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23. 주일 설교: 성품론 8. 자비(갈5:22~23, 삼하9:1~13). 양은익 목사

 

 

성품론8: 자비(갈5:22~23. 삼하 9:1~13)

1.
성탄절이 바짝 다가왔습니다. 귀한 계절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는 5번째 성품인 자비입니다. 성탄 절기에 필요한 성품인데 잘 새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자비에 대해서 보기 전에 신경림 시인의 동시 하나 읽고 가겠습니다 [꼬부랑 할머니]라는 동시인데 자비에 대한 그림을 선명하게 그려주고 있는 따뜻한 시입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일곱 밤을 자고서 일곱 손주 만나러. 한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길 잃고 밤새 헤맨 아기 노루 먹으라고. 두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먹이 없어 내려온 다람쥐 먹으라고. 세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알 품고 봄 기다리는 엄마 꿩 먹으라고. 네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동무 없어 심심한 산토끼 먹으라고. 다섯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눈 속에서 병든 오소리 먹으라고. 여섯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외로워 짝 찾는 산비둘기 먹으라고. 일곱 고개 넘어서니 일곱 손주 기다리는데 두부는 안 남고 한 모밖에 안 남고.

할머니 마음이 참 좋지요. 하나 둘 떼 주기 시작하다 한 모밖에 안 남았지만, 손주들은 나중에 또 해 주면 되는 일, 눈앞에서 배고파하는 녀석들 먼저 주었다는 넉넉한 얘기입니다. 자비가 뭐냐 할 때 이 할머니의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이 자비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잘해 주려는 마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비고,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6번째 성품인 양선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없으면 안되는 소중한 마음들입니다.

2.
시인 정현종은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는데 자비가 없으면 사람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놓치게 됩니다. 사람을 거부하고, 올 수 없게 하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전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한 사람의 일생이 오고, 부서지기 쉬운 여린 마음이 오는 겁니다. 그런 대단한 이들을 환대와 자비로 받아들이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일대학 교수였다가 장애인들과 함께했던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 [영적 발돋음]에서 세 가지 발돋음을 말합니다. 자신을 향한 발돋음, 다른 이를 향한 발돋음, 하나님을 향한 발돋음을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발돋음은 받아들임입니다. 자신과 너와 하나님을 거부하지 않고, 넉넉하게 받아들일 때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는 환대와 자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삼각형 한 번 더 그려 보겠습니다. 오늘은 자비의 삼각형입니다. 자비라고 하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는 나에게 자비하고, 너에게도 자비하고, 하나님께도 자비할 때 풍성한 자비의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

세 꼭지 중에 한 꼭지라도 부족하게 되면 자비는 약해지게 됩니다. 너를 보는 게 불편하게 되면 자신에게도, 하나님에게도 환대하기는 어렵게 됩니다. 하여, 자비의 발돋움, 환대의 발돋움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발돋움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3.
어떻게 하면 자비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 얘기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모습에서 몇 가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라
3절 보십시오.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다윗이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겠다. 하나님의 친절, 자비를 베풀겠다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까? 사울 집안에 남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건 그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얘기입니다. 당시에는 정적 관계에 있던 사람과 가족은 새 왕이 들어서게 되면 몰살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근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면서 죽이려고 했던 사울 집안사람들을 찾아서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혜택을 누가 받게 됩니까?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받게 됩니다. 보세요, 다윗은 꼬부랑 할머니 처럼 모질게 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다윗도 당할 만큼 당한 사람 아닙니까? 근데도 꼬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가 아니고 ‘당했지만, 그럼에도…’ 입니다.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호의, 친절, 환대, 자비 때문이고, 다윗은 그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받았던 자비, 은혜를 생각하면 모질게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사랑을 누가 잘한다고 합니까? 다는 아니지만 사랑받아본 사람이 사랑도 잘한다고 하는데, 자비도 똑같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비, 누린 자비를 아는 사람이 하는 자비도 잘할 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받은 자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그런데도’의 ‘속 깊은 자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비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2) 빚진 자 의식을 가지라.
또 하나 자비의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빚진 자 의식, 채무자 의식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계속해서 반복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울 집안사람들을 찾아서 은총을 베풀려는 이유인데… 1절.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7절에 또 나옵니다.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 왕의 아들 아닙니까? 근데도 다윗을 계속해서 도와줍니다. 목숨도 구해 줍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받았던 자비, 환대, 친절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다윗의 자비함 밑에는 요나단의 자비가 있었던 겁니다. 자비가 자비를 낳고 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빚을 진 겁니다. 자비의 빚. 그리고 그 빚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갚는 것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내가 다했다. 내 힘으로만 살아왔다’라는 마음으로 차 있으면 그런 마음에서 나올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근데 그렇지 않전아요. 독불장군이 어디 있습니까? 저 사람이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에게 빚지고 사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질 수는 없더라도,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는 없으면 안 됩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한번 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빚졌습니다’. 빚졌다 했으니 자비와 환대로 갚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3) 가족 의식을 가지라.
자비의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의식입니다. 콩가루 집안이 아니라면 가족은 선대 해야 하고, 환대하는 게 맞는 겁니다. 탕자 보세요. 죽지도 않은 아버지 유산 받아서 나가 버리전아요. 얼마나 못됐습니까! 근데도 아버지는 그 아들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정말 돌아오니까 너무 좋아서 달려가서 안아 주고, 잔치까지 열어 줍니다. 아들이고, 가족이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나만 있으면 자비는 나오기 힘듭니다.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 깊어질 때, 너를 향한 발돋움이 일어날 때 환대와 호의가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난 나고, 넌 너다’ 이러면 힘들어집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대하는 것 보십시오. 정말 잘해 줍니다. 므비보셋에게 세 가지를 해 줍니다. ① 몰락한 왕인데도 사울의 집안 재산 전부 돌려줍니다. ② 사울 왕의 종이었던 시바를 불러서 몸이 불편한 므비보셋을 돌보게 해 줍니다. ③ 항상 자신과 함께, 그러니까 왕과 함께 식사하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가족 하자는 것입니다. 대단한 자비고, 얼마나 따뜻한 환대입니까! 근데 여러분들, 이런 자비와 선대를 우리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다윗이 므비보셋을 향해 가지고 있던 마음과 하나도 다를 게 없습니다.

예, 우리도 이런 자비의 마음 가지면서 살아 가십시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의 자비와 환대가 많은 이들을 복되게 하고, 기쁘게 할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 보셨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한국 사회에, ‘너에 대한 알레르기’ ‘타자에 대한 알레르기’가 심하다고 합니다. 걱정입니다. 내 편 아닌 사람들, 내 진영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가려우니까 자꾸 긁지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비가 서로에게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다 삽니다. 선민의식이 과하면 언제나 이스라엘처럼 돼버립니다. 망합니다. 역사의 경고인데 그걸 보지 못하면 안 됩니다. 성탄 계절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환대와 자비의 정신이 필요한 날들인데, 각자의 삶에서 자비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마음 활짝 열고 베푸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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