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11)
1.
2021년도 한 해를 마감하는 이 귀한 시간에 주신 말씀은 ‘위로’입니다. 위로는 ‘힘 내'(Comfort=together+force)라는 격려입니다. 두 번 중첩해서 쓰는 것을 보면 대단히 강하게 요청하고 있고, 상황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상황은 ‘내 백성’이라 칭해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는 선포입니다. ‘내 백성’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대단히 암울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이 가득한 때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 오십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선포는 ‘내 백성’의 힘든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오신’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내일이 없던 ‘내 백성’에게 내일을 ‘열어주어’ 오늘의 힘든 현실을 살아내게 하시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지쳐있는 ‘내 백성’에게 잃어버린 ‘내일'(꿈과 희망)을 주고 싶으셨습니다. 지금 그들을 누르고 있는 세상의 세력과 질서만 있는 게 아닌, 그들의 힘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힘과 질서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2절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힘과 질서가 나옵니다.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 노역의 끝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종식이고, 죄악의 사함은 이스라엘의 죄로 만들어졌던 심판의 종결입니다. 노역은 외부에서 가해진 가혹한 현실이고, 죄는 그들 안에서 나온 가혹한 현실입니다. 노역으로 수치와 모멸을 겪고, 죄로는 후회와 자책, 좌절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만 겪어도 힘든데 이들은 이 둘을 합해서 겪고 있습니다. 수치와 모멸, 후회와 자책이 합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참함’입니다. 이제 이런 비참함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입니다. 노역과 심판을 끝내겠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 본문에서 누가 위로자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전해야 할 위로는 분명합니다. 위로하라 하면서 선포된 위로는 세 가지입니다. 5절.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어떤 귄세도, 권력도 영원하지 않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한 권세를 가진다. 세상과 사람의 권세에 눌려있는 포로민들에게는 대단한 위로였을 것입니다. 10절.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높은 산에 올라 두려워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기쁘게 이 놀라운 소식을 외치고, 이것으로 위로받게 하라.
2.
위로가 필요한 그들에게 다가온 최고의 위로입니다. 이 이상의 위로가 없는 최종 위로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존재를 살려내고, 삶을 살려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위로 없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 이루어지면 큰 위로를 받습니다. 힘들고, 약하고,아플 때 받는 따뜻한 위로는 너무 큰 힘이 됩니다. 서로의 위로는 든든한 힘을 줍니다. 하지만 우리의 위로는 흔들릴때가 많은 ‘약한’ 위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위로자가 상처자가 되기도 합니다. 위로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삶의 동반자로 위로를 주던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의 곁을 떠나갑니다. 흔들리는 위로입니다.
이런 우리의 아픔을 보았는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번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진짜 위로를 묻고 있습니다. 잠시의 위로가 아닌 죽어서까지 위로가 되는 그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고, 답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위로가 진정 필요하다면 묻지 않을 수 없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답을 발견해야 하는 위로입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위로가 되는 위로. 어디에 있습니까? 문답의 답을 찾아 보십시오. 참된 위로는 하나님에게 있으면, 하나님 자신이 최고의 위로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위로는 ‘소유’와 ‘조건’,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신자의 위로는 ‘존재의 귀속’에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에서 위로가 나오고, 거기에서 위로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위로가 나와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는 당신의 주권과 권세와 말씀과 영광을 가지고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위로라는 것이 발견되고, 보여지고, 느껴져야 합니다. 이 위로를 능가 할 수 있는 위로는 없습니다. 이 위로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은 힘들어 하는 ‘내 백성’에게 참된 위로, 최고의 위로를 주고 싶어하십니다. 아니 주셨습니다. 5절. 나의 영광을 보라. 그 분의 임재와 함께 하심을 보십시오. 8절. 나의 권세있는 말을 보라. 말씀 속에 있는 무궁한 위로를 깊게 받으십시오. 10절. 나의 다스림을 보라. 내가 다스리고 있고, 내가 인도할 것이고, 보호할 것이다.
이 가슴 뛰는 위로를 품고 새해를 맞이하십시다. 송구영신의 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외침이고,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위로로 시작한 40장은 이렇게 마칩니다. ‘너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했느냐. 나는 영원하며, 사람들처럼 피곤하지도, 곤비하지도 않다. 피곤한 너희들에게 능력을 주고, 무능한 너에게 힘을 줄 수 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며 그 영광을 소망하라. 새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올라가라. 다시 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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