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 주일설교. 마가복음 강해 42: 딥러닝, 오만과 나태 버리기(막8:34. 제자의 삶 4). 양은익 목사.

 


마가복음 강해 42: 딥러닝, 오만과 나태 버리기(막8:34. 제자의 삶4).

‘나이에는 테가 있다’는 윤관영 시인의 시 한 대목 읽고 시작하겠습니다. ‘무맛을 아는 나이가 있다. 아려도 생무가 좋은 나이. 무냄새가 좋은 나이. 무맛이 배보다 좋다는 그 거짓말을 이해하는 나이가 있다. 나이맛을 아는 나이가 있다. 흙맛을 아는 나이가 있다. 바람맛을 아는 무청같은’ (윤관영, 나이에는 테가 있다. 부분)

많은 맛이 나옵니다. 무맛, 나이맛, 흙맛, 바람맛. 좋아하지 않는 맛들이지만 이런게 좋아지는 나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맛들은 나이에 테가 많아질 때 알게되는 ‘깊이’가 있는 맛들입니다.

저는 여기에 ‘신앙의 맛’ 하나 더 추가 하겠습니다. 신앙의 맛도 무맛처럼 처음에는 맛없어 합니다. 뱉기도 하고, 불평도 하지만 맛있어 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 맛을 아는 때가 됐는지요! 신앙은 언제 맛이 들까요? 어떻게 하면 맛이 들까요? 신앙은 어떻게하면 깊어질까요? 장맛처럼 계절이 바뀌면서 저절로 깊어지고, 맛이 들면 좋겠지만, 주님께서 요청하는 걸 보면 저절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신앙의 맛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주님을 따라 갈때, 따라가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신앙의 테, 흔적이 만들어질때 ‘깊은’ 맛을 알게 됩니다.

오늘 네 단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깊음. 배움, 오만, 나태입니다. 주를 따라가는 이들이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1. 깊음(Deep)
‘깊음’은 신앙의 길을 가는 가는 모든 이들과 교회가 가져야 할 삶의 질이고, 삶의 자세입니다. 생각도 깊어야 하고, 신앙도 깊어야 합니다. 말도 깊어야 합니다. 그래야 뭔가가 나옵니다. 깊다는 게 뭡니까? 신중하다, 가깝다, 생각이 풍부하다. 이해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없으면 안되는 감각들입니다.

깊이가 있어야 자신만 보지 않고 너를 보게 됩니다. 너를 넘어 하나님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실상을 보게 됩니다. 깊이에 대한 감각과 깊이 보려고 하는 수고를 포기하지 않아야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신앙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신앙의 삶에서는 깊음이 열심과 열정보다 앞에 와야 합니다. 깊이가 없으면 열심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바람 한번 불면 다 꺼져 버립니다. 깊이가 없으면 잘못 가고, 자기 마음대로 갑니다. 깊게 만드는 기회를 자신에게 줘야 합니다. 그래야 꺼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2. 배움과 따름.
깊이는 어떻게 하면 생깁니까? 깊이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 먹는 것으로도 안됩니다. 마음 먹었다면 마음 먹은 대로 나를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환경을 바꿔야 마음 먹은 대로 되지, 마음만으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깊어지려면 배움이 있어야 하고, 배움에 대한 ‘따름’이 있어야 합니다. 딥러닝(Deep Learning)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딥러닝이라는 말은 인공지능 쪽에서 많이 쓰고 있는 말이지만,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도 절실한 단어입니다. 깊게, 열심히, 자세히,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보이고, 신앙이 보이고, 하나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자들의 1번 과제는 배우는 겁니다. 배우는 자가 제자지, 배우지 않으면 제자가 아닙니다.

골2:3절 말씀 처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기’ 때문에 주님에 대해 깊게 배워야 합니다. 정체가 무엇인지?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어떻게 사셨는지,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어떤 성품을 가지셨는지, 무엇을 요청하고 있는지 깊게 배워서 따라 갈때 주를 따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주님은 구원만해주시면 되요. 나더러 따라오라. 배우라, 닮아라. 이런말 하지 마세요’. ‘알아서 할테니 내버려 두세요’ 이러면 깊어질 수가 없습니다.

34절 다시 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상관하지 마라가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정도로 깊게 배우고, 깊게 따르라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이 말을 뒤집으면 주님을 따르는 자가 가져서는 안되는 뿌리 깊은 본성이 나옵니다. 오만과 나태. 오만하면 자기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나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태하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순종을 할 수 없습니다. 오만과 나태는 신앙뿐만 아니라 삶을 망가지게 하는 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깊음을 방해하고, 신앙의 삶을 방해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두 가지에 넘어졌고, 지금도 넘어지고 있습니다. 넘어지면서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만과 나태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 싸움입니다. 버리지 못하면 깊은 배움도, 주님을 따르는 일도 일어나기 힘듭니다. 항상 살펴 봐야 합니다. 내가 지금 오만한가? 내가 지금 나태한가?

3. 오만 버리기
오만이 보이게 되면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는 오만해야지, 잘난척도 좀 해야지 ‘ 그러면 저는 할말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필요하겠지만, 주의 나라에서 ‘오만’은 독입니다. 오만할수록 주의 길에서 멀어집니다.

오만은 내가 당신보다 더 낫다는 자기 높임의 의식이기 때문에 오만하게 되면 다른 이들의 소리 잘 안들립니다. 사람은 성공해도 오만하고, 실패해도 오만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오만함이 없는데가 있나? 어디나 자기 강함과 자기 자랑으로 꽉차 있습니다. 조금만 강해지면 오만해지고, 조금만 약해지면 비굴해집니다. 오만이 있는 한 오만과 비굴은 돌고 돕니다.

이런게 좋아 보이십니까? 자기 과신, 자기 우월은 잠깐입니다. 오만은 하는 사람도 망가지고, 받는 사람도 망가지는게 만듭니다. 어떤 오만이든 오만은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아담은 추방됐고, 바벨탑은 무너졌습니다.

세상은 오만을 부추기고 있고, 충분히 오만해 있지만, 주를 따르는 자들은 동조하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따라 오라 하면서 왜 1번으로 자기를 부인하라하셨는지 알아차려야 합니다. 주를 따르는 길은 오만의 길이 아니라 겸손의 길이고, 섬김의 길이고, 사랑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제자의 길은 오만함을 버리고, 자기 부인을 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주님은 이 자기 부인의 겸손과 낮아짐을 사람을 살려내는 구원의 수단으로 쓰십니다. 

오만한 마음이 들어오면 교회 이름 떠 올리세요. 아! 내가 들풀이지. 들풀같은 존재지. 우리는 오만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수긍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만함이 무너져야 은혜가 들어오고, 감사가 들어 옵니다. 오만을 버리지 못하면 만족, 감사, 기쁨은 누리기 힘듭니다.

독버섯의 독 함량이 몇 %인지 아십니까? 저는 독버섯의 독이 적어도 80% 정도는 독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단 1%만이 독이라고 합니다. 1% 가지고 독버섯이 된 것입니다.  식용버섯과 독버섯의 성분 차이는 1% 입니다.  오만이 독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1%의 오만이 나와 너 모두를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사람을 향한 오만도 조심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오만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것처럼 무시하면서 사는 게 오만 아닌가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도 오만입니다. 신앙은 오만이 무너질 때 시작됩니다. 지금 누구에게 오만한가? 살펴 보시겠습니까? 있다면 버리는 깊은 배움, 해보시기 바랍니다.

4. 나태 버리기
또 하나 신앙의 길에서 깊게 배워야 할 Deep Learning은 나태입니다. 나태는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순종의 삶에서는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나태와 순종이 무슨 연관이 있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나태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닙니다. 그리스어로 나태는 아-케도스(a-kedos)라는 단어입니다. 돌보지 않는 것, 정열이 부족한 것을 나태로 봤습니다. 메말라 있는 상태입니다. 나태는 열정과 열심,열의, 환희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매일이 권태롭고, 우울합니다. 허무함이 쑥 들어 옵니다.주를 따르려면 순종할 힘이 있어야 하는데 나태가 힘을 다 뺏어가 버립니다.

수도사들이 사막에서 수도할 때 ‘한낮의 마귀’가 있었다고 해요. ‘한낮의 마귀’가 나태입니다. 이게 들어오면 수도생활은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해서 뭐하나’

나태는 굉장히 위험한 사인입니다. 삶을 방해하고, 신앙의 삶을 막아 버립니다.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영광은 보지 못하고, 내 안에서만 맴돌게 만듭니다. 아침마다 새로우니 늘 새롭도다가 아니고, 아침마다 괴로우니 늘 괴롭도다. 이렇게 되 버리는 겁니다. 아침은 힘들고, 점심에는 짜증나고, 저녁에는 우울하고. 곳곳에 나태가 숨어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있고, 부부 사이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고, 하나님에게도 있습니다. 벗어나야 되고,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겨 놓으신 영혼의 불꽃이 있습니다. 그 환희와 정염의 불꽃이 뜨겁게 불타 오르게 해야 합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