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5. 주일 설교: 꾸지람, 사려 깊게 직면하기(잠3:11~12). 양은익 목사.

 

꾸지람, 사려 깊게 직면하기(잠3:11~12)

1.
오늘은 ‘꾸지람’에 대한 지혜자의 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꾸지람의 가치가 폄하되는 시기에 꾸지람에 대한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잘못한 것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기에 꾸지람은 환영받기가 힘듭니다. 꾸지람과 비슷한 말들인 쓴소리, 직언, 꾸중, 책망, 훈계. 교훈. 다 비슷합니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습니다.

꾸지람(쓴소리, 훈계)이라는 사태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십시오.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당신이 뭔데부터 시작해서, 기분 나쁨을 거쳐, 다시는 보나 봐라’까지.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는 것, 받는 것. 전부 쉽지 않습니다. 하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잘쓰면 약, 잘못쓰면 독이 되는 아슬아슬함이 있어서 사려 깊게 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바른 훈계를, 좋게 들어본 기억이 얼마나 있으십니까? 바른 훈계, 잘들으면 귀한 게 만들어 집니다. 질정(叱正)이라는 선물이 나옵니다. 꾸짖을 질, 바를 정. 꾸짖어서 바로 잡는다. 꾸짖음을 통해서 바로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처럼, 사랑과 관심이 깊을수록 훈계와 꾸지람이 있게되는 이유입니다. 11절,12절 새번역으로 봅니다. ‘아이들아, 주님의 훈계를 거부하지 말고, 그의 책망을 싫어하지 말아라.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꾸짖으시니, 마치 귀여워하는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와 같으시다’.

아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혜자가 훈계를 거부하고, 책망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당장에는 쓴소리와 책망이 섭섭하고, 싫겠지만 그 꾸지람 안에 아비와 같은 좋은 마음이 있으니 싫다고만 하지 말고 달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꾸지람과 훈계가 값싸게 소비되고,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을 숱하게 보면서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혜자는 잠언에서 훈계와 꾸지람에 대해서 수시로 말합니다. 잠10:17입니다. 훈계(교훈)을 지키면 복된 길에 들어서고, 꾸지람을 물리치면 길을 잘못 들어선다. 잠13:18. 훈계를 저버리는 사람은 패가망신하고, 지키는 사람은 존경받는다. 잠15:5 어리석은 사람은 아비의 훈계(꾸지람, 교훈)을 업신여기고, 어진 사람은 훈계를 지킨다.

듣기 싫다고 무시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 받으면 복된 길이 열리고, 거절하면 패가 망신하니, 1:8 들어라. 3:11. 싫어하지 말라. 4:13. 굳게 잡아 놓치지 말라 5:12 가볍게 여기지 말라. 8:33 버리지 말라. 10:17. 지키라.

2.
꾸지람, 어떻게 하면 잘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관찰하고, 경험한 것 한가지만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꾸지람과 훈계가 들어오는 경로는 외부에서 들려지는 꾸지람이 있고, 자기 안에서 스스로 발견해서 나오는 꾸지람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꾸지람은 주로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설교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때는 목사가 악역을 맡는 겁니다. 저는 악역을 맡는 거 좋아하지 않지만, 이거 잘하는 목사님들 있습니다. 욕 엄청 먹습니다. 목사가 됐든, 주변의 사람들이 됐든 외부에서 밀고 들어오는 꾸지람과 훈계, 직언은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맞는 얘기고, 필요한 얘기인데도 불편하고 마음이 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듣는 이의 내공이 깊지 않으면 길가와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진 씨처럼 질책 속에 있는 속은 보지 못하고, 속상해 하다가 싹도 피지 못하고 죽어 버립니다.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밖에서 들려지는 꾸지람이 필요하지만 위험합니다. 보완해줘야 합니다. 쓴소리 듣는 게 싫으면 ‘스스로’ 하면 됩니다. ‘당신 요즘 게으른 것 같아’ 그러면서 누가 치고 들어오기 전에 ‘아, 내가 요즘 게을러졌구나’. 스스로 발견하고 알아차리면 외부에서 훈계하고 꾸짖는 것보다 불편하지 않고, 더 깊게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하는 self-훈계와 self-꾸지람이 많아지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꾸지람은 적어질 수 밖에 없고, 들려진다해도 넉넉하게 받아 낼 수가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관건은 얼마나 자신을 제대로 보는가?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잘 볼 수 있을까요?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 되겠지만,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잘 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있습니다. 말씀이 있고, 말씀의 묵상이 있습니다. 성실하고 겸손한 매일의 묵상을 확보하면 남이 뭐라하지 않아도 자신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지혜를 가지고 통치하시기 때문에 말씀이 묵상되면 지혜가 말을 겁니다. 딤후3:16절 말씀처럼 매일의 묵상을 통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이 일어나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실력을 갖게하시는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로 주님을 신뢰하고, 인정하고, 경외하고 공경하면서 시작하는 하루는 넉넉하고 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잠깐하는 기도와 묵상이 만들어 내는 ‘심리적인 성숙’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마음의 근육이 있고, 영혼의 근육이 있다면 마음의 근육과 영혼의 근육을 탄탄하게 만드는 힘이 매일의 묵상을 통해서 뿜어져 나옵니다.

마태7:7에보면 주님의 유명한 아포리즘(경구)가 나옵니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공동). 우리는 기도의 문맥으로 이 말씀을 보면서 실망하고, 시비를 거는 말씀으로 많이 보고 있지만, 이 말씀은 사실은 지혜를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는 이들을 향해서 하시는 주님의 도전이고, 희망적인 선포의 말씀입니다.

가만히 있지말고 삶에서 일어나는 숱한 문제들이 말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구하여’라는 말은 ‘질문하라’는 말로 읽을 수 있는 단어입니다. 질문하면 답을 얻을 수 있고, 찾으면 발견할 수 있고, 계속 두드리다 보면 문이 열려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매일 묻고, 찾고, 두드려 보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립니다. 더 큰 것, 더 중요한 것, 더 귀한 것을 아는 자로 사는 넉넉함이 생깁니다. 이전 같으면 따지고 화냈겠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두려워하던 마음에 신뢰가 들어옵니다. 부족했던 것들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훈계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4.
훈계와 쓴소리는 죄성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한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사려 깊게 직면해서 자신을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삶의 지혜입니다. 나를 명예롭게 만들고, 앞날을 복되게 만드는 비밀 코드가 훈계와 꾸지람 속에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에게 쓴소리를 한다면 어떤 쓴소리를 할 것 같으십니까? 아내와 남편에게서 어떤 쓴소리가 나올 것 같습니까? 없기를 바라지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누군가 말하기 전에 먼저 묻고 바로 잡는 게 훨씬 좋습니다.고치지 않으면 전부 다 빚으로 남습니다.

한자에 빚 채(債)자를 보면 사람 인(人)에 꾸짖을 책(責)을 씁니다. 빚을 지면 사람에게 책망 받는다는 것입니다. 돈만 그렇겠습니까? 제 할일 다하지 못해서 책망 받으면 그게 다 빚이 되는 것입니다. 고치는 것이 빚 갚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빚을 갚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빚을 갚으십시다. 꾸지람과 쓴소리가 이제는 좀 다른 각도에서 들리면 좋겠습니다. 잠언의 지혜자가 주는 꾸지람의 통찰이 여러분들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는 은혜와 도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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