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다메섹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주께서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야’하고 부르셨습니다. 그가 ‘예, 주여’라고 대답하자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서 곧은 길이라고 부르는 거리로 가거라. 그리고 그곳에 있는 유다의 집에서 다소사람 사울을 찾아라. 지금 그가 기도하고 있다'(행9:10~11, 우리말 성경)
길 잃어 본 사람은 알 겁니다.
얼마나 막막한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눈먼 채
낯선 사람 손에 이끌려
알 수 없는 곳에 있던
사울이라고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자업자득이라고 할까요.
사울은 지금 고립무원입니다.
그가 한 일을 모르지 않을 터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사람이었겠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주님은 이런 사울에게 다가가
손잡아 주고, 길 인도해 주라고 하십니다.
당신께서 쓰실 테니까 말이지요.
따르기 힘든 요청이었지만
아나니아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마음과 눈멀었던 사울의 길 안내자가 됩니다.
교회의 큰 인물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누가 지금
문밖에서 울고 있는가
인적 뜸한 산언덕 외로운 묘비처럼
누가 지금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
(장석주, 애인, 부분)
지금도
아나니아 같은 길 안내자,
많이 필요합니다.
쓸쓸히 울고 있을 때
다가가 손잡아주고, 기도해 주는
가슴 따뜻한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니까요.
주님이
누군가의 길 안내자로 부를 때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하지 말고
기꺼이 따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아나니아 돼서
그 사람이 힘 얻고, 귀한 인생 살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정말 혹시 압니까, 그 사람이
바울과 같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지.
이 봄에
누군가의 길 안내자 되는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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