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장 7절)
우리는 모두 흔히 말하기를 주님의 군대요, 믿음의 용사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이나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군대에서, 군인의 가장 중요한 위치는 라인 홀드, 자기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십자가의 군사로써, 이 어려운 때일수록, 강하고 담대하게, 두려움을 정복하고, 또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제자였던 디모데, 그는 에베소 교회의 후임자(제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남기고, 사도 바울은 계속 다른 지역으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도 사람인고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떨 때는 괜찮은 것 같다가, 또 현실을 바라보았을 때는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거기다가 그의 스승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디모데, 자기의 순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나이가 젊은 목회자였습니다. 목회자로써 경험이 적었습니다. 성격조차 아주 소심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위장병으로 계속 고생해서, 많이 위축된 상태였습니다(딤전 5:23).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제자 디모데를 향해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본문 딤후 1:7)의 핵심 구절을 통해서 이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너(디모데)는 세상만 바라보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1:7)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엄청한 약속이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이 약속이 디모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2,000년 후에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오늘 모든 문제의 해결에 키(열쇠)가 되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힘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능력의 말씀이 여러분들 마음 속에, 현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능력, 그 두려움을 쫓아 낼 수 있는 주님의 (강력한) 능력이 우리들에게서 나타나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저는 디모데후서 1장 7절 말씀을 통해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3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후반절에 보시면,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이니…’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3가지를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주님의 능력으로 돌파하십시오!
여기서 본문이 말하는 ‘능력’(헬, 뒤나메오스; 롬1:16, 빌4;13)은 단순한 힘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성경 언어학자 ‘로버슨’ 이 능력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두려움 없이 바라보게 하고, 현재 직면한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그대로 두려움 없이 처리하여 여전히 의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말한다’라고 풀어서 말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상태를 본문에서 능력이라고 풀어서 말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빌립보서 4장 12-13절입니다. ‘나(바울)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주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이것(서 있어야 될 위치)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하나님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서 있는가? 늘 점검해야 됩니다. 우리가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다면,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 그리스도 밖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리라'(사41:10).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개역.수1:9)
성경의 수많은 인물(믿음의 사람)들도 그렇게 주님의 능력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모세, 여호수아와 갈렙, 다윗, 엘리야 등)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과소평가할 필요 없습니다.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우리 심령 속에 흘러넘치는 영적인 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능력을 가진 자로써,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돌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주님(하나님)의 사랑으로 배려하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오직 능력과’ 그 다음에 ‘사랑(갈 5:23 성령의 열매 – 사랑)과’입니다.(오늘 본문의 사랑은 – 헬라어, 아가페스 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능력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가페스, 우리를 위해서 독생 성자 예수님을 보내 주신 성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실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을 용납해 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도 없고, 나 자신을 사랑할 능력도 안 되는데, 어떻게 누구를 기쁘게 합니까?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말씀합니다. 예수님 믿고 죄 사함 받으면 이미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께서 할 수 없다는 말 하지 마시고, 성경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져 있으니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할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고, 사랑은 하면 할수록 넉넉해지고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넓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이후에 자신에게 몰두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전에는 (예수님 만나기 이전에는) 자기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뒤(회심 후), 성령님이 부어져 버리니깐,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이웃 영혼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사도 바울은 우리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는 생각합니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민족을 향한 사랑(긍휼)의 마음과, 이 근심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생명)에 이르게 하고, 회개를 이루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 근심(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마 6:31)은 사망을 이루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하나 사랑이 두려움을 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0). 사랑 많이 두려움을 내어 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써, 이웃들을 배려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입니까? 바로 가족입니다. 첫 번째는 배우자(부부)이죠. 그리고 그 다음은 부모와 자녀입니다. 배우자와 가족에게 사랑을 실천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써, 반드시 가족사랑은 실천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 제 힘으로는 도저히 제 가족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써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께서 우리 집에 주인이심을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과 이웃을 배려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3. 절제(근신)하는 마음으로 극복하십시오!
세 번째는 절제하는 마음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예전 개역한글성경에는 절제가 ‘근신’(언행을 삼가도 조심하다)이라고 변역되었습니다. 근신이란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오직 능력과 사랑과 다음에, 절제(근신)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절제(근신)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도 근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시다시피 다윗이 골리앗을 물라친 이후에, 사울 왕에게 쫓김을 당합니다. 그렇게 도망을 당하던 중, 그곳 엔게디 광야 굴에 있을 때, 그곳까지 사울 왕이 쫓아옵니다. 사울 왕이 잠시 볼일을 보러, 다윗이 숨어 있는 그 광야 굴속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때 다윗의 부하들이 ‘천우일재의 기회라고 사울 왕을 제거합시다.’ 라고 합니다. 그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l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신 것이다’ 내가 왕을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다고 합니다. (삼상 24:6) 근신하고 절제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 다윗의 고백은 사울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저 사울 왕보다 하나님이(하나님께서) 더 무섭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이 절제(근신)하는 마음으로 극복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삭도 절제한 사람입니다. 리브가와 결혼 후 20년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이복 형 이스마엘처럼, 또 다른 여인을 얻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절제합니다. 절제하고 기다리고 20년 만에, 쌍둥이 아들(야곱과 에서)을 얻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근신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에서도 마지막에 나오는 열매가 절제의 열매입니다. 99번 참았다가 1번 실수해서 99번 참은 것이 다 물거품이 되고,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절제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할 것은 행하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지 않는 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이 어려운 시대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내어 쫓으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돌파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배려하시고, 절제의 마음으로 극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십니다'(딤후1:7. 공동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은사에 소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담대하고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대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를 바라십니다'(메시지 성경)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