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二律背反)

20160229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강아지도 한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개새끼야라고 소리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개나 사람이나 풀입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산에 개를 데려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데
나는 한마리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강아지는 이미 의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봐 두려워라
(정호승,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주님
용서하세요

저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네요

윤동주 시인보다
훨씬 높은 당신의 말씀 끼고 살면서도
작은 일 하나 넉넉히 못 넘기고
발끈하기 잘하는 속 좁은 마음…

이놈의
고질적인 이율배반
언제나 나아질까요?

내가 사람의 유창한 말과 천사의 황홀한 말을 해도,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녹슨 문에서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힘차게 전하고, 그분의 비밀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대낮처럼 환히 밝혀도, 또 내가 산에게 ‘뛰어올라라’ 명하면 산이 그대로 뛰어오를 만큼의 믿음을 지니고 있어도,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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