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0. 주일 설교.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 9: 해질녘 아름다운 자랑(요일2:12~17). 양은익 목사

 

해질녘 아름다운 자랑(요일2:12~17)

1.
오늘 해질녘 묵상으로 택한 주제는 ‘자랑’입니다. 잘쓰면 약이고, 잘못쓰면 독이 되는 민감하고, 아슬아슬한 단어입니다. 자랑은 자랑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수고와 애씀이 있기에 자부심을 가질만합니다. 듣는 사람도 흔쾌히 받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수고한 자랑에는 살 맛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랑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속담입니다. ‘자랑 끝에 불붙는다’. 자랑이 과하면 끝이 안 좋다는 것입니다. ‘번 자랑 말고 쓴 자랑하라’. ‘자식 자랑말고 자식 자랑돼라’. 자랑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얼마나 만만치 않았으면 속담으로까지 남았겠습니까? 자제하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동서고금, 어디를 봐도 자랑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한결 같습니다. 자랑은 조심해야 한다. 적절한 자랑이 있고, 적절하지 못한 자랑이 있다. 성경도 해야 할 자랑과 하지 말아야 할 자랑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13장, 사랑장에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립니다. 이상하다는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사랑하면 자랑하는 게 사랑하는자의 당연한 반응인데도 바울은 자랑이 가진 위험성 때문인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만드는 자랑이지만 그 자랑이 상처를 주고, 박탈감을 주며, 질투와 시기를 일으키기에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한 번 자랑, 처음 자랑은 기쁘게 들어주지만 계속되는 자랑을 넉넉히 들어 주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계속된 자랑은 흔히 말하는 ‘자랑질’이 되서 듣는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자랑은 시한폭탄 같습니다. 잘못 다루면 아차하는 순간에 터집니다.

2.
성경에서 자랑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항목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박탈감을 주고, 하나님 없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다는 것입니다. 렘 9:23,24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 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 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자랑하지 말 것으로 제시하는 지혜, 용맹, 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동서 고금 막론하고 사람들이 소원하고, 자랑하는 최고의 항목들입니다. 있다면 정말 자랑하고 싶은 것들인데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뒤에 하나님 자랑을 말하는 걸 보면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고, 자랑할수록 없는 자에게는 고통이 되고, 반발이 되서 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랑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수가 없느니라. 고전4:7.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내라는 것이 성경의 선포입니다. 그러면 그게 힘이 되서 ‘자랑의 으시댐, 뽐냄, 교만’으로 망가지지 않고 더 선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3.
오늘 읽은 요한일서 본문은 ‘자랑’에 대한 본문입니다. 2: 12-14절에는 신자들이 자랑해야 할 게 나오고, 2: 15-17절에는 자랑하면 안되는 게 나옵니다. 사도 요한이 마음을 다해 권하는 것은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 대신 자랑으로 읽어도 됩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 왜요? 16절. 아버지께로 부터 오지 않은 세상의 것들은 자랑해 봤자 육신의 정욕, 안목의 탐욕, 재산의 자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17절. 지나가는) 허망한 자랑, 수준 낮은 자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자랑으로 내 세우는 것은 다른게 아닙니다. 12절부터 보면 자녀들, 청년들, 아비들을 부르면서 요한이 유언처럼 주는 당부와 교훈이 6개가 나오는데 여기에 신자들이 얼마나 존귀하고, 자랑스러운 존재인지가 나옵니다. 신자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12절 용서받은 사람 13절. 하나님을 아는 사람 13절. 악한 자를 이긴 사람, 14절 하나님을 아는 사람 14절. 하나님을 아는 사람 14절, 흉악한 자를 이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이 용서 받고, 하나님을 알고, 악한 자를 이긴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킵니다. 자랑할 만한 조건을 가진 자녀들, 아비들, 청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 사라져 버릴 시시한 세상 자랑에 매여서 그게 있으면 기쁘고, 없으면 속상해 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자랑에 매여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하는 소중한 자랑의 내용으로 보고 싶습니다.

4.
문제 하나 낼 테니까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X 없이 살 수 있는가?’. 이성복 시인이 그의 글에서 낸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X를 찾아 보세요. 시인은 ‘시’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뭐가 없으면 살 수 없으세요?

신앙인에게 X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외에 다른 모든 X를 우리는 우상이라 부릅니다. 깊게 물어 보십시오. ‘하나님 없이 살 수 있을까?’ 살 수 없기를 바랍니다. ‘내 세울게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쪽 팔려도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 없이 살 수 있을까?’ 살 수 없기를 바랍니다. ‘순종 없이 살 수 있을까?’ 살 수 없기를 바랍니다. 자랑은 소중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자랑하는 지를 보면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해질녘은 생의 자랑을 되돌아 보는 시기입니다. 무엇을 자랑하며 살았는지, 내 자랑에 부끄러움은 없었는지, 허탄한 자랑에 휘둘리지는 않았는지, 내세울만한 변변한 자랑 거리가 없다는 이유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무슨 자랑을 다시 해야 하는지? 살펴 봐야 합니다.

잠깐 있다 없어지는 세상 자랑에 휘둘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자랑이 얼마나 초라한 자랑인지,우리에게 주신 자랑이 얼마나 큰 자랑인지 보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해질녂 아름다운 자랑인데 세상 자랑과 주 안에서 누리는 아름다운 자랑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 결과 질과 깊이가 다릅니다.

세상 자랑은 자기만 좋습니다. 자기 밖에 없습니다. 자랑할수록 상처가 되고, 박탈감의 위험이 높아집니라.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자랑은 용서 받은 자랑이기에, 하나님을 아는데서 나오는 자랑이기에, 악에 무너지지 않은 자랑이기에 섬김이 있고, 희생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랑입니다. 감동적인 자랑입니다. 자랑할수록 사람을 살리고, 그 영혼을 살립니다. 잠깐 있다 사라지는 자랑이 아니고 영원한 자랑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랑이고, ‘자랑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 사회와 교회에 필요한 자랑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복된 자랑이 우리과 우리 자녀들의 자랑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봄이 오는 주일 아침입니다. ‘아름다운 자랑’으로 넘치는 여러분들의 인생이 되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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