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6. 주일 설교: ‘도리어’의 마음으로(빌1:12~14). 양은익 목사. 송년주일

 

‘도리어’의 마음으로(빌1:12~14)

1.
2021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힘든 한 해 마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감사와 위로가 여러분들 마음 한 복판에 차고 넘치기를 바라겠습니다.

동화 백설 공주에 보면 백설 공주가 계모의 계략으로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게 됩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뻐! 거울이 듣고 싶은 대답을 안해 주는 바람에 백설 공주만 죽게 됩니다. 다행히 목에 걸려있던 사과가 빠져 나오면서 공주는 깨나게 됩니다.

예 그렇습니다. 목에 걸려있는 사과. 이게 빠져나와야 숨을 쉴 수 있습니다. 내 목에도 걸려 있을 수 있습니다. 숨쉬기 힘들게 하는 것, 가슴을 꽉 막히게 하는 무엇. 목에 걸려 있는 사과 아니겠습니까? 있다면 빼내야 합니다. 어떻게 빼내시겠습니까?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시작해야 합니다. 출발은 이렇게 하시면 좋습니다.

목에 걸려 있는 사과=힘든 일을 ‘사고’로 보지말고,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게 되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툭’하고 빠져나와서 숨이 쉬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지만 사고와 사건의 차이가 작지 않기에 가져볼만한 시각입니다.

사고(trouble,accident)와 사건(event). 한 자 차이지만 상당히 다른 단어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고는 부정적 시각이고, 사건은 긍정적 시각입니다. 일어난 일이 똑같아도 ‘사고’(事故)는 일어난 일을 trouble, 불상사, 탈로 보고, ‘사건’(事件)은 event, 뜻밖의 일, 중요한 일로 봅니다.

어떤 쪽으로 가겠습니까? 10의 9은 ‘사건’으로 가는 게 좋습니다. 둘 다 목에 걸린 사과지만, 사고로 보게되면 실망하고 좌절해서 무너지기 쉽구요, 사건으로 보게되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고’ 냐 ‘건’이냐의 갈림길에서 ‘건’으로 가는게 훨씬 좋습니다.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의지와 믿음을 가지고, 사과가 목에 걸려 힘들때마다 운 나쁜 ‘사고’, 불행한 일로만 보지 말고, ‘사건’이라고 하는 중요한 일로 승화시켜서 보기 시작할 때, 놀랍지요, 거기서 새로운 싹이 나옵니다. 제가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는 게 아니라 수 많은 곳에서 ‘검증된 시각’입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감옥 생활 시작할 때 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에 저항하다 무기징역형을 받고 보낸 편지입니다. ‘감옥이 자신을 알고 깨우치기에, 자신의 마음과 감정의 흐름을 냉철하게 규칙적으로 살펴보기에 이상적인 곳임을 발견할지도 모르오… 성장과 발전은 진지한 자기 성찰이 없이는,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자신의 약점과 잘못을 모르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오. 감옥은 다른 것은 몰라도 날마다 자신의 행동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나쁜 것은 극복하고, 좋은 것은 무엇이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오. 성인은 계속 노력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잊지마시오’(1975.2.1)

감옥에 갇히는 힘든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의미없는 ‘불행한 사고’(trouble)로 보지 않고,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특별한 사건’(event)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만델라는 27년간 갇혀있다가 나오지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2.
만델라가 이런 모습을 바울에게서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이나 만델라나 일어난 일을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될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당한 일은 감옥에 갇힌 일이고, 그 일은 바울을 비롯한 함께하는 이들에게 힘든일이고,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걱정하는 이들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자신의 상황과 고난이 ‘도리어’, ‘오히려’ ‘really’(정말로, 실제로는) 더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갇히지 않았다면 복음을 전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갇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일어난 힘든 일을 ‘사고’로 보지 않고 ‘사건’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에 ‘도리어’라는 말이 나오는데. 오늘 품으셔야 하는 생명 같은 단어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한마디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앞에는 부정이고, ‘도리어’ 뒤에는 긍정입니다. 예상과 다른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한자로 보면 새옹지마(塞翁之馬) 정도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말이 도망가서 실망했는데, 도망 간 말이 다른 말 하나를 데리고 돌아옵니다.

살펴 보십시오. ‘도리어’ 잘되는 일들이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손해 본 것 같았는데 ‘도리어’, ‘오히려’ 잘 될 수 있습니다. 늦은것 때문에 ‘도리어’ 잘될 수 있습니다. 떨어진 것 때문에 ‘도리어’ ‘오히려’ 잘 될 수 있습니다. 합리화라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럴 수 있습니다.

‘도리어’를 가지게 되면 ‘사고’를 ‘사건’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오늘 빌1:12절 말씀 읽었는데, 이 말씀은 기독교 역경론의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진전을 가져왔다’. 이 의식이 살아 있으면 ‘사고’라고 생각하는 불행한 일, 내 목의 사과를 일생일대의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고후 12:8~9절 말씀입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니라’(고후12:8~9)

도리어라는 단어 보셨습니까? 고쳐지지 않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도리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약함 때문에 자신 보다 더 강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을 수 있게 됐기에 ‘도리어’ 더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3.
‘도리어’라는 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입니다. 의지와 믿음을 가지고 써 보십시오. ‘도리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조건은 하나입니다. 임마누엘 영성, 임마누엘 시력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회복되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롬8:38-39 같은 확신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새번역)

요셉이 형들에게 한 말, 기억해 보십시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도리어)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창50:20. 새번역) 요셉은 자신의 불행한 인생 중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도리어’를 언제나 신뢰했고, 그 신뢰가 ‘사고’ 투성이의 삶을 ‘복된 사건’으로 만들게 했던 것입니다.

‘도리어’는 신앙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가져야 할 확신이고, 진리이고, 진실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더 깊게 신뢰해서 ‘도리어’라는 이 은총의 단어, 능력의 단어를 사장시키지 말고 마음 것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 어떤 사과 때문에 목이 메이셨습니까? 어떤 ‘사고’로 힘들어 하셨습니까?  송년의 주일 아침입니다. 에벤에셀,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면서 ‘도리어’의 믿음으로 씩씩하게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견고함이 있기를 축복하고 축원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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