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9. 주일 설교: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마6:25~34). 유형주 목사.

 


                                                 말씀: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마6:25-34)

 
우리는 보통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행복하길 원합니다. 누구나 행복해 지고 싶어 합니다. 행복을 누리고 싶은 이유는 누구나 다 근심과 걱정, 불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근심과 걱정, 불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에서 불안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불안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못한 상태, 그래서 ‘염려’와도 같은 말입니다. 염려란 ‘마음을 놓지 못하여 걱정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염려는 우리의 삶에서 행복을 빼앗는 무서운 복병인 것입니다. 어느 곳에나 이 복병은 숨어 있습니다. 순식간에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불안과 걱정을 심어 주는 것이 사탄 마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잘 알려진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그 중, 오늘 읽으신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염려를 극복하는가? 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1. 염려를 적으로 간주하십시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들은 누구나 다 염려, 걱정이 다 있습니다. 염려는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다른 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만족스러운 환경은 세상 떠날 때까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우리 속에서 이 염려와 근심과 걱정의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잠언 15:13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마음에 염려하지 말고 즐겁게 해야 됩니다. 
 
우리들이 염려하는 것들은 대부분이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염려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차피 안 됩니다. 그때는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약 30 cm)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걱정함으로는 우리의 키를,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신앙과 온전한 신뢰가 없을 때 염려와 불안이 자라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1~32절)
 
여기서 ‘아신다’는 것은 해결해 주실 분이십니다. 염려는 이방인(불신앙)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깐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들 이방인들은 매사에 불안해하고 염려합니다. 염려는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면 신앙은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과 불평 보다는 감사의 삶을, 그리고 행복의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낙심하기보다는 안정된 평안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사탄에 꼬임에 빠져서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기 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늘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우리의 자녀 됨. 이것이 바로 그런 관계를 이야기 해 주는 것입니다. “염려는 내 친구가 아닙니다. 염려는 나에게 친구가 될 수 없고, 나에게는 원수입니다”  
 
2.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1)내일에 대하여 불안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 믿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맡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새를 통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저 하늘에 나는 새들을 보라. 저 새들이 언제 씨앗을 뿌려서 언제 거둬서 모아두었다가 먹고 다니느냐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6:30)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들풀도 하나님이 키우신다는 것입니다.
 
2)불안해하는 이유 두번째는 누군가에 대해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 하고, 너희들하고 비교해 보라. 들풀 하나 하고, 너희들 자신하고 비교해 보라. 너와 나라는 존재가 무엇이냐? 새와 들풀도 입히시거든, 너희라는 소중한 존재를 얼마나 더 소중하게 생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 속에 ‘저 공중의 새나 들풀 한 포기’가 더 귀하다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같은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의 주권(Lordship,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우리의 염려되는 삶을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사십시오.
  
3. 오늘 할 일에 성실 하십시오.
염려를 극복하는 세 번째는 오늘을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일 때문에 불안하고, 염려하면 안됩니다. 과거에 받았던 상처와 아픔들을 새끼줄로 꽁꽁 묶어서 오늘과 연결하면 안됩니다. 어제(과거)는 지나갔습니다. 과거를 심리적으로 붙잡지 말아야 합니다. 다가올 미래의 일도 끌어와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을 신경 쓰고 살아가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에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4)(아멘!). 내일이 주어가 아닌데, 주어처럼 사용되었습니다. 내일 일은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이 염려된다면 오늘에 성실하면 됩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나는 때때로 우리의 평생 겪어야 할 고난이 우리 등에 짊어지기에는 너무 큰 나뭇단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한꺼번에 옮기라고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나뭇단을 풀어서 오늘 또는 내일에 날라야 할 짐만을 진다면 쉽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제의 짐과 오늘의 짐, 그리고 내일의 짐을 한꺼번에 모두 짊어지려하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더합니다.(존 뉴턴, 나같은 죄인 살리신 작사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 미사 내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4. 먼저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성령님(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 인생에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를 견딜 수 있게 하시며(시편 23:4), 처참한 고난의 들판을 달릴 때에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십니다. 염려가 사라지면 염려와 관련된 질병도 사라지고, 그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면 대신 하늘 평강이(평화가) 채워질 줄 믿습니다.

염려는 문제를 보게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염려는 문제를 보고 원망하게 하지만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하고 선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염려를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십니까? 실패에 자리에 혼자 남아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낙심과 절망이 문득문득 치밀어 올라서 마음을 막 요동치게 하십니까? 때로는 일어날 힘조차 없으십니까? 그렇다고 실망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편에 되어 주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걱정 근심에 함몰되시지 마시고 무쳐 버리지 마시고 다시 일어나서 믿음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23~24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 한번 이상 넘어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을 잃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만나기도 합니다. 또한 사업의 실패로 참담한 심정이 되기도 하고 관계의 단절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이런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왜 처음부터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시지 않으셨느냐?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게 물으신다면 그건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가끔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않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롬8: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잠깐 넘어지게도 하십니다. 흔들어서 주의 성품을 본받게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성숙시키십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붙드시는 주님의 손길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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