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4. 산상설교3: 소중한 슬픔(마5:4). 양은익 목사

 


2016년 1월24일 주일예배

말씀:산상설교3:소중한 슬픔(마태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정채봉 작가는 백두산 천지를 본 후 한 편의 시를 썼습니다.’아,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슬픔이 삶의 고통이 옵니다. 고난-슬픔-눈물은 함께 세트로 몰려다닙니다. 슬픔Grief는 gref무겁다 에서 왔습니다. 즉 슬픔은 무겁고 무서운 것입니다. 슬픔이 우리 삶에 주는 것은 눈물, 삶의 두려움, 무서움, 세상에 대한 원망,미움입니다. 또한 사람에 대한 섭섭함으로 삶이 왜곡됩니다.

윤복희 가수의 “여러분” 마지막 가사가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묻습니다. 주님의 산상설교 두 번째 가르침에 답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주님께서는 애통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1차 청중은 로마의 압제하에 갖은 고난을 당하는 고통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고통으로 질병이 많았고 정신적으로 병들어 귀신들린 자들이 많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슬픔을 직면한 사람들에게 슬픔을 피하지 말고 대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슬픔이 오면 철저히 슬퍼하고 애통해 하며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위로와 만져주심을 경험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현대는 쾌락과 거짓 웃음이 만연한 사회입니다. 현대인들은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 하려 하지 않습니다. 슬픔을 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슬픔은 정면으로 대면해야 합니다. 그래야 슬픈 현실이 변할 수 있습니다.

슬픔은 눈물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슬픔에 대한 고백들과 간증들을 살펴봅시다. 김현승 시인은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준다. 나를 다시 한 번 깨끗하게 하여 준다.” 의사인 마종기 시인은 “눈물은 영혼의 부동액”(나무가 있는 풍경) 함석헌 선생은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힘있는 자는 자기 안에 살고 즐거운 자는 자연 안에서 살지만 슬퍼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산다.” 애통 속에는 소중한 게 있습니다. 슬픔이 올 때 우리는 외면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철저히 슬퍼해야 합니다.

슬픔의 대상은 3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슬픔/너의 슬픔/영혼의 슬픔입니다. 우리는 나의 슬픔을 슬퍼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너의 슬픔과 영혼의 슬픔을 돌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너의 슬픔을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쌀쌀맞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함께 슬퍼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의 슬픔 너의 슬픔 영혼의 슬픔을 슬퍼하고 애통해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가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를 직접 찾아오셔서 위로하고 만져주시는 은혜가 일어납니다. 내 영혼이 정화되고 하나님의 위로로 하나님 나라로 인도됩니다.

이용도 목사님(1901-1933)은 눈물이 말라버린 그리스도인을 질책하셨습니다.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은 눈물이 없습니다. 따뜻한 사람이 눈물을 흘립니다. 현대인은 눈물을 추잡스런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릴수 있는 자신만의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눈물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소식으로 기뻐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하찮은 기쁨이 아닙니다. 슬픔을 통과한 기쁨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슬픔을 통과한 기쁨이어야 합니다. 어떤 슬픔과 불안도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끊을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주실 때 3가지를 수단으로 사용하십니다. 말씀/사람(교회)/성령입니다. 애통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말씀으로 우리를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져주십니다. 교회는 아픈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더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그리스도인과의 성도의 교제를 거부하면 안 됩니다.

슬픔 많은 삶의 힘든 짐을 지고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샬롬의 상태로 이끌어 주십니다. 샬롬은 하나님 위로의 정점입니다. 샬롬(평화)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힘든데 힘들지 않고 불안한데 불안해하지 않고, 두려운데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그 심령에 흐르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 초월로 나타나는 하나님 위로의 정점입니다.

슬픔 가운데 있는 내 삶이 하나님 위로로 샬롬의 경지에 이를 때 고난-슬픔-눈물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그리고 슬픔-위로-샬롬의 새로운 고리가 이루어집니다. 슬픔의 현실에 감정싸움에 삶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슬픔이 올 때 애통의 자리로 나아가시고 하나님의 깊은 위로와 만지심으로 샬롬의 경지에 들어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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