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변화 4: 지배권, 하늘에 속한 삶(엡2:1~10)
오늘 교회 오시면서 하늘 보셨나요? 높고 푸르른 하늘입니다. 시편 8장1절 말씀처럼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를 고백하게 되는 감사한 계절입니다. 작은 일상에서 감격하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이 가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금 신자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신분이 변하면 첫째, 생각이 변화되어야 하고 둘째,언어의 변화가 일어나 새 창조의 언어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힘의 교환(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은 지배권의 변화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자는 지배권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나를 지배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깨달으며 살아야 합니다. 신자되기 전과 후의 내 존재와 위상은 완전히 다릅니다. 믿고 나서나 믿기 전이나 세상 사람과 같다는 단순한 의식으로 살면 안됩니다. 우리는 오매불망(寤寐不忘) 우리의 신분 변화에 대한 의식 (하나님의 통치 하심을 받는 자라는 의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1.허물과 죄의 죽음에서 살아남(1절) 2. 하늘에 앉히심(6절) 3.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선한 일을 하는자(10절). 우리는 이 변화된 영적 신분에 대한 인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특권이며 소명입니다.
하늘에 속한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하늘 백성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은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그만큼 더 치열한 삶입니다. 둘째,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영의 지배 속에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 풍조에 있다 보면 나 자신도 세상 풍조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것 같은 세상 가치관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옵니다. 우리는 이 가치관에 지배 받지 말아야 합니다. 땅의 권세의 지배를 안 받으려면 말씀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공중, 6절에서 하늘 이란 두 단어가 나옵니다. 성경에서 두 단어는 의미가 다릅니다. 공중은 영어로 Air이고, 땅과 하늘 사이의 허공을 가르킵니다(성층권으로 넘어 가기 전의 공간). 하늘은 영어로 Sky입니다. 공중 위로 더 무한히 끝없이 펼쳐진 공간입니다. 하늘의 끝은 알 수 없습니다. 고대인에게 공중과 하늘은 신비였습니다. 성경 기록 당시 하나님은 하늘에 있다고 믿었고 공중에는 그 당시 하위 신들과 악한 영이 머문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텅 빈 공중 공간에 악한 영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악한 영의 우두머리가 사탄입니다. 사탄은 공중의 권세자(가장 힘센자, 지배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의 편지를 쓸 당시, 그 시대의 사고 방식을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기 이전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표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는 하늘에 속한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삶이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신분이 다르고 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기 전의 삶은 공중 권세를 잡은자를 따르는 삶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삶 (1절), 세상 풍조를 따르는 삶(2절), 불순종의 삶(2절), 진노의 자녀(3절)로 사는 삶입니다. 즉 세상 풍조의 집단 사고에 끌려 사는 삶입니다. 육체의 욕망(욕심)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욕심과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우리를 지배합니다. 신앙인도 부르심 받고 신분이 바뀌었어도 육체의 욕심과 욕망을 따르지 않겠다는 철저한 사고 변화와 인식없이는 잠깐 한눈 파는 사이 또 실패하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를 강요함 없이 고도의 수법으로 아주 민감하게 지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으며 실패 할 때도 사탄은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은밀히 속삭입니다. ‘너 그거 먹으면 죽지 않게 돼. 눈이 떠져서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되어 하나님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될 거야..’ 살짝 분위기만 띄워주는 고단수를 사용합니다. 우리 가슴 속에 묻혀 있던 욕망들을 하나 하나 건드립니다. 욕망이란 중립적 가치입니다. 선도 악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며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욕망이 육신의 목적으로 사용 되어지면 엄청난 힘을 가진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욕망은 나를 무너뜨릴 수 있기에 다스려야 합니다.
욕망이 하나님 안에서 선한 목적으로 쓰일 때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사로잡혀 육신의 욕망을 좇는 삶을 살았다면 하나님의 영으로 넘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삶 사시길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 신자들이 무신론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를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세속화된 욕망을 채우려고 합니다.
본문 4절에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긍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긍휼은 라훔 (rahum)이고 어원은 레헴(rehem, 자궁)입니다. 자궁은 태아를 품고 보호하고 영양을 주는 곳입니다. 예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렇게 생생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을 들어도 감격이 없고 맹숭 맹숭하면 안됩니다. 우리 가슴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이 벅차게 살아나면 좋겠습니다. 긍휼은 영어로 com+passion(고통을 함께 함)입니다. 고통을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God of compassion)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말씀합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46:3-4). 이 말씀으로 위로 받고 힘 내시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은 삶의 질과 결과와 수준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고급스러운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세상의 욕망을 따르는 삶과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탄의 영에 사로잡혀 이땅의 삶에만 몰두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신자의삶을 살면 그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신자는 선택해야 합니다. 성령에 속한 하늘의 삶을 살 것인지? 육신에 속한 땅의 삶을 살 것인지? 매 순간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 후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달라지기 때문에 매순간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 마음을 따르는 선택을 함으로써 놀라운 은혜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영화 밀정 이야기 하겠습니다. 주인공 이정출(송강호)은 한 때 상해에서 독립 운동을 돕다가 일본 경찰에 들어가 독립 운동가를 잡아들입니다. 또 마지막에는 독립 운동가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선택과 판단이 계속 흔들리고 살아남기 위해 어떤 편에도 설 수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정출이 보여준 모습은 이리저리 방황하는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처럼 보여집니다. 사탄의 지배와 하나님의 지배 사이를 오가는… 세상의 풍조가 이렇게 선택을 어렵게 합니다.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애국과 매국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존재’가 돼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떤 때는 신실하게 살다, 어떤 때는 자신이 봐도 형편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러나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제대로 선택해야 내가 누구인지 알고 흔들림없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선택은 불순종이며, 진노의 자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이 존재로는 큰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복과 심판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우리는 많이 실패합니다. 우리는 복을 얻기 위한 수단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복은 어디서 옵니까? 찬송가 1장에서 우리는 찬양합니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 우리가 추구하는 복, 만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복을 다른데서 구하지 마십시오. 신앙인에게 최고의 복은 무엇입니까? 무병장수, 근심걱정 없는것! 우리는 이런 것들이 복이 아님을 아는 유일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복은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 생활로 하나님과 친밀해지면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힘이 나옵니다. 왜 그같은 복을 놓치고 있습니까? 그 복을 가지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누릴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복을 누리면 어떤 고난이 닥쳐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최고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부도 맞는것, 건강이 나빠지는것! 아닙니다. 최고의 심판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인정 안하고 있다면 그 순간이 심판의 순간입니다. 기도 생활도 없고, 하나님은 찾지도 않는데 하는 일 마다 잘되십니까? 축복이라고만 보면 안됩니다. 심판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지는 것이 최고의 축복일진데 우리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기 위해 더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다 청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삶만이 진정한 삶이라고 고백하십시오. 이 땅의 현실을 살지만 매 순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되길 축원 드립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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