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변화 1: 나(我)에서 하나님으로 (시77:1~15)
1.
말씀 제목이 ‘절실한 변화’입니다. ‘절실’이라는 단어는 꿰뚫어 봐야 하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꿰뚤어 보십시오. 꿰뚫어 보면 절실함의 뒤에는 아픔이 있고, 절실함의 앞에는 기대와 소망이 보이실 겁니다. 아픔과 힘듬이 있기에 절실하고, 그 절심함이 힘이 되서 아픔의 상태에서 새로워지려고 하는 기대와 소망을 품게 됩니다.
절실하지 않은 때가 있을까요? 힘들때는 힘들기에 절실해야 되구요, 잘 될 때는 잘 됨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절실해야 합니다. 절실하게 되면 많은 것을 회복할 수 있고, 받을 수 있습니다.
절실함과 간절함을 노래하는 신달자 시인의 시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 무엇 하나에 간절할 때는 등뼈에서 소리가 난다…두 손과 손 사이에 깊은 동굴이 열리고, 머리 위로 빛의 통로가 열리며, 신의 소리가 내려온다. 오직 간절함, 그 안으로 동이 터온다’ (간절함. 부분)
절실함이 주는 선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80을 앞둔 시인이 최근에 발표한 시입니다. 살면서 간절하고, 절실할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등뼈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힘든 순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절실함이 주는 선물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깊은 동굴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고, 신의 소리가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절실해야 할 때는 절실해야 합니다. 그 간절함을 통해 동이 터 올라 밝음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많은 곳에서 경보음이 들리고 있기에 ‘절실함’을 말하게 됐습니다.
2.
곳곳에서 ‘절실한 경보음’이 들리고 있는데 우리가 듣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절실하게 들어야 나라도, 가정도, 교회도 살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다른 세상이 되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BC와 AC로 나누고 있을 정도입니다. BC는 Before Corona, AC는 After Corona입니다. 그 정도로 다른 세상이 됐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는 그 막강한 힘으로 세상을 바꿔 놓고 있습니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었던 것을 정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누가 마스크 쓰고 예배할지 알았습니까? 이제는 마스크를 벗으면 안됩니다. 마스크를 쓰는게 새로운 기준, 새로운 표준, 뉴노멀(New Normal)이 되버렸습니다.
뉴노멀은 코로나로 인해 만들어 지고 있는 새로운 기준입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반증이고, 새로운 기준과 삶의 방식을 만들어야 생존할 수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전과는 다른 뉴노멀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왔습니다. 버릴 것 있으면 확실하게 버려야 합니다. 지켜야 할 것은 더 확고하게 지켜야 합니다.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절실하게 변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몇 주간 동안 살펴보면서 코로나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신앙의 위기들을 극복하는 도전과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3.
절실하게 변해야 할 첫번째는 신앙의 중심입니다. 신앙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보통 두 가지 중심을 말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신앙이 있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의 중심이 ‘나’에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으로 절실하게 이동해야 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신앙의 중심이 ‘내’가 되도 그럭저럭 넘어 갈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지 못하면 신앙의 삶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배가 이전 같지 않은 시대입니다. 성장보다는 침체가 일상이 되는 힘겹고, 두려움이 가득한 시대입니다. 경제적인 고통이 심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는 내가 중심이 되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중심이 될 때 온전하고, 강해집니다.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신앙의 중심을 이동시켜야 합니다.
오늘 시편 77편을 읽은 이유는 시인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이 어떤 사람인가 한번 추측해 보십시오.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 같습니까? 못하는 사람 같습니까? 잘하는 사람입니다. 힘들 일을 당하고 있는게 분명한데 그런 순간에 1절.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2절, 하나님을 찾았고, 7절, 9절. 하나님의 은혜와 8절. 자비와 9절, 긍휼을 구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좋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이런 신앙의 사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흔들리는 이유는 합당한 기대를 품고 기도했지만 그 기대가 깨지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신앙의 공식에 균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7절부터 9절까지 의문문이 나옵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절망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1절부터 6절까지 나오는 ‘나’라는 말을 세 보면 대단한 자기 중심적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로 도배되 있습니다. 내가. 내가. 내가. 자신에 몰두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도와 기대와 소원에 따라야 한다는 강한 의지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뱉는 독백이 10절입니다. 10절은 번역하기 어려운 구절인데 영어 성경을 중심으로 번역해 보면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그 때- 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나를 괴롭힌다. 곧 지극이 높으신 분의 권능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JB). ‘내가 말했습니다. 그의 오른손이 잡을 힘을 잃어버렸는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팔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가?’(NEB)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뭐 이래!’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해 주시지 못하는 거야!’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성을 강하게 가진 신앙인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고, 부족함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셔야 되고, 만족시켜 주셔야 합니다. 필요해서 그럴수 있습니다. 하지만 습관이 되고, 당연한 것 처럼 여겨지게 되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기 중심의 영성과 신앙은 커질수록 잘못됩니다. 잘되면 자랑과 위선이 들어오고, 원하는 대로 안되면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교회를 타락시키고, 신앙을 욕망의 도구로 만드는 주범입니다. 자기 중심성을 버려야 우리의 판단과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인도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종교성과 죄성은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성경은 자신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신앙의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것.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불안정하고,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 자리에 설것을 요구하고 계시고, 그렇게 당신을 중심으로 삼는 자들에게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4.
시편 77편에서 10절은 갈림길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하고 힘들어 하는 그 때, 어느쪽으로 갈 것인지를 새롭게 정해야 합니다. 다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삶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자신보다 크신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돌릴지, 선택해야 합니다.
갈림길에서 이 시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로 방향을 틉니다. 11절 부터는 그렇게 많이 나오던 ‘내가’ 사라져 버립니다.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크심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일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중심을 극적으로 이동시킵니다.
11절 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읆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우리의 고백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동일한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갈림길 왼쪽에는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올드 노멀(Old Normal)이 있고, 오른쪽에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뉴노멀(New Normal)이 있습니다. 우리가 갈 길은 뉴노멀입니다. 높으신 분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무리 봐도 무력한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 보다 백배 천백 낫지 않겠습니까?
5.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 전 세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쎄지 않습니다. 폼 잡아 봤자 잠깐입니다. 한번의 유혹을 못 이겨서 평생 이루어 놓은 것 다 날려 보내는 게 사람입니다. 내 감정 내가 주체하지 못하고 넘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나를 중심에 두면 안됩니다. 우리의 중심에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중심을 두고 깊게 따라갈 때, 비록 그 길이 세상의 길과 달라 댓가를 지불하는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 따름 속에 구원이 있고 승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가야 할 길을 다시 정해야 하는 중요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실패하지 말고, 하나님 쪽으로 확실하게 돌아서면 좋겠습니다.
이사야서 43:1절 말씀입니다.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신다.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신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코로나 시대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분명히 구속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나를 중심에 두는 삶을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사는 절실한 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믿고 사는 복된 은총으로 살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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