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15. 주일 설교: Messenger 요한 (막1:2~8). 마가복음 2. 양은익 목사

 


말씀: Messenger 요한(막1:2~8)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막1:2-8)

단어 하나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한자 성어는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그 깊은 뜻을 새기기에는 참 좋습니다. ‘대학’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심부재언’(心不在焉). 마음에 없게 되면 아무것도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있어서 내가 보고 있고, 듣고 있는데도 마음이 딴 곳에 있어 그 듣고 보는 것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 내게는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마음 씀이 있을 때 세상은 내 앞에 ‘있음’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어도 내 마음이 없으면 ‘없음’ 입니다. 이 원리를 마음에 잘 담기 바랍니다. 많은 유익함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떠나면 다 ‘꽝’ 입니다.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은 세례요한이 어떻게 마음을 얻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와 신앙인들이 마음을 얻지 못해 주님을 전하는 것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오늘 보게 될 세례요한의 짧은 삶에서 그가 보여준 삶의 모습을 통해 그가 어떻게 마음을 얻어, 온 유대가 광야로 모여들고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고자 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지난주부터 우리는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알아 가고자 마가복음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 예수님을 좀 더 알고자 하는 귀한 애씀, 마음 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은 신앙인에게는 ‘정언명령’입니다. 피해 가서는 안되는 ‘소명’ 같은 것입니다.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보다 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마음 써야 할 일이 참 많을 것입니다. 이 마음 씀 중에 ‘예수님’이 차지하는 비중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말씀도 좀 더 많이 보시고 또 보시는 말씀이 지금 저희가 함께 보고 있는 마가복음이면 더욱 좋습니다. 또 예수님에 관한 책도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많이 써 주십시오. ‘마음 씀’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립니다. 주시는 말씀의 의미가 내게 크게 들릴 때 내 삶의 많은 문제가 응답받고 해결될 것입니다. 이것은 삶을 하루하루 그냥 되는대로 막살아가지 말자는 뜻입니다. 하루하루를 그냥 되는대로 살게 되면, 삶의 얽히고설킨 꼬인 문제들은 절대 해결되지 못합니다. 주님께 답이 있습니다. 마음을 주님께 더 집중해야 합니다. 세상의 실리 앞에 신앙인들의 명분이 꺾일 때 예수님을 더 잘 알아가야 꺾이지 않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례자 요한. 세례 자는 요한의 별명입니다. 세례를 많이 했기에 붙은 별명입니다. 세례 요한은 볼수록 대단한 인물입니다.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세상 실리에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겸손한 삶을 살다간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 당시도 지금 못지않게 악이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그 악의 한복판에서 요한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감지하고 어떤 이보다 먼저 전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막1:2~3)이 말씀은 구약 예언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말3:1).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40:3) 창세기 예언의 말씀은 출애굽을 배경으로 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성경입니다. 말라기 이후 400년간 모든 예언은 중단되었습니다.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세례요한은 남들이 늘 보는 구약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전율을 느끼며 말씀을 받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는 누구나 늘 읽고 있는 말씀을 자신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게 됩니다. 요한은 광야로 들어갑니다. 누가 가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낙타 털 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그 힘든 광야 생활을 시작합니다. 메시아가 곧 오실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요단 동편 광야에서 이 말씀을 받습니다.

요한이 살던 시대의 상황은 누가복음 말씀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1~2)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악합니다. 백성을 착취하는 악질적인 인물들입니다. 디베료는 로마 황제입니다. 로마가 파견한 유대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로마의 유대 점령 시 로마 제국에 돈을 바치고 분봉 왕 자격을 따낸 이들이 헤롯 가입니다헤롯, 빌립, 루사니아) 안나스와 가야바는 사위와 장인입니다. 이들도 악합니다. 이런 시대 배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라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악한 시대에 이 땅에 오셨고 젊은 시절을 그 시대에 사셨습니다. 백성들은 이 악한 지배체제 밑에서 신음하며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광야에 나가 홀로 낙타 털 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보던 요한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 말씀이 모든 것을 압도하며 그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말3:1)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40:3) 아! 메시아가 오실 날이 임박했구나! 400년간 모든 예언과 계시가 끊겼던 상황입니다. 철저한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 젊은이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중에 이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받고 끝낸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내가 해야 하겠구나! 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 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볼 때 삼자로서 읽고 보면 안 됩니다.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보고 받아 내야 합니다.

요한은 시작합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1:4) 죄 사함의 세례를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 사함!’ 이 말씀은 우리에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아픔의 저 밑바닥에는 항상 죄의 문제가 깔렸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죄 사함!’의 큰 은혜가 일단 일어나야 합니다. 그 시대는 지배체제가 악했습니다. 악한 지배체제 밑에서는 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짓는 줄 모릅니다. 또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그런 시대에 요한은 회개하는 이들에게 죄를 사하는 세례를 베풉니다. 죄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례로 깨끗함을 받고, 오실 메시아로부터 성령 세례를 받아 근본적으로 새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상당히 신랄합니다. 세례받으러 광야로 나오는 이들이 거짓된 것 같으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붓습니다. 요한은 거침이 없습니다. 급기야 헤롯왕까지 건드립니다. 왕의 불륜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목이 잘려 숨지게 됩니다.

마가는 예수님을 소개하기 전에 예수님이 오실 것을 준비한 세례요한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가복음을 시작합니다. 로마서 10장에 ‘믿음의 과정’ 6가지가 나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3-15) 즉 보냄 받음, 전함, 들음, 믿음, 주의 이름을 부름, 구원받음의 6개의 과정입니다. 여기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겨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들으려면 들려주는 자, 메신저가 있어야 합니다. 요한의 역할은 메신저 역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된 소식(복음)을 전해 줄 메신저 역할을 구약에 예언은 있었으나 아무도 하지 않던 것을 지금 요한이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홀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정말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그 파급력은 정말 어마어마 했습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막1:5) 한번 그 광경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일이 유대 사회에 시작된 것입니다.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기에 ‘온 유대’, ’다 나아가’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던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일시에 많은 사람이 물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침례식 형식을 행했을 것입니다. 그 세례식이 매일 매일 반복 되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뒤집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젊은이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내어 시작된 위대한 일입니다. 세례받고자 광야로 나오는 인파들은 실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갔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거기에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러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이들, 요한을 만났던 이들, 그와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눴던 이들은 모두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고 세례를 받으려 했다는 것이 실로 놀랍습니다.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세리들이 엄청나게 몰려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했던 이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군인들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나왔습니다. 또한, 율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는 로마 군납업자들인 돼지 도축 자들도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왔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서 마음을 잃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로서 참 마음이 착잡한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요한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써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거친 말을 거리낌 없이 쏟아 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흩어지기는커녕 더 모여듭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배워 가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또한 우리의 온 삶을 살아가면서 계속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요한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의 ‘영적 감화력’이고 둘째는 그의 허영 없음과 겸손함입니다

1. 영적 감화력
요한에게는 자기 절제에서 나오는 영성이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귀한 영적인 삶을 추구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영적 감화력이 생깁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권위를 느끼게 합니다. 광야의 거친 삶 속에서 비바람 맞으며 하나님의 뜻을 고하며 애쓰던 요한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적 감화력’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적 감화력을 가진 요한을 한번 만나면 ‘아 맞는구나. 내가 회개하고 죄 사함의 세례를 받아야겠구나!’하는 마음의 변화를 하게 됐던 것 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해져 듣게 되면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하게 사는 이들에게는 감동을 하지 못합니다. 고결한 영성을 지닌 자들에게 감동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감화력’을 선물로 축복으로 받아 내시기 바랍니다. 요한을 보면서 오늘 우리는 도전 받아야 합니다. 마음을 얻지 못하고 교회와 성도들은 요한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2. 허영 없음, 겸손
그 시대도 지금 이 시대 만큼 과시가 난무한 시대였습니다. 요한은 전혀 허영이 없습니다. 요한은 그 당시 혜성같이 등장했던 굉장한 인물입니다. 모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에게 죄 사함의 세례를 받으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우쭐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합니다.그리고 말합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막1:7)

과시와 허영은 인간의 뿌리 깊은 욕구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칩니다. 주님보다 절대로 앞서지 않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만 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마음을 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야의 오랜 생활로 거칠고 야성적인 요한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순수함에 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얻어야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일단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여기에는 가족도 포함됩니다- 마음을 얻어야 하기에 세례요한에게서 겸손함을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이 마음 얻기에 실패하는 것은 ‘과시’하면서부터 입니다. 세 가지 ‘허’가 있습니다. ① 허수(虛數, 수 자랑) ② 허세(虛勢, 외형 자랑) ③ 허상(虛像, 건물 자랑)입니다. 교회는 과시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시와 자랑은 과시하고 자랑하는 본인 빼고는 다들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것을 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말씀을 듣는 중에, 말씀을 보는 중에 강력한 말씀의 임하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읽고 보는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크게 강력한 은혜로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 얻기에 성공한 세례요한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가족과 주위에 주님을 널리 전하고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구드리며 축원 드립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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