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4. 주일 설교: 예수께로 달려갑니다.(빌3:10~14). 김명숙 전도사

 

 

말씀: 예수께로 달려갑니다.(빌3:10~14)

여러분은 무엇을 향해 하루하루를 살아가십니까? 무엇을 바라보며 혹은 무엇을 고대하고 계십니까? 올해 목표, 10년의 목표, 20년, 30년, 평생에 바라는 목표가 있으신 분도 계실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기도제목에 그 바라는 소망들이 담겨 있습니다. 건강과 진로와 직장과 학업과 관계회복과 가족구원과 성령충만 등등 실생활에서 구체적인 기도제목부터 영적인 부분들까지, 또 당장에 필요한 부분들로부터 멀리 바라보며 소망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소망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되고, 그 기대를 붙잡고 어떤 이는 평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붙잡고 달려갔던 소망을 보며, 성령께서 우리의 소망에도 도전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 어떻게 그 소망을 붙들며 나아가야 할지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그토록 알고자 했고 소망했던 것은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죽음 후의 부활을 소망하며 달려갔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간절한 기도제목이었으며, 달려갈 푯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신 부름의 상이기도 했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많은 교회를 세우는 일은 바울이 온 열정을 다한 사역이었습니다. 엄청난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박해자를 불러서 전도자로 부르신 하나님은 바울을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부터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든든하게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바울은 온 마음을 다해 달려 갔습니다. 복음을 생명 다해 전하였습니다. 죽음까지도 그의 열정을 잠잠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경주할 수 있도록 바울을 움직인 것은, 더 멀리 바울이 그토록 바랐던 궁극의 지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사역의 경계를 넘는, 이 땅에 안주하는 필요를 넘어 죽음을 넘는 생명과 영원에 대한 갈망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를 알고자,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예수의 부활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달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이 목표가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상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여정 중에 바라보는 인생의 푯대는 이 땅에서의 삶에만 있지 않습니다. 삶의 여정 중에 때때마다의 목표 너머에, 궁극의 지향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으로 향한 인생임을 자주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삶의 여정을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경험하려는 바울의 푯대! 우리도 부여 잡고 나아갈 소망이요,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그러면 이 엄청난 경주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그분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에 동물의 왕국에서 본 사자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리 동물인 사자는 함께 지내며 사냥과 공동육아를 합니다. 그런데 흔하지 않은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독사에 물린 사자가 무리를 떠나 한적한 물가에서 물만 마시며 독으로부터 치유되기까지 홀로 고통의 고독을 견뎌내는 장면이었습니다. 고독 속에서 사자는 생명을 향한 강함으로 온통 온몸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사냥을 하는 사자들의 모습보다 죽음과 홀로 사투하며 살아난 이 사자의 모습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고독은 이 사자의 힘이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에는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치며 자신을 돌아보며 그분을 경험하는 모습이 면면히 배어 나옵니다. 로마서 7장 24절에서 죄 아래 곤고한 자신의 모습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8장으로 넘어가면서 그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신 예수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고백하며 예수께로 더 깊이 나아갑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는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울의 수많은 고백들은 하나님과의 고독한 대면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역했던 바울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가졌습니다. 성경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시간에 어쩌면 바울은 사람들보다 예수님과 홀로 대면하는 시간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는 3일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체 엎드려 그를 부르신 예수님을 묵상했을 것입니다. 회심 후 아라비아에서의 약 3년, 고향 다소에서 약 10여 년 간의 바울에 대해 성경은 구체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학자들의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구약율법에 능통했던 그였지만 정작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부정하고 핍박했던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지심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2∙3차 전도 여행 중에도 수많은 시간을 홀로 산맥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며 걸었습니다. 마지막 로마 감옥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며 고독 가운데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속히 와 줄 것을 부탁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바울은 많은 시간을 고독 가운데 있었습니다. 무수한 날들을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쓴 깊은 영성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열정적으로 일했던 사람이기 이전에.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머물렀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떠셨습니까? 주님도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기 전, 일을 하는 것보다 그분이 가장 우선시했던 시간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벽 미명,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하나님 앞이었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5:15~16)

가족을 떠나셨습니다. 40일 광야에서 홀로 금식하셨습니다. 인간의 연약함, 시험을 고독하게 대면하십니다.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설교하시며 무리 속에 계시다가도 홀연히 무리를 떠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에 날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기도하셨습니다. 고향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셨고, 겟세마네에서 십자가 고통의 잔을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3년 동안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에게까지 외면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고독을 오롯이 혼자 감내하셨습니다.

성경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독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깊은 내면의 연약함을 보았고, 실존의 의미를, 인생의 의미를 알아갔습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감당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 이 땅에서 다 알 수 없지만, 또 다 이룰 수도 없지만, 하나님 부여 잡고 이 땅의 경계를 너머 영원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노아가 120여 년 동안 사람들의 놀림 속에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 고독한 시간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 나그네로 살았던 100여 년의 시간은 하늘의 별들 보며 하나님의 약속 믿고 묵묵히 걸어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믿음의 계보가 만들어집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무수한 밤과 낮을 양들과 지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40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백성들의 죄악과 불평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광야를 거쳐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고독은 감정의 외로움을 넘어서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헨리 나우웬의 저서 「영적 발돋움」에서, 그는 세 가지 영적 발돋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자아를 향한 발돋움입니다. 가장 깊은 내면의 자아의 외로움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일어서는 것입니다. 고독으로의 승화입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향한 발돋음입니다. 자기 안에만 갇힌 사람이 만나 서로 상처와 단절로 오는 벽이나 적대감에서 관심과 환대로 안아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향한 발돋음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혹은 의심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자신과 타인과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입니다. 이 외로움에서 고독의 영성으로 발돋음하는 것을 도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가장 깊이 바라보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그러진 마음을 돌아보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바라보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고독은 영원을 사모하는, 절대자를 향한 피조물의 창조자를 향한 깊은 영혼의 울림입니다. 이 고독이 승화되어 하나님께로 발돋움하도록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바울이 회심하여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의 약 30여 년의 세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예수께로 달려갔던 그의 순전한 경주, 멈출 수 없었던 그의 열정과 사역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깊은 고독과 성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푯대, 우리가 평생을 붙잡고 나아갈 목표, 우리가 영원히 바라보아야 할 분,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새겨봅시다. 당장 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당장 이루어야 한다는 목표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께 잠잠히 나아갑시다. 달음질하다 방황될 때,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아무 기대나 목표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산다면 예수님의 우리를 향하신 부르심을 묵상합시다. 지치고 힘들 때 그의 십자가 밑에 엎드립시다. 건강의 두려움과 죽음이 두려울 때 주님의 부활을 그려 봅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 주간 적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정말 내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 중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와 부활과 그와 함께 사는 소망이 없다면, 신앙을 다시 점검하십시오. 둘째로, 하나님께 머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홀로 있을 때 성경을 꺼내 놓고 말씀을 읽습니다. 찬양을 부릅니다. 기도를 합니다. 핸드폰을 만지고, 전화를 하고, 티비를 보고, 빨래를 널고 싶어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우리의 마음과 시간을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시간을 꼭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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