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 돌파2: 내 영혼의 친구, 주님과 함께 (요15:12~15)
1.
잘 알만한 속담 입니다.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간다. 한 집에 살면서 시어미 성(姓)도 모른다. 가난 가난해도 사람 가난이 제일 서럽다. ‘바늘 가면 실 따라갑니다’. 바늘과 실의 동행.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 관계를 말합니다. ‘한 집에 사는 시어미 성도 모른다’ 왜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관계의 실패입니다. 가난 가난해도 인물 가난이 제일 서럽다. 가난도 서러운 마당에 도와 주는 이 마저 없으면 정말 서럽습니다. 관계와 친구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속담들입니다.
주님은 15장에서 두 가지 그림을 보여주십니다. 가지와 친구 그림을 보여 주시면서 난관에 빠져 두려워 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가지고, 내 친구다’ 하시면서 이러한 신분, 존재의식을 가지고 나와 함께 난관을 돌파하자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지난 주 말씀 드린 ‘가지 비유’ 처럼 ‘친구’도 난관을 헤쳐 나갈때 없으면 안되는 중요한 변수, 존재입니다. 친구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주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친구라는 말이 평가절하 되있습니다. 견제하고, 경쟁하는 일이 많다 보니까 친구 만드는 일도 별로 없고, 친구되기도 힘이 듭니다. 친구보다는 대충 아는게 서로 편합니다. 13절에 보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얘기가 나오는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친구는 중요합니다. 나와 너가 진짜 친구라면 난관의 때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응원하고, 믿어주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양보하고,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줄려고 애쓰지 않겠습니까?
세월호 가라 앉을때 한 학생이 자기가 입고있던 구명 조끼를 친구한테 건냅니다. ‘이거, 너 먼저 입어’. 친구는 받으면서 ‘너는?’. ‘응, 나는 저기서 또 갖고 오면돼’ 구명 조끼를 건네던 친구는 가져오지 못하고 희생됐다고 합니다. 친구이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친구 얘기 나오면 안 볼 수 없는 함석헌 선생의 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런 사람 가졌는가? 그런 친구 있는가? ‘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부분)
2.
난관에 처할 때 친구는 필요하고, 절대적입니다. 난관의 때는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때입니다.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고, 관계를 새롭게 하면서 깊은 관계 맺음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하는 ‘의미있는 때’ 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살펴보고, 주님과의 관계도 살펴 봐야 합니다.
친구 맺음이 제대로 되면 난관을 헤쳐 나갈 힘이 선물처럼 나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친구됨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의 친구, soul mate, soul friend 이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은 물론이고, 지금 우리들에게도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신비하게도 ‘친구 되자’고 하십니다. 제자들과 동일하게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라고 하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도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주님이 말하는 친구는 단순한 우정 정도의 친구가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놀라운 친구됨입니다.
신앙생활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생활은 교회의 일상에 참여하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가? 친밀한 교제가 있는가? 물어야 하고, 살펴봐야 합니다.
어느 왕이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세상의 진리를 추리고 추려서 한 문장으로 만들어 와라. 신하들이 가지고 온 답이 뭔지 아십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친밀한 관계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관계와 교제의 기본은 말 걸기와 말 듣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없으면 깊은 관계는 만들어 질 수 없습니다. 주님과의 교제도 다를 것 없습니다. 영혼의 친구이신 주님께 순간순간 말을 걸어야 하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을 거는 게 기도고, 말씀을 듣는 게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에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말을 걸지도 않고, 말씀도 묵상하지 않으면 ‘한 집에 살면서도 시어머니 성 모르는 것’처럼 주님을 알 수가 없다. 주님은 우리가 문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계3:20.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난관이 곳곳에 지뢰처럼 묻혀 있는 우리에게는 머리로 어렴풋이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가슴으로 뜨겁게 만나는 하나님이 절실합니다. 이런 뜨거움은 귀기울이고, 간구 할때, 말걸고, 말 들을때 일어납니다. 가슴으로 뜨겁게 만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치유를 주고 힘을 줘서 ‘구원’, ‘해결’을 선물해 줍니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교제중에 주시는 선하심이 있습니다.
시94: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중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친밀한 교제 중에 임하는 뜨거움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는 것은 인간의 영이 주의 영과 연합하는 신비한 관계입니다. 주님은 이런 영적인 연합,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나와 친구하자’ 이러한 친밀한 교제와 관계 안에, 친구됨에 난관을 이기는 매우 강력하고 큰 힘이 있습니다. 내 영혼의 친구되신 주님과 깊게 교제하는 현명함과 지혜와 겸손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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