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 주일 설교. 성품론 7: 오래 참음(인내)(갈5:22~23. 약 1:1~4). 양은익 목사.

 


성품론 7: 오래 참음(갈5:22~23. 약 1:1~4)

1.
오늘은 강아지 사진입니다. 네 녀석이 문 경계선에서 들어가지 않고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옆에는 휠체어가 놓여 있습니다. 이 휠체어는 이 녀석들을 돌보는 주인의 휠체어입니다. 강아지들이 있는 곳은 브라질의 한 병원 앞이고, 강아지들의 주인은 세자르라고 하는 노숙자라고 합니다. 주인이 새벽 3시경에 급하게 병원에 와 치료를 받고 있을 때 따라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찍어서 올린 겁니다.

1시간가량 치료를 받고 갔다고 하는데, 직원들이 가라고 쫓아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주인 나올 때까지 계속 끈기 있게, 참으면서 기다리다가 주인과 함께 갔다고 합니다. 이 녀석들, 전부 잡견 같은데 왜 이토록 끈질기게 참고 기다렸을까요! 사람 마음도 모르는데 개 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지만 참고 기다리는 모습만은 기특하고, 예뻐 보입니다. 잘 기다렸다, 주인과 함께 신나게 가는 모습을 그려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장면 잘 담아 두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주제는 ‘오래 참음’ ‘인내’ ‘기다림’입니다. 4번째 열매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품인데, 어떤 성품보다도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실하고, 필요한 성품입니다. 필요한 이유는 다 아실 겁니다. 참아야 할 일이 너무 많고요, 또 참아야 하는데 참지 못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부 사이에 참지 못하다가, 성도들끼리 참지 못하다가, 유혹과 죄를 참지 못하다가, 먹는 거 참지 못하다가, 기다리는 것 못 참다가 어떤 일들을 겪고 있나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오래 참고, 인내하는 편이시지요! 성경은 우리에게 참아내지 못하는 쪽 보다 참아내는 쪽을 택하라고 계속해서 얘기를 합니다. 인내하는 게, 인내하지 못하는 성품보다 낫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꼭 하게 되는 후회 세 가지다 알고 계시지요. ① 좀 더 베풀걸, ② 좀 더 기쁘게 살 것, ③ 좀 더 참을걸.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많습니다.

2.
오늘 본문 4절에서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인내를 ‘온전히’, ‘끝까지’ 이루어 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인내하게 되면 인내가 빛을 발해서 부족한 것이 별로 없는 괜찮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야고보 장로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살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믿음 때문에 흩어져 쫓겨 다니면서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그럴지라도 잘 참아내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내’라는 값진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내는 씁니다. 하지만 인내가 주는 열매는 ‘달콤’합니다.

유대 여성 사상가인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가 한 말입니다. ‘기대감을 갖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영적인 삶의 기초다’. 참음을 신앙의 기초로 보고 있습니다. 경험으로 봐도 신앙생활은 인내고 참음입니다. 오래 참음 없이, 인내 없이 신앙의 삶을 살 수 있는가 보십시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 세 개가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세 단어가 없으면 우리는 안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언제 필요합니까?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필요합니까? 그때도 필요하겠지만 이 세 단어는 우리가 힘들 때 필요한 단어들입니다. 인내의 삼각형을 보십시오. 삼각형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픔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갖는 아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 하나님이 침묵할 때 우리는 실망합니다. 나는 나의 부족함 때문에 마음이 쓰입니다. 이것 밖에 안되는가? 너를 향해서는 네가 잘해도 화나고, 못해도 화날 때가 많습니다. 떠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때 필에 한 것이 바로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부재할 때 하나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소망은 실망한 자신을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 소망입니다. 사랑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이들을 참아 내는 것이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인내의 세 얼굴이고, 신앙적 삶의 기초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재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 나에게 실망할 때, 너에게 화날 때 우리는 인내와 참음을 통해 새벽하늘 저 멀리서 아스라이 동터오는 아침 햇살 같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라는 은총의 햇빛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없으면 정말 많은 것이 무너집니다. 신앙의 길은 순례의 길이고, 순례의 길은 인내의 길입니다. 어둠을 뚫고 나가는 길인데 그때마다 인내가 우리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부재의 하나님이지만 다시 받아들여 하나님을 체험케 하고, 나를 용서하고, 너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없으면 안 됩니다.

영어로 오래 참음을 long-suffering으로 번역한 성경이 있습니다. 참음을 고통으로 본 것입니다. 이 자리에 믿음의 문제로, 자신의 문제로, 너에 대한 아픔으로 힘든 분들 있다면 포기하지 마시고, 인내의 자리, 오래 참음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없음이 하나님 있음으로, 나에 대한 실망이 희망으로, 너에 대한 미움이 사랑과 평화로 변화되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3.
물론 이런 우리를 세상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인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참으라고 하지 않고, 싸우라고 합니다. 참는 대신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합니다. 기다릴 여유가 세상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면 떠나고, 나에게 실망하면 되는 대로 살고, 너에게 속상하면 싸우던지, 떠나든지. 오래 참음이 사라진 풍경은 절대 아름답지 않습니다. 인내가 사라지면 어떤 그림이 그려집니까? 넉넉함 대신 짜증, 고함, 갈등으로 꽉 차 있습니다. 지금은 어딜 가든 기다리게 하는 것은 대역 죄입니다. 시간이 돈인데 기다리게 했으니 당연히 죄지은 겁니다. 고함칠만합니다. 이런 일들이 차고 넘칩니다.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영혼의 만족이 없는한 사람에게는 참아 낼 힘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내가 하나님 안에서 누구이며, 내가 어떤 존재로 서 있는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한 참아 낼 힘이 없습니다. 오래 참는 것은 명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신자이니까 오래 참는다. 천만에요. 목사니까 오래 참는다. 아닙니다. 잠깐은 참을 수 있지만 오래 참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오래 참음을 성품으로 가져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면 하나,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내가 존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깊은 이해와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인내하는 삶을 살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울의 고백대로 죄인 중의 괴수 같은 나를 참아 주셨고(딤 전 1:15~16),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웹 5:1) 여겨주셨다는 것을 실감 나게 알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과 나와 너에 대해 오래 참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골 3:12이하 보고 가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인내하고, 오래 참아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내가 갑자기 성인군자가 돼서 참는 게 아닙니다. 극진한 사랑을 받았기에, 극진한 용서로 기다리며 인내해 주셨기에 나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어서 인내하는 수준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인내와 오래 참음은 신적 사랑에 깊이 감동한 이들이 할 수 있는 고급한 경지고, 고급한 성품입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들 마음에 더 깊게 다가와 감동하고,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그 감격이 클수록 인내의 힘은 강해질 겁니다.

4.
① 내 안에 있는 괴력(괴물)을 조절하십시오.
우리 안에는 폭발하는 괴물, 분노가 살고 있습니다. 감정의 폭주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는지, 어쩌면 그렇게 뻔뻔하고, 못된 짓을 하는지. 보다 보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돼버립니다. 나도 너도 내 안에 있는 괴물을 잘 조절해야 됩니다. 그래야 참아낼 수 있습니다.

② 서로의 어긋남에 틈을 주십시오.
사람의 삶에는 언제나 어긋남이라는 게 있습니다. 나와 너는 같을 수가 없고, 나와 하나님의 생각은 일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내가 생각하는 때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내의 삶을 살려면, 이 어긋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에게 틈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만회할 틈,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볼 수 있는 틈이 필요합니다. 틈을 주지 않으면 오래 참을 수가 없습니다. 관계의 상처는 오래 참지 못하는 틈을 주지 않는 나로 인해서 깊어지는 면도 없지 않고 있습니다.

③ 지는 법을 배우십시오.
인내하려면 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기려고만 하면 오래 참기 힘듭니다. 지는 거, 잘 배우면 넉넉해질 수 있습니다. 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잘 지십시오 그게 지혜고, 잘 지면 잘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짧은 인생입니다. 짧기에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사는 매우 중요한 길 중에 하나가 오래 참음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이 볼 때 참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어떤 것도 오래 참아내지 못하고, 인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진실을 기억하면서, 오래 참음의 열매를 요청하는 말씀의 도전을 깊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인내할 일은 쌓여 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인내입니다. 지금까지 인내로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들에게 경의와 존경을 드립니다. 더 잘 인내하셔서 영광과 기쁨의 면류관을 여러분들의 머리 위에 ‘꼭’ 얻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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