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8. 주일 설교: 쓸쓸함의 극복(요4:7~24). 양은익 목사.

 

말씀: 쓸쓸함의 극복(요4:7~24)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7-24)

설 연휴 잘 지내고 계십니까? 연휴 마지막에 맞는 주일입니다. 이 명절 연휴의 휴식으로 힘 얻으시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글을 읽다가 요양원과 양로원을 자주 방문하는 분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볼 때 그분들은 고개가 모두 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고개가 돌아간 방향은 문 쪽 방향이라고 합니다. 혹시 누군가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리했을 것입니다. 사진 한 장 보겠습니다. 한 노인이 인형을 안고 있는 쓸쓸해 보이는 사진입니다. 연출된 사진이 아니고 실제 상황을 촬영한 것입니다. 치매가 온 노인이 인형을 안고 있는 실제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마음이 짠해 옵니다.

명절이기에 가족을 그리워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워하는 이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명절에는 누가 외롭고 쓸쓸해 할까요? 연로한 분들, 외로이 병상에서 투병 중이신 분들, 실향민들, 탈북자들, 취업이 되지 않아 떳떳하게 고향을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더 외로워 할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에 외로운 이들은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 눈에는 다 갖춘 것처럼 보여도 문득문득 근원적인 외로움을 누구나 느끼며 삽니다. 사노라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외로움이란 마음의 상태는 만만치 않습니다. 해결 안된 채 그대로 두면 인간을 잡아 삼켜 버릴 수 있습니다. 김옥진 시인은 ‘외로움을 오래 묵히면 폭풍처럼 악마가 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외로움이란 이렇게 묵히며 가둬 두면 그 주인을 악마로 변하게 할 정도의 파괴력이 있지만, 잘 쓰면 약이 됩니다. 인간을 성숙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외로움을 강하게 느낄 때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다고 합니다. 이 스트레스 호르몬은 원래 인간을 보호하고 정상 생활을 하게끔 해주는 중요한 호르몬이지만, 폭발적으로 분비되면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혈압을 올리며, 심장마비, 뇌졸증 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외로움은 내버려 두면 신앙도 침체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이 다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주위에 외로움 속에 있는 분들을 내버려 두면 안됩니다. 서로 살피고 배려해줘야 합니다. 쓸쓸해 하면 서로 도와주며 벗어나게 해 줘야 합니다.

외로움은 주로 결핍에서 옵니다. 뭔가 부족하고 결핍이 있으면 외롭고 쓸쓸해집니다. 그 외롭고 쓸쓸한 감정은 결핍이 충족되면 잠깐 즐겁고 기뻐하며 사라지지만, 인생은 살면서 부족한 것, 내게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쓸쓸함은 계속 생겨납니다. 그렇기에 살면서 근원적인 이 쓸쓸함을 벗어날 힘은 외부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내면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내면이 강해지면 됩니다. 어떻게 내면이 강해질 수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말씀 안에 답이 있습니다.

쓸쓸함을 이겨내는 힘은 ‘관계’입니다. 나와 너의 사귐입니다. 관계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계에 삶의 비법이 담겨있습니다. 관계 즉 친밀한 관계가 외로움을 이겨내게 해 주는 힘입니다. 사랑과 배려함은 큰 은혜입니다. 사랑과 배려는 친밀한 관계를 가능케 해 주는 강력한 힘입니다. 외로움을 이겨낼 힘은 ‘소유함’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는 더 많은 힘과 더 많은 재산과 더 많은 권력을 최상의 가치로 삼고 그것을 향해 뛰지만, 그것은 외로움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답은’ 친밀한 관계’ 에 있습니다.

얼마 전 가수 남진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입니다. 그가 부른 ‘저 푸른 초원 위’에는 그 시대 모든 이들이 흥얼거렸던 인기곡입니다. 남진은 그 노래를 그토록 자신이 많이 불렀지만, 그 당시에는 그 노래의 깊은 의미를 모르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교회의 장로로 신앙을 갖고 보니, 자신이 엄청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멋쟁이 높은 빌딩이 으스댑니다. 세상의 성공들입니다. 그러나 반딧불 초가집이라도 임과 함께면 좋다 합니다. 임이 좋기에 능력이 없어 비록 초가집에 살더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 ‘임’이 누구입니까? 함께하면 외롭지 않은 ‘임’. 수많은 쓸쓸함, 문득문득 다가오는 외로움과 허전함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며 외롭지 않을 ‘임’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임’은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임’은 사람(이웃)입니다.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둘 다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귀한 줄 알면서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 이웃이 얼마나 귀한 줄 알면서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쓸쓸함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과 또 사람과 친밀해지십시오.

1) 하나님과 친밀해지기
무엇을 더 갖는 소유로 쓸쓸함은 절대 극복될 수 없습니다. 내가 고백하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더 친밀해지십시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지, 정, 의 인격을 갖고 교제할 수 있는 것은 두 인격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입니다. 하여 두 인격인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만남은 필연입니다. 이 필연적인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인간은 엄청난 불안이 엄습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사람은 내 위에 있는 나보다 크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참된 안식을 얻을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간이 불안해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함 없이는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서 오는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들어갈 때 외로움은 그 힘을 잃어 갑니다.

오늘 본문 사마리아 여인은 상당히 쓸쓸한 여자입니다. 남편이 5명이나 과거에 있었고 지금 또 새로운 남자와 동거 중이니 평범치 않은 삶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외로웠기에 남자를 찾았고 기대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고독했고 쓸쓸한 여인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여인을 만나 주십니다. 그 여인의 인생의 문제점이 고독함과 외로움이란 것을 아시고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 주십니다. 첫째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두 번째는 예배를 제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하십니다. 성령을 받고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면 다섯 명의 남자에게서도 해결되지 않은 삶의 불안과 허망함, 쓸쓸함이 해결될 것이라는 해법을 제시해 주십니다.

23절에서 ‘예배'(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치유의 방법으로 제시해 주신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여러분들은 예배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드리시고 있습니까? 성도이니까 주일을 지켜야 하는 의무 정도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예배는 의무 이전에 하나님을 찾는 인간과 인간을 찾는 하나님이 만나는 현장입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회복과 치유가 있습니다. 예배를 올바르게 전심을 다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충만한 은총으로 외로움, 쓸쓸함, 공허함을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드리는 모든 예배에 이 은혜와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짧은 한 시간의 예배 가운데 너무나도 놀라운 주님의 만져주심과 회복시키시는 은혜와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온전한 제물로 드리십시오. 상처받은 영혼이 회복되는 큰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주일날 드리는 예배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예배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영과 진리로 말씀과 기도 가운데 예배드리십시오. 내 전체를 다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치유가 임할 것입니다.

쓸쓸하십니까?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없이는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성도의 최고의 삶은 주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감동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올 한 해는 주님과 더욱 친밀해지시는 한 해 되기를 바랍니다. 친밀해 질 때, 주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크나큰 기쁨과 충만함이 임할 것입니다.

2)사람과 친밀해지기
사람은 상처를 참 많이 주지만 위로도 줍니다. 내 곁에 사람이 없다면 누가 위로를 주겠습니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위로를 주는 것도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친한 사람들을 반드시 만드셔야 합니다. 요즘은 어느 한도까지만 곁에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 인간관계가 대세입니다. 더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더 깊이 못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밀어내면 안됩니다.

사람과 친밀해지려면 겸손해져야 가능합니다. 교만한 사람, 자신만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겠습니까? 친밀한 교제는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넘쳐야 가능합니다.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쓸쓸하고 외롭다는 것은 마음을 놓고 가까이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수 임재범 씨의 노래 중 ‘사람 그놈’이란 곡이 있습니다. 가사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늘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하고 늘 혼자 추억하고 혼자 무너지고 늘 혼자 외면하고 혼자 후회하고 늘 휘청거리면서 아닌 척을 하고 사랑이란 놈 그놈 앞에서 난 늘 빈털터리일 뿐’

바로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입니다. 늘 혼자이면서 외롭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러면 쓸쓸한 순간 함께 할 사람이 없습니다. 관계를 맺으면서도 선을 그어 놓은 채 홀로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넉넉한 사람이 먼저 찾아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주셨습니다. 유대인이라면 모두 꺼리는 사마리아를 굳이 찾으셨고 평판 나쁜 그 여인을 일부러 만나 주시며 그 여인의 벽을 허무시는 것입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쉽게 포기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교제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에서 떨어져 나가 외로움, 쓸쓸함 속에 있는 병든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로 꽉 차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주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애쓰는 귀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애쓸 때 외로움이라는 암적 존재가 우리 곁에서 폭풍처럼 악마로 자라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쓸쓸합니까? 쓸쓸하다면 왜 쓸쓸한지 자신을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내 주변 사람들과 친밀히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위를 돌아보시고 주위에 쓸쓸한 분들이 있는지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속 깊게 헤아리고 살펴주고 품어 주시는 여러분 되기를 축복하고 축원합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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