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 8:
미움이 지나가고 사랑이 오기를(요일2:7~11)
1.
윤동주 시인이 1941년 9월 31일에 쓴 시 ‘길’입니다. 힘든 시대를 지내고 있는 한 사람이 ‘길’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길에 나아갑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윤동주, 길, 부분)
잃어 버린 실망으로 시작한 시가 잃은 것을 찾겠다고 하는 다짐으로 끝납니다. 비록 ‘풀 한 포기 없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자신이 아직 남아있기에 사는 날 동안 잃은 것을 찾고야 말겠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찾음과 우리의 찾음이 같지 않겠지만 잃어 버린게 있다면 황량한 길이라도 나서는 게 맞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잃어 버리셨습니까? 무엇을 찾고 싶으십니까? 요한 사도가 전해 주는 중요한 찾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함께 살펴 보면서 뜻을 새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2.
오늘 본문에 보면 찾고, 버려야 할게 분명히 나옵니다. 찾아야 할 것은 빛과 사랑이고, 버려야 할 것은 어둠과 미움입니다. 사랑과 미움은 요한의 가슴 깊은 곳에 항상 있는 두 단어입니다. 요한 문헌에서 요한은 계속 이 단어를 씁니다. 사랑하라. 미워하지 마라. 오늘 말씀 제목 처럼, 미움은 ‘가고’, 사랑이 ‘오는’ 삶을 바랍니다. 8절 끝 부분에 나오는 ‘어둠이 지나간다’, ‘어둠이 떠난다’는 표현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요한일서에서 미움을 말하는 요한 사도의 표현을 보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합니다. 2:11.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죄)에 있는 사람이다. 3:15.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다. 4:20. 하나님 사랑한다고 하면서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다.
하기 힘든 말입니다. 더구나 지금 요한일서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는 사랑이 아니고 미움입니다. 박해가 사람들에게 원치않는 미움을 만들고 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하던 사람들도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갈등 가운데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누구도 사랑이라는 말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움이 깊으면 사랑이라는 말은 공허한 법, 미움의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도요한이 미움은 죄다, 살인이다,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거다 하면서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향해 사랑하라, 미워하지 말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바꾸지 않고는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오르한 파묵)는 말처럼, 미움의 현실이 너무 쎄서, 바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에 사랑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분명한 것은 미움은 사도 요한에게만 있는 현실이 아닙니다. 죄성에서 나오는 미움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고질적이고, 뿌리 깊은 문제입니다. 보십시오. 미움이 얼마나 많고, 지배적입니까? 사회 안에, 가정 안에 암처럼 퍼져서 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미움이 많은 사회는 오래 가지 못하고, 미움이 많은 사람은 불행하다는 진실을 모르는 게 아닌데도 미움을 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미움의 결과가 얼마나 나쁜지 잘 나옵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고, 어둠 속을 걷고 있으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새번역). 미움이 만들어 내는 무서움입니다. 미움은 판단력, 분별력 다 망가트립니다. 머리 좋은 거, 경험, 다 소용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미움이 들어가면 상당히 유치해 집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미움이 들어오는 순간 사귐은 끝납니다. 미움은 사귐을 막습니다. 신자가 미워하면 코이노니아는 중단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 사람과의 사귐이 막힙니다. 사귐을 통해 흘러가는 축복과 사랑을 미움이 막아 버립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야 합니다. 미움은 정말 별거 아닌걸로 ‘훅’하고 들어 오기 때문에 잘 막아야 합니다.말 한 마디가 씨가 되서 미움이 됩니다. 밝게 웃는 거보고 기분이 상합니다. 말투가 싫고, 마른게 싫고, 뚱뚱해서 싫고, 먹을 때 쩝쩝 소리내는 게 싫고, 심지어 너무 반듯해서 싫고, 잘나서 싫고. 화는 금방 지나가는데 미움은 훨씬 오래가고 끈질깁니다.
막아야 되고 풀어야 됩니다. 해질녘에는 더 풀어야 됩니다. 미움을 푸는 일은 해질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삶의 과제입니다. 미움 많은 세상 살다 무시 못할 미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풀어내야 합니다. 미움을 푸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것일까요? 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이고, 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했던 미움, 자신을 향했던 미움, 사람과 사회에 가졌던 미움을 풀어나갈 때 삶의 결론은 복되고 아름다워집니다.
90된 노인 사도 요한이 미워해, 복수해 그랬다면 얼마나 이상하겠습니까? 젊은 때는 미워할수 있지만 나이 들어서까지 미워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노년의 때는 없는 미움을 만들어 내는 때가 아닙니다. 있는 미움을 풀어가는 숭고한 때입니다. 하루라도 더 산 사람들이 세상 가득한 미움을 풀어내야 합니다.
마틴 루터 킹이 자기를 혐오하는 백인들 앞에서 그랬답니다. ‘미움은 내가 지니고 다니기에 너무 무겁다’.
미움은 사랑이 망가져서 생긴 것이기에 사랑으로 풀어야 합니다. 미움이 많다는 것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인입니다. 사랑은 피해갈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숙명입니다. 운명처럼 받아서 살아내야 합니다.
4.
사랑은 감사와 고마움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고맙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때 사랑은 만들어 집니다.
원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주님은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 말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지만, 원수 사랑은 원수 때문에 망가지지 말고,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라는 말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미움은 해질녘 삶에는 백해무익입니다. 복된 노년, 복된 인생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전하는 인생입니다.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숙명 같은 사랑 찾아 가십시다. 크든, 적든,미움에는 독이 있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성령께서 도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지혜가 부족하면 구하라고 했는데 사랑도 구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사랑이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변형) 사랑으로 충만한 해질녘의 삶, ‘미움이 지나가고 사랑이 오는’ 여러분들의 인생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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