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돌파3: 서로 사랑으로(요13:34~35. 요15:9~12)
1.
‘비극이 희극보다 위대하다’ 없기를 바라는 비극이 가지기를 원하는 희극보다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만들어진 문장은 아닙니다. 여기서 위대하다는 것은 영향력이 크다는 것입니다. 희극보다 비극이 더 세게 다가옵니다. 비극의 충격이 희극의 충격보다 큽니다. 비극에 비하면 희극은 가볍습니다. 성공과 성취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비극은 비극이 만들어 내는 슬픔과 고통에 사로 잡혀 침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극에는 비극이 만들어내는 감정이 있습니다. 비극이 만들어 내는 감정을 ‘울’(鬱)이라고 합니다. 우울할 때 그 울(鬱)입니다. 근심(憂)하는 감정이고, 시름(愁) 가득한 감정입니다. 근심과 시름, 憂愁, 얼마나 힘든 감정입니까?
더 많은 말씀 드리지 못하지만, 힘든 중에 하게 되는 이 근심과 시름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안목과 깊음과 변화가 만들어 집니다. 깊은 시름을 통해 희극일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생각하지 못하던 것들을 생각하고, 꿈꾸게 됩니다. 비극이 만들어내는 역설입니다. 희극은 낭비해도 되지만 비극은 낭비하면 안됩니다.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고, 자신을 깊게 보면서 숙성한 삶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난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지만, 난관은 삶을 새롭게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수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치고 들어올지 모릅니다. 자식들이 치고 들어올지, 남편이 치고 들어올지, 사고가 치고 들어올지, 병이 치고 들어올지, 사회가 치고들어올지 우리는 모릅니다. 모르지만 잘 새기게 되면 귀한 삶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난관을 통해 주시는 선물이 반드시 있습니다.
2.
하여, 난관은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돌파해 나가시겠습니까? 주님은 난관 앞에 무너져 가는 제자들을 보면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너지지 말고 ‘가지’와 ‘친구’라는 신분 의식을 가지고 나와 함께 하자.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명령 하나를 던져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혼자 사랑이 아니라 서로, 나와 너가 함께 사랑함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 소리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맞아. 이거야. 대단하다’ 하면서 마음게 끌리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은 이 소리를 어떻게 받았을가요? 깊게 받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왠 사랑. 늘 하던 말씀이잔아’. 우리랑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속으로 기분 나빠했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 뒷끝 있으시네. 자리 싸움 한번 한 것 가지고 또 말씀하시네’
제자들은 나중에야 이 말씀의 진가를 알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 어떻게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난관을 헤쳐 나가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세상은 사랑을 대단하게 보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사랑이 아니라 더 독해지라고 합니다. 독해져서 빠져 나가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난관을 돌파하는 것보다는 좋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약해 빠진 감상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어떤 것보다도 강한게 사랑 아닙니까? 강하지 않으면 사랑은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강한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고통받는 세상과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행위이고,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사상적인 언어입니다.
중국에서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때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정권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초기에 좀 더 잘 대처 할 수 있었을텐데 그걸 못한 겁니다. 사랑이 없는 정치, 사랑이 없는 사회와 경제는 잠깐 성공에 도취하다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이 없는 세상, 사랑이 없는 삶은 실패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난관이라고 하는 거대한 벽이 가로 막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것 없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갈등과 싸움만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 실타래 풀리듯 하나하나 풀려나가게 됩니다.
3.
주님이 위기 앞에서 지리멸렬하게 무너져 내리는 제자들을 향해서 주신 마지막 카드가 사랑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너희는 내 안에 있게 되고, 내 안에 있게 되면 너희는 산다. 내가 가진 기쁨을 너희도 가지게 된다’ 여러분들, 이 답,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13장부터 고별 담화를 말씀하시는데 고별담화의 결론은 ‘서로 사랑’입니다. “내 안에 거하고, 내 친구가 되서 ‘서로 사랑’ 함으로 위기를 이겨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13:34~35절 한번 더 보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주님께서 주신 권위있는 명령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어떤 사랑을 하라고 하십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은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세족(洗足) 사랑입니다. 세족 사랑은 제자들의 더러운 발, 냄새나는 발을 씻어 주신 것으로 형상화된 사랑입니다. 발을 씻는 것은 종들이나 하던 미천한 일인데 그 일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겁니다.
어떤 제자들입니까? 위기가 닥쳐 오고 있는데도 누가 크냐 하면서 싸우고 있는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 중에 한명은 이미 예수님 팔 생각을 마음에 굳힌 제자도 있었습니다. 몇 시간 후면 다 도망칠 제자들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무릎 꿇고 발 씻겨 주신 것인데, 그런 사랑을, 그런 마음을 제자들이 가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세족 사랑은 다른 게 아닙니다. 자기는 낮추고, 너는 높여주는 사랑입니다. 세족 사랑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일이 있지만 마음에 담지 않고 털어버린 용서의 사랑입니다. 주님을 발을 씻겨주심으로 서로 낮아지고, 서로 높여주고, 서로 털어 버리고, 서로 용서하는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고, 그런 사랑을 서로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일을 끄집어내서 상처를 더 크게 내 버립니다. 자기를 낮추는 게 아니라 자기 방어에 급급합니다. 서로 그렇게 합니다.골은 깊어지고, 판은 더 커져 버립니다. 태반이 이런 방식을 고수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세족 사랑에 난관을 돌파하는 중요한 답이 있습니다. 난관의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귀한 답과 길을 알려 주심에 감사하십니다. 서로가 자기를 낮추고, 서로가 털어내고 용서 하기 시작할 때 사랑이 나오고, 그 사랑으로 난관을 돌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비극을 위대하게 만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비극은 비극으로 허무하게 끝납니다. 사랑이 있어야 비극이 위대해집니다. 난관 중에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할 때 주 안에 거할 수 있고, 주 안에 거하기에 주님과 함께 할 수있고, 주님과 함께 하기에 기쁨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15:11절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사랑의 결과는 기억하십시오. 기쁨입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한데서 오는 기쁨이고, 서로 사랑함으로 난관을 이겨내는 기쁨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기쁨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4.
서로 사랑,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내 몸 하나 사랑하는 것도 힘들고, 내 가족 사랑하는 것도 힘에 부칠때가 많은데 이런 사랑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이라는 영성가의 글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뿌리는 사랑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께 깊이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다’ 무슨 얘기입니까? 사랑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봐서 알지 않습니까? 내 의지에서 나오는 사랑은 번번히 깨집니다. 사랑은 사랑하겠다는 내 의지와 다짐에서 오지 않습니다.
사랑은 믿음에서 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믿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는 신뢰에서 사랑이 만들어지고, 사랑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과 깊게 교제할 때 잔에 물이 흘러 넘치듯 사랑이 흐르게 됩니다. 사랑은 사랑이신 하나님, 사랑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받는 복된 선물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뜨거운 고백 하나 읽고 마치겠습니다. 베드로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극복한 사람인데 그래서 이 고백이 더 절절해 집니다.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거기에 달려 있다는 듯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실제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냅니다’(벧전4:8. 메시지성경)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위대한 계명으로 난관과 비극을 극복하는 은혜와 기쁨과 감격이 있는 여러분의 인생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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