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1일 주일예배
산상설교6: 似而非 되지 않기(마5:13~16)
산상 설교는 신앙인에게 원론 같은 말씀으로 직설적이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산상설교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넉넉한 마음으로 들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교회는 설교 말씀 듣다가 내 말하는 것으로 여겨 상처받기 쉽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 영상 한 편 보겠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전설적인 장애인 투수 짐 에보트 선수 이야기입니다. 우측 손 장애를 가진 투수입니다. 그런 손으로는 동네 야구도 하기 힘든데 짐 에보트는 피나는 노력과 훈련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투수로 노히트 노런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상대방 타자들은 짐 애보트의 약점을 알고 기습 번트 작전으로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짐애보트는 글로브를 공 던진 후 순식간에 반대 손으로 바꿔 끼는 피나는 노력으로 기습 번트까지 막아내곤 했습니다.
이 영상을 본 이유는 현재 한국 기독교의 상황이 짐 애보트의 상황처럼 보이기에 우리도 그처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나가는 용기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대형 교회의 승리주의는 어쩌면 착각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지금의 기독교인을 보는 세상의 시선과 판단이 바닥으로 추락한 것에 대해 우리는 함께 반성하고 심기일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제로 내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2000년 전 주님은 산상에서 너희는 소금이고, 너희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설교 말씀은 제삼자처럼 들으면 안 됩니다. 지금의 기독교 위상의 추락은 우리가 모두 심기일전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고 주님은 비유 표현을 하셨습니다. 과연 세상에는 빛과 소금이 필요합니까? 세상에는 부패와 썩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금이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캄캄하고 어두운 곳이 존재하기에 빛이 필요합니다. 소금과 빛이 있어야 살만한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세상은 그냥 두면 부패하고 썩게 됩니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썩게 돼 있습니다. 처음부터 나쁜 목사, 정치가는 없습니다. 서서히 부패하고 어두워집니다. 이것이 삶의 현실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경찰, 검찰이 막는 것은 사후 약방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미리 막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대단한 존재로 봐 주시는 거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대에 열성을 다해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 말, 생각, 사고 모두 빛과 소금의 사람답게 바뀌어야 합니다.
빛과 소금으로 살기 위해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다름과 희생입니다.
1.다르게 살기(다름의 가치를 인식)
다르게 살면 우리는 요즘 시대에는 욕도 먹고 많이 불편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 사람과 반드시 달라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다르게 살려는 애씀과 노력이 없으면 우리는 사이비입니다. 겉은 교인이지만 아닌 것 입니다. 似而非란 진짜와 비슷한 가짜입니다. 겉모습은 교회 다니고 있지만 속사람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알찬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살피고 주님을 따르려는 애씀은 계속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다름에 대한 인식이 너무 희미해져 우리가 빛과 소금역할을 못하기에 개나 소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태도, 가치, 성품이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중심이 반드시 잡혀 있어야 합니다. 다름에 대한 고민이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진지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같지 않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비그리스도인과 구별되는 가치가 어떤 게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아가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온유와 화평을 좋아하고 불의를 미워합니다. 우리는 이 귀한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세상과 다름이 없으면 우리는 용도 폐기당합니다. 버려져 밟힙니다. 기독교 역사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다르게 사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자 소명입니다. 단 하나라도 우리 안에 다르게 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다른 것에 대한 자부심이 내 안에 살아나야 합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과 다르게 살 것을 명령하는 설교입니다.
신명기 10:12~13,16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그분 앞에서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고 그분께서 여러분 앞에 두신 길을 따라 걸으며,그 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을 섬기며,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의 굳은 살을 베어내고, 제멋대로 고집 부리는 것을 멈추십시오”
2.희생하기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는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금은 녹아야 맛을 냅니다. 소금이 희생되어야 맛이 나는 것입니다. 빛도 타야 밝힐 수 있습니다. 빛도 타는 희생이 있어야 주변을 밝히는 것입니다. 희생은 세상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 기독교인의 희생으로 문명과 문화가 발전되었습니다. 희생은 바보 같지만 고귀한 것입니다. 희생이 있어야 삶의 아픔이 치유됩니다.
신앙 세계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이 가장 낮은 등급입니다. 자기 중심성은 가장 등급이 떨어집니다. 희생과 섬김이 있을 때 등급이 올라갑니다. 희생과 섬김의 삶은 축복받은 복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삶의 기적은 희생이 있어야 일어납니다. 희생은 굉장히 강한 설득력을 가진 강력한 힘입니다.
모든 희생은 값어치가 있습니다. 희생을 통해 사랑이 전해지고 사람을 살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양보와 배려, 작은 사랑도 모두 희생입니다. 자기만 알던 사람에게 이런 희생하는 변화가 삶에서 일어날 때 상대방은 눈물 나게 고마워합니다. 작은 빛이 모여 큰 빛이 됩니다. 사이비로는 절대 희생,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애씀이 있을 때 작은 빛이 점차 큰 빛이 됩니다. 우리는 이 과제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敎를 믿는 사람이 왜 저런지 모르겠어” 라는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교인됨과 사람됨은 별개가 아닙니다. 이 두개가 일치해야 우리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인됨과 사람됨은 일치해야 합니다. 그래야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사람됨을 살펴야 합니다. 사람됨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늘 나를 돌봐야 합니다. 신앙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나를 돌봐야 합니다.
3.修身하기(내 마음을 살펴 내 한 몸 바르게 하기)
그리스도인은 수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먼저 사람됨이 제대로 되도록 나를 돌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인간의 노력이 있을 때 크게 받을 수 있습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가장 우선은 수신입니다. 나부터 돌보아 사람됨이 되어야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이 될 수가 있습니다.
수신의 방법은 精思觀心(정사관심. 정교한 생각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기)입니다. 대충 대충이 아니고 정교한 생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교하게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입니다. 자신을 질책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를 살피는 거울로 삼는 것입니다.
말씀은 나를 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말씀을 보면서 나를 돌보십시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셔서 우리를 성화시켜 주십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이 성화 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우리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귀한 삶의 노력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없는 삶의 결과는 참혹합니다.
성어거스틴의 기도문을 암송하고 우리 대신 나로 바꿔서 매일 기도합시다.!!
주여 나를 깨우쳐 주시고 나에게 외쳐 주시고 나를 훈육하여 주시고 나를 보살펴 주시고 나의 언 마음을 풀어 주시고 내가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시고 내가 불타오르는 심정으로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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