가 살아납니다. 번성합니다. 참회하는 자가 없으면 죽습니다. 약해집니다. 자기 주장과 자기 합리화만 넘쳐 납니다. 갈등만 넘쳐 납니다.

참회를 평가절하하지 마십시오. 참회는 세속의 허영과 죄성에 무너졌던 부끄러운 자신을 보면서 그대로 무너지지 않겠다고 하는 뜨거운 몸짓, 깊은 갈망입니다.

사람은 종잡을 수 없는 착잡(錯雜)한 존재입니다. 겉과 속이 다를때가 많습니다.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르고,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릅니다. 양보와 욕심이, 선과 악이 섞여 있습니다. 좋을 때는 한없이 좋은데, 엇나가면 너무 힘듭니다. 나도 나를 잘 모릅니다.

그러니 부끄러운 일은 생길 수 밖에 없고, 참회를 안 할 수 없습니다. 다 참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참회가 주는 선물은 너무나 귀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넉넉해 집니다. 관용의 폭이 커지고, 푸근함이 있게 됩니다 용서할 수 있게 되고, 사랑과 섬김, 절제의 마음이 깊어집니다. 영혼이 순수해 지고, 푸르게 됩니다.

3.
청년의 때에도 참회는 귀하지만 결산의 때를 살아가는 노년의 참회는 더 귀하고 복됩니다. 참회만큼 아름다운 결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참회를 통해 하나님은 깊게 위로해 주시고, 인생의 모든 부끄러움에서 자유함을 주십니다.

참회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사귐을 갖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하고, 삶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게 참회입니다. 미안하오. 고맙소. 감사하오. 이어령 선생이 딸이 시력을 잃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그때서야 참회를 했다고 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수 많은 약속을 깨고, 늘 자신의 뒤통수만 보여 줬던게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딸의 시력이 있을 때 단 1초라도 자신의 사랑을 더 보여 주고 싶었고, 이것이 자신에게는 참회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참회를 하고 싶으십니까? 하십시오. 깊은 사랑을 가지고, 진심을 다해 참회하면 하나님도 사해 주시고, 나의 아픔도 치유되고, 참회를 받는 이들도 기쁠 것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참회시가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로써 감당하던 시대는 갔다.
우리들은 모두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별이 되어
몸으로 올라, 몸으로 올라
온 몸으로 통곡하는 것이
이 시대의 감동이다.

봄이 오면
내 기다림과 부끄러움을 말하리라
새벽이 오면 나는 꿇어앉아 기도하리라.

봄이 오면 우리도 꿇어앉아 온 몸으로 기도하면서 부끄러움을 말하십시다. 하나님은 참회하는 우리에게 영혼의 푸르름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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