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7. 주일 설교: ‘끝났어’의 신앙적 용법(요13:1). 양은익 목사.

 

말씀: ‘끝났어’의 신앙적 용법(요13:1.)

1. You must Believe in Spring.
봄이 오는 길목, 3월의 첫 번째 주일 아침입니다. 밝은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에 제 마음에 들어온 문장입니다. 단어가 있었습니다. ‘You must Believe in Spring. 당신은 봄을 믿어야만 해요’. ‘봄을 믿으라’는 말이 든든하게 다가 왔습니다. Bill Evans(1929-1980)라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앨범 타이틀에서 본 글입니다. 사랑하던 여인이 기차에 몸을 던지고, 오랫 동안 아프던 형이 스스로 생을 마치는 비극을 겪으면서 한 연주라고 합니다. ‘그래도 봄이 온다는 것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해요’

오늘 보려고 하는 부정어는 ‘끝났어’라는 부정어입니다. 더 이상 안되고, 길이 없고, 할게 없을 때 튀어 나오는 말입니다. 아픈 단어고, 힘든 단어입니다. 지난 주에 봤던 ‘없다’와 버금가는 힘듬이 깊게 배여 있습니다. 이 말을 언제 마지막으로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써 본 분들은 이 말이 주는 무게감이 생생하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당신은 봄을 믿어야만 해요’. 이 말을 ‘끝났다’는 말과 연관지어 보면, ‘끝났어’는 봄이 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고, 그 반대인 ‘끝나지 않았어’는 그럼에도 봄은 오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끝났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상황이 쉽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자살율은 십 몇년간 부동의 1위입니다. 40분 마다 1명, 하루 38명, 한 해 14,000명(2019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65세 넘은 분들의 자살률이 전체 자살의 30%에 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3.5배, 일본의 2.3배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많을까요?

예전에는 밤이 오면 별을 보고 길을 찾아갔지만, 지금은 바라 볼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사라졌고, 믿음의 힘도 약해졌습니다. 함께 해 줄 가족도 별로 없습니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몸만 아니라, 마음이 죽어가는 이들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말이 부정되고 있습니다. 정치 마켓팅 용어, 종교적인 언어 정도로만 치부되고 있습니다.

2. ‘끝났어’의 신앙적 용법: 숨은 희망 찾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끝났어’라는 말에서 끝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까지 가보시겠습니까?

욥19:25-26에 나오는 욥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욥은 완전히 끝난 사람입니다. 재산, 자녀, 명예 하루 아침에 다 끝납니다. 재기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25절 이전에 보면 완전히 끝난 욥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 있습니다.

‘동기들 마저 떠나가고 친지들마저 외면하는 이 신세, 친척과 벗들은 모르는 체하고 나의 집 식객마저 나를 잊었네.(13-14절), 종들을 불러보아야 대답도 하지 않으니 이 입으로 애걸해야 할 판일세. 아내마저 나의 입김을 싫어하고(16-17절) 흉허물 없던 벗들도 싫어하고 내가 아끼던 사람마저 발길을 끊더군'(19절)

그때나 지금이나 ‘끝나’ 버린 사람에 대한 인심은 야박하고,고약합니다. 하지만 이때 욥이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25절입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공동번역)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살이 다 뭉그러져 더 비참하게 되도 나는 나의 변호인, 나의 후견인인 하나님이 있다. 욥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희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이 복이 있다.(시146:5)

하여, 희망은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희망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들이 하나님께 희망이 있음을 믿고 자신에게 있는 희망을 찾을 때 오는, 만들어 지는 실체고 생명입니다. ‘끝났어’의 순간에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보물 찾기 하듯 어딘가에 ‘숨어있는 희망’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났어’의 신앙적인 용법입니다. 희망은 숨어 있고, 발견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에 필요한 ‘희망’을 찾아내야 합니다.

꼭 찾아 보십시오. 어딘 가에 ‘숨어 있는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 없음 속에 쓸모 있음이 숨어 있는 것처럼 끝난것들 속에 희망이 숨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아내와 남편에게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물방울 떨어져 물컵 채우듯, 한 방울의 작은 감사, 작은 사랑, 작은 격려를 하다보면 숨어있던 보물 같은 희망의 씨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끝났어’의 순간에 더 깊은 감사, 더 애틋한 사랑, 더 간절한 기도와 묵상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게 없으면 아픔이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되서 결국은 그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떠 안을 수 밖에 없는 시태가 벌어집니다.

3. 봄을 믿는 이들이 해야 할 일
(1) ‘끝났어’라는 힘든 상황이 올 때마다 봄이 오고, 희망은 있다라는 믿음과 삶의 태도를 견고하게 가지십시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모든 이들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주님은 ‘자기 사람들’, 잘날 것 없는 당시의 제자들이고, 오늘 이 말씀을 보는 우리 모두가 자기 사람들인데, 그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함께 하시며, 이끌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누리고 믿어야 합니다.

찬송가 394장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 일어도 예수 나의 힘되니 겁낼 것 없네.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하신 주 능력 나를 붙드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우리의 현실이고, 삶입니다.

(2) 희망의 연대: 희망을 ‘혼자’ 찾지말고, ‘함께’ 찾으십시오. 희망은 혼자 찾고, 혼자 갖는 것보다 함께 찾고, 함께 갖을 때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찾는데 옆에서는 나 몰라라 한다든지, 쓸데 없는 짓 한다고 핀잔을 주면 희망을 찾는 이는 외로울 것이고, 그러한 다툼과 언쟁이 희망을 눌러 버립니다.

희망은 연결되야 합니다. 내 희망이 네 희망이 되고, 서로의 희망이 되고, 가족의 희망이 되고, 교회의 희망이 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희망이 발견됩니다. 희망의 공유고, 희망의 연대성입니다.

전도서 4장의 말씀은 희망을 찾을 때도 진리입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4:9-12, 새번역)

희망은 나-너-하나님이 함께 할 때 찾아지는 열매고 선물입니다. 갈등은 과감히 Stop하시고. 힘을 합치십시다.

끝났어의 힘든 순간에도 ① 희망의 성부 하나님, ② 자기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 ③ 성부의 희망과 성자의 사랑을 내 안에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서 함께하면, 우리는 봄이 오는 것을 믿는 사람, 희망을 가진 자로 살 수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멀리서 빈다]는 시, 마지막에서 한마디 던집니다. ‘부디 아프지마라’.봄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부디 아프지 마십시다’. ‘끝났어’에 지지마시고, 오는 봄을 희망으로 맞이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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