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6. 주일설교.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1: 老人 사도 요한(요일1:3~4, 2:1, 5:13). 양은익 목사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 1: 老人 사도 요한(요일1:3~4. 2:1. 5:13)

1.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라는 시 한 대목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짠하고, 쓸쓸합니다. 이런 모습보면 나이 들고 싶지 않지만 그럴수도 없고, 난처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노년의 삶은 석양의 노을 비치듯 잔잔하고 평온한 노년이지만 노년의 삶을 긍정하고 만끽하기에는 곳곳에 장애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노년의 고단함과 노년의 염려와 노년의 슬픔이 가득합니다.

그러기에 질문 하나 드립니다. ‘늙고 쇠약해 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불편하고, 애뜻한 질문이지만 피해 갈 수 없어 드리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하는가에 따라 노년의 삶이 초라해 질수도 있고, 풍성해 질수도 있습니다. 좋은 답을 찾아 넉넉하고, 품격있는 노년의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2.
오늘부터 보려고 하는 요한일서의 말씀에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노년의 삶을 다루는 말씀을 요한일서에서 보는 이유는 요한일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할 정도로 신망이 높던 제자였습니다. 형제 야고보와 함께 십대 후반에 주님의 제자가 되서 교회의 탄생과 발전, 박해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 교회의 초석을 놓았던 인물입니다

정확한 연대는 조금 차이가 나지만 요한은 60년 대 후반 경에 예수님의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디모데와 함께 에베소 교회를 돌보다가 디모데가 순교하자 그 뒤를 이어 에베소 교회를 돌보게 됩니다. 사도 요한 역시 박해로 인해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거기서 큰 영적체험을 한 후에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 생을 마치게 됩니다.

요한은 100년 경에 생을 마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의 나이 95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요한문헌으로 알려진 요한복음과 요한일이삼서가 90-95년경 쓰여진 것으로 보면 요한의 나이 85세에서 90세에 요한문헌을 기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렇게 요한일서는 그의 인생의 말년, 비유하면 해질녘에, 황혼의 때에 온 마음을 담아 흩어져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하는 그의 사랑이고, 도전이고, 교훈이라고 할 수 있는 서신입니다. 한자 한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겠습니까? 가장 하고 싶은 말, 가장 필요한 말을 적어내려가지 않았겠습니까?

이 사실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요한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인’ 사도 요한의 마음을 가지고 볼 때 온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노인 사도 요한의 관점이 빠지면 요한일서가 전하는 메시지의 반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이든 이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때가 많지만, 나이든 이들의 말에는 싫든 좋든 인생이 배여 있습니다. ‘참아’, ‘사랑해’ ‘믿음 생활 잘해’. 참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믿음생활하지 못할 때의 실패와 결과를 알고 하는 말이기에 제대로만 들으면 삶을 살려내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의 최고령자, 주님과 함께 했던 사람, 신앙의 쓴 맛, 단 맛을 다 겪었던 이가 던지는 요한일서는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 할 말씀이고, 사도 요한처럼 동일하게 노년을 맞이하고, 맞이 할 수 밖에 없는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년의 사도가 전해주는 원숙함이 배여있는 메시지를 이번에 받고 싶습니다.

요한사도는 요한일서를 쓰는 목적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노 사도가 전해주는 이 말의 무게감이 느껴지십니까? 몸은 늙고 쇠약해졌을지 모르지만 요한은 끊임없이 독려하고, 격려합니다. 기뻐해라. 죄 범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다. 하나님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실망하지 말라. 주님 안에 거하라. 이건 나이든 이의 잔소리가 아닙니다. 참견도 아니고 오지랖도 아닙니다. 노 사도의 열정이고, 사명입니다. 요한일서는 노인의 글 답지 않게 전투적입니다.

요한일서에는 수 많은 댓구가 나옵니다. 빛과 어둠(1:5~6), 진리와 거짓(2:21), 의와 죄(3:4, 3:7),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3:10), 하나님의 영와 적 그리스도의 영(4:2~3). 어둠의 현실에 물러서지 말고,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은퇴했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가 아니고, 지대한 현실 감각을 가지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담아내야 하는 모습입니다.

3.
요한일서를 보면서 두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요한처럼 노년의 길에 들어선 교우들에게 가지는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은 젊지만 나이들어가는 교우들에게 가지는 바람입니다.

(1) 노년의 교우들을 향한 바람.
노년의 교우들에게 가지는 바람은 한 단어로 ‘노방출주’(老蚌出珠) 입니다. 늙은 조개가 값비싼 진주를 만든다는 말입니다. 老가 귀하다는 것이고, 노(老)를 값싸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老(나이듦, 늙음)는 값비싼 진주를 만들어내는 주체고,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노방출주’입니다. 요한이라고 노인의 삶이 가지는 쓸쓸함과 고단함이 왜 없었겠습니까? 앞에서 본 詩처럼 식당 한 구석에서 등 돌린채 밥을 먹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요한은 그런 상황에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삶에서 겪어낸 것들을 토해 냅니다. 하여, 그 글이 돌고 돌아 지금 우리에게 까지 전해져서, 사도 요한 같은 ‘노방출주’의 삶을 살 것을 도전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이 든 한 사람의 믿음과 사랑과 감사와 기도와 성찰은 절대 하찮지 않습니다. 노년의 영성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노년은 상당히 불편하지만 사도 요한을 보면서 이런 부정적인 틀을 깨면 좋겠습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늙고 쇠약해 질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요한 사도가 전해주는 메시지에 분명한 답이 있습니다. 함께 나누면서 우리 모두의 노년이 넉넉하고, 풍성하고, 장엄하고,변화하는, 깊은 울림이 있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된 노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나이들어 가는 교우들을 향한 바람.
나이들어 가는 교우들에게 바라는 바도 다르지 않습니다. 평생을 주님과 함께했던 영성 깊은 사도가 전해주는 말씀 하나하나를 흘리지 말고 작심해서 그대로 흡수해 더 이른 시기에, 더 풍성해 지시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나 지금 우리의 시대나 신앙의 삶을 살기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요한의 시대와 같은 박해는 없지만 박해보다 더 심각한 세속의 가치가 깊고, 넓게 뿌리내리고 있는, 그런데도 위기인지도 모르는, 영적으로 위험한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의 영성이 어떤지 잘 보여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척척척’이라는 트로트인데 가사 한번 들어보십시오.

‘겸손한 척, 거룩한 척, 믿음 있는 척. 너도 속고 나도 속고 모두가 속는 나는야 크리스찬. 교회 나와 은혜 받고서 돌아서면 땡. 너도 취해 나도 취해 세상에 취해 나는야 김忌服. 매일매일 성경책 읽고 듣고 싶은 말씀만 듣지 성경 일독 해봤으니 나는 천국 갈거야

회개한 척, 거듭난 척, 믿음 있는 척. 교회 뜰만 밟으면서 모두가 속는 나는야 주일 지킴이.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나만 잘 살면 땡. 돈이 좋아 명예 좋아 세상이 좋아 나는야 김우상 새벽기도 철야기도 매일 출근 도장 찍었지 열심히 믿었으니 나는 성공할거야’.

상당히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저는 없습니다. 저도 ‘척척’할 때 있고, 여러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한일서를 통해 전해지는 요한 사도의 말씀은 다른게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난 신앙에 만족하지 말고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참된 신앙의 삶을 살아내라’입니다.

노 사도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전했던 이 요한일서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과 생명을 깨우는 감격적인 말씀이 되게 만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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