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2월28일 주일설교
산상설교7: 소중한 인격 존중의 삶(마5:21~26)
주님께서는 너희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며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이웃사랑의 6가지 예(주제)의 삶에서 그들보다 나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6가지 주제에 대한 말씀의 형태는 같습니다. “너희는 들었으나,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오늘의 주제는 살인입니다. 주님은 살인과 화를 동일 선상에 놓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너무 과장된 표현을 하시는 거 아닌가?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를 보면 화(분노)가 살인의 뿌리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살인이라는 행위도 나쁘지만 “화” “분노”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죄로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죄라는 것입니다.
“라가”라는 욕은 골빈 놈, 정신 나간 놈이라는 뜻입니다. 미련한 놈이란 욕은 머저리라는 욕입니다. 욕을 하면 욕을 먹은 상대방은 분노가 쌓이고 원한이 쌓입니다. 욕먹은 사람은 때론 인격이 파괴되고 파멸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화에 대한 많은 경고가 있습니다. (전도서7:9 잠언15:1 골3:8) 문제는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주님이 이토록 강력하게 경고하시는 화를 계속 내며 사는 겁니까? 우리에게 화를 다룰 수 있는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화를 받아 줄 여력과 맷집(여유)가 없습니다.
정의로운 분노를 포함한 모든 분노는 “결핍과 부족에 대한 반응”입니다. 만약 부족함이 전혀 없는데도 화를 낸다면 그것은 습관적인 것이므로 더 주의해야 합니다. 내가 화를 내면 상대방도 기분이 나빠져 화가 납니다. 화의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력자가 나타나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줘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들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라고 하십니다. 쉽지 않으신 부탁입니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 순간 실력을 쌓아서 분노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시작의 출발은 “타자에 대한 존중”(인간존중)입니다.
1. 인간 존중의 마음
그리스도인들은 그 근본에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은 내 감정에 의해 훼손될 수 없는 절대 가치입니다. 서로 간에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의 이념이 다르다고 모욕을 주고 증오를 키워가면 안 됩니다.
사람에 대학 모욕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전철 속, 버스 안 운전 중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만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수치심(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감정)을 못 느낍니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소중한 것입니다.
페터 비에리(Peter Bieri)는 [삶의 격](2014) 이란 책에서 인간 존중엔 3가지 생각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1) 나는 타인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 (2)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3)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내가 불만으로 가득차 있으면 내가 상대방을 잘 대할 수 없습니다. 위의 3가지는 사회 성숙도를 알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존중의 아름다운 출발은 신앙인이 해야 합니다. 사르트르는 “타자는 지옥이다”고 했습니다. 레비나스는 “타자는 거울이다 “라고 했습니다.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는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입니다. 톰 행크스는 택배 회사 직원입니다. 비행기가 추락해 무인도에 떨어졌습니다. 바닷물에 떠밀려 내려온 배구공을 발견하고 배구공에 사람 얼굴을 그리고 윌슨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너’라고 대화하며 4년을 지냅니다. ‘너’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입습니다. 너의 존재로 인해 위로와 용기를 받고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렇게 나의 너는 나의 거울이기도 하며 나의 지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축복입니다. 나의 배우자는 내가 아니기에 불편한 존재(지옥) 일 수 있지만,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2.신앙의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분노의 통제는 내 마음으로는 안됩니다. 나의 부족이 하나님으로 인해 채워져서 내가 믿음으로 넉넉해질 때 가능해집니다. 나의 부족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은 기댈 곳이 있어야 넉넉해집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아를 아는 지식과 여호아의 영광과 여호아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할 때 어떤 분노와 모욕도 힘을 쓰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화해가 가능해집니다. 와신상담(원수갚기 위해 어려움을 참고 견딤)만 잘하면 안 됩니다. 화해를 잘해야 합니다.
5장 23절 말씀에 ‘생각나거든’ 이란 말씀을 하십니다.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이 생각나거든 그 생각난 시점이 예배 때라도 달려가 화해를 청하고 용서를 구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면 사람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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