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3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10:17~18)
오늘은 고린도후서 10장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연휴 끝나고 나면 시편 말씀이 시작이 되기 때문에 고린도후서는 오늘로 마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를 보면서 바울의 심정을 좀 헤아려보셨습니까? 11장에 보면 바울이 자신이 고생한 얘기를 합니다.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번,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고, 수 많은 위험을 당했다(11:24~26) 이같은 수고를 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돌아온 건 뭡니까? 비방이고, 모함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비방한 이유는 바울의 쓴소리에 기분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꾸짖음은 분열된 교회, 소송, 음행, 사랑없는 교회를 향한 정당한 꾸짖음이었지만 자신들의 판단만 있던 그들로서는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고후10:12에서 한 말이 그것입니다.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리스 신화에 침대신화가 있습니다. 아테네로 가는 길목에 집을 지어넣고는 침대로 사람들을 끌여 들입니다. 그 다음에 침대보다 작은 사람은 늘려 버리고, 큰 사람은 잘라내 버렵니다. 침대에 눕혀지는 순간 불구가 되거나 죽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은 기준이 되는 침대 하나씩 다 가지고 있어서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잘라버리든지, 늘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은 무서운 욕망입니다. 이런 욕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바울도 이런 자기 기준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고생했던 것입니다. ‘사도가 아니다. 말도 못한다. 모습이 형편없다’
모든 비방과 비난에는 이런 자기 중심성이 반드시 있습니다. 내 기준과 마음에 안 맞으면 일단 몹쓸 사람이 되 버리는 겁니다. 한번 눈 밖에 나면 좋은게 있는데도 눈길 한번 안 줍니다. 참 난처합니다. 꼭 고쳐야 되는 모습인데 잘 안됩니다. 이거 못 고치면 사람 아낄 줄 모르게 됩니다. 사람 아낄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쉽게 비난하면 안됩니다.
칭찬과 자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칭찬과 자랑도 자신이 칭찬하고, 자랑하면 안되고 주 안에서 자랑하고, 주께서 칭찬할 때 온전한 자랑과 칭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고,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바울은 자신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에게서 정반대되는 모습을 봤던 겁니다.
바울의 비방자들은 한결같이 자기를 칭찬하고(12절),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고(13절), 외모만 보는 사람(7절)들입니다. 이같은 사람들에게 바울이 쓴소리를 했으니 가만 있었겠습니까? ‘바울 봐라. 편지는 그럴듯하게 쓰는데 실제 만나보면 별 볼일도 없고, 말도 잘 못한다’ (10절) 인신공격을 하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바른 모습을 말했던 것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고, 주께서 칭찬하시게 하라’ 간직해야 할 소중한 지침입니다. 자신의 기준만 가지고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 하면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은 정말 금물입니다. 사람을 버리게 되고, 판단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랑 할 일 있어도 주 안에서 자랑하고, 주께 칭찬 받을수 있는 마음으로 하면 실패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은 온유와 관용으로 행하는 사람(1절), 사람 외모만 보면서 육신에 따라 행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이론과 생각을 사로잡아 복종케 하는 강한 하나님의 능력(3절)으로 무장한 성령의 사람을 칭찬하고 인정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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