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 주일 설교: 동이 트려면 얼마나 더(사21:11~12). 양은익 목사

 

 

말씀: 동이 트려면 얼마나 더(사21:11~12)

오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이방 나라들의 심판을 예고하는 모음 부분에 나오는 에돔에 관한 심판 부분입니다.

1.
오늘 본문에는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가 나옵니다. 질문도 간단하지 않고, 대답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질문하는 자’는 세일에서 온 사람입니다. 11절에 보면 두마와 세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두마와 세일은 ‘에돔’에 속해 있는 지명입니다.

세일에서 온 사람이 심판에 관한 소식을 들었는지 파수꾼에게 와서 묻습니다. 동이 트려면 얼마나 더 남았는가? 상징적인 질문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둠이 물러가고, 재앙이 물러가느냐?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절박한 물음입니다. ‘언제 어둠이 물러가고 동이 틀까?’ ‘언제 아픔이 끝날까?’ ‘언제 코로나가 종식될까?’ 이런 물음은 아픔(힘듬)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깊어질 수 밖에 없는 물음입니다. 이런 긴박한 물음을 밤새 성루를 지키며 살피고 있는, 누구보다도 새벽에 민감한 파수꾼에게 와서 묻고 있습니다.

고통과 불면의 긴 밤 지새우고 아침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양희은. 아침이슬)

아마 에돔에서 온 사람도 긴 밤 끝내고 아침 동산에 올라 힘들었던 밤 뒤로하고, 작은 미소를 다시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언제 동이 틀까?’ ‘언제 어둠이 사라질까?’ 이 마음 아시겠습니까? 우리도 물었던 질문이고, 앞으로도 묻게 되는 절실한 질문입니다.

이 절실한 질문에 파수꾼이 대답합니다. “아침이 온다”. ‘온다’는 말은 반드시 온다는 ‘완료시제’입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불면의 긴 밤이 끝나고 환한 빛으로 가득한 아침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힘이 나지 않으세요. ‘코로나가 올 해 안에 끝나. 마스크 벗어도 되. 예배 후에 함께 식사해도 되.’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파수꾼의 대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침이 반드시 온다. ‘그러나 또 다시 밤이 온다”. 12절. 새번역으로 다시 봅니다. ‘파수꾼이 대답한다. 아침이 곧 온다. 그러나 또다시 밤이 온다. 묻고 싶거든, 물어 보아라. 다시 와서 물어 보아라’ 백번을 와서 물어 봐도 내 답은 똑같을 것이다.

아침이 오지만 또다시 밤이 오고, 시련이 오고, 고통이 온다는 것입니다. 허망한 대답이고, 힘 빠지는 대답입니다. 그럼에도 파수꾼은 파수꾼답게 돌려말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정직하게말합니다.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겠지만, 아침이 와도 다시 밤이 온다. 지금 너희들에게 닥친 삶의 현실이다’. 파수꾼이 이사야라면 이사야는 정치하면 안되는 사람입니다.

2.
유명한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어떻게 끝나는지 아십니까? 이사야서 21:12절 처럼 끝납니다. 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역병, 페스트, 코로나가 끝나 사람들이 거려로 몰려나와 축포를 쏘면서 축하를 할 때에 페스트와 맞서 싸웠던 의사 리유가 독백 처럼 말합니다.

‘도시로부터 들려오는 환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이 기쁨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듯 기뻐하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페스트 균은 결코 죽지도 않고 사라져 버리지도 않으며, 가구들이며 이불이며 오래된 행주같은 것들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잠든 채 지내거나 침실, 지하 창고, 트렁크, 손수건 심지의 쓸데없는 서류들 나부랭이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다가 인간들에게 불행도 주고 교훈도 주려고 저 쥐들을 잠에서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 안에다 내몰고 죽게 하는 날이 언젠가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열린책들. 페스트)

12절에서 파수꾼이 하는 말과 똑같습니다. 아침이 오지만, 언젠가 다시 밤이 온다. 끝나지 않은 싸움이고, 이게 인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는 유럽에서는 벌써 코로나 이후에 무엇이 올 것인자를 생각하고 있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게 코로나 같은 역병이던, 또 다른 거대한 참사든 다시 밤은 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8장입니다. 8:22부터 25절입니다. 바울의 정직한 고백이 나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며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롬8:22~25)

무슨 얘기입니까? 누구도 빠지지 않고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받는 눈에 보이는 세상 가운데는, 어둠과 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세상 가운데는 참된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보이기 시작하면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어디서 희망을 찾고, 어디서 빛과 아침을 찾아야 합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 속에 희망이 없다면 희망과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답을 알고 계십니까?

답을 알면 마야 안젤루(1928~2014)라는 시인이 노래한 처럼.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라는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분 참 상처 많이 받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미국의 국민 시인인데 자신은 새장에 갇힌 새-자신이지요-, 그 새가 왜 노래하는지 안다는 겁니다.

새장에 갇혀 있는 새가 뭐가 좋아서 노래합니까? 근데 노래한다면, 노래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이지요. 그의 내면. 자신 안에 빛이 만들어지면, 자기 안에 새벽이 오게되면 밤이 오고 또 와도 희망할 수 있고, 노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은 이런 노래도 했습니다. ‘Still I Rise. 여전히 나는 일어납니다’ 우리도 이렇게 노래하고, 우리 자녀들도 이런 말 하면서 살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들, 삶의 아침은 바깥, 외부에서만 오면 안됩니다. 그러면 또오는 밤을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아침과 희망은 외부에서 오면 안되고, 내 안에서 시작되야 합니다. 내 안에 빛이 비쳐질 때 만만치 않은 어둠을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7:20-21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극적인 통치와 다스림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저 외부, 바깥 어딘가에서 와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뭐라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내 안에 있게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한복음 8:12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게 되면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다. 주님이 빛이시고, 빛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면 빛이 내 안에 환하게 깃들 수 밖에 없습니다. 아침이 환하게 동 터오는 것입니다.

4.
희망과 빛이 밖에서만 온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고,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면 새 장 안에 갇혀 있어도 노래 할 수 있고, 밤이 또와도 여전히 일어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자랑이고, 특권이며, 은총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신앙을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웃습니다. 그래도 이런 귀한 신앙을 놓치면 안됩니다.

‘가장 원대한 비현실을 붙드는 사람만이 가장 원대한 현실을 창조해 낸다’(행간, p.18) 바울을 연구하고 있는 아감벤이라고 하는 철학자가 한 말입니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가장 원대한 현실을 만들어 내는 힘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도 누리고 가져 보십시다. 그래서 좀 든든하게 살아 보십시다.

빛을 만나는 조건은 하나입니다. 내가 어둠이라는 사실, 세상이 어둠이라는 사실만 정직하게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빛이 들어옵니다. 빛은 빛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어둠만이 빛을 받아들입니다. ‘내가 빛이다. 세상이 빛이다’ 라고 우기면 하나님의 통치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내 안에 빛이 있고, 내 안에 아침이 만들어지면 또다시 밤이 와도 이겨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고 오늘의 성찬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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