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1. 주일 설교: 교회의 존재 이유(시79:1~9). 양은익 목사.

 

말씀: 교회의 존재 이유(시79:1~9)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다. 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시79:1-9)

자식으로부터 간 이식을 받기로 한 아비의 절박한 물음이 잊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독자 아들 이삭을 바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 살자고 아들을 수술대에 눕히고 그 간을 이식받고자 합니다. 비정한 아비가 아닙니까? 사랑하는 아들 몸에 칼을 대면서까지 허락되지 않은 삶을 탐하며 죽음의 시간을 늦추고자 함은 비겁한 것 아닙니까?’ 물음 하나하나가 참으로 비장합니다. 아비는 고백합니다. ‘어떤 질문에도 나는 당당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간 이식을 앞두고 나는 내가 더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흔하고 넉넉하면 중함과 귀함을 잘 모릅니다. 그러다 그 흔하던 것이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의 있음과 존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옆에 있는 사람, 공기, 물, 건강 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생각해 봤습니다. 교회는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교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귀함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교회의 존재 이유’ 입니다. 교회는 왜 존재해야 합니까?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 교회의 존재 이유를 어떻게 정의하며 교회에 다니고 계십니까? 우리 대부분은 교회가 흔하기에 이런 교회의 귀함, 소중함, 목적, 의미 다 잊고 교회 생활을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많고 흔해져서 생긴 위험이며 아픔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몸담은 교회를 얼마나 귀하고 소중히 여기며 신앙생활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귀한 줄 모르며 사는 것은 목사나 성도 모두에게 불행입니다.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물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왜 교회에 다니나? 교회는 왜 존재하나? 이 질문은 애매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답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나의 신앙인 된 처지에서 정직하게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교회가 있는 거지!’ 하십니까? 현재 교회들의 문제는 거의 이 질문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 뭔가를 바라며 나오십니까? 뭔가를 교회를 위해 하고 싶은 마음이 넘칩니까? 묻고 답하면서 중심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믿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을 위해 교회는 존재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삶을 돕고 성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습니다. 교회는 양들을 아름답게 인도해야 하며 양들을 위해 철저히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며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는 나와 나의 유익을 위해 있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기에 교회가 자신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그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나의 유익 이전에 교회는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크든 작든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놓치고 나의 유익만을 교회 존재 이유로 알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앞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나의 유익과 이익이 비록 훼손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선인 것이 참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교회는 나의 유익 구함을 위해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내세우다가 내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가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를 내 유익 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면 하나님을 위해 일 할 기회들은 다 죽게 됩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꼭 기억하십시오.

싸움과 분쟁 속에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부분 공통된 문제점은 이들 교회는 어느새 하나님은 사라지고 사람의 영광, 사람의 자존심들이 우선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교회란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규율과 권위에 기꺼이 따르는 교회, 하나님 중심의 사람들이 있는 교회’ 입니다. 이런 교회는 정말 안심하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어렵습니다. 순종적으로 헌신하며 섬겨야 하기에 하나님을 드러내는 교회를 성도들도 힘들어합니다.

좋은 교회, 좋은 성도는 ‘Joy spirit’을 가지면 됩니다. Jesus first (주님 먼저), others second (너 다음), you third. (나는 마지막) 이런 정신이면 좋은 교회가 되고 신앙도 탄탄한 기초 위에 서게 됩니다. 내가 중심이 되면 신앙도 교회도 서서히 침몰합니다.

오늘 말씀의 질문들은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 자신에게 먼저 한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준비한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말씀이 우선 되어야 하지만 내가 중심이 되면 말씀은 다 떨어져 나갑니다. 내가 말씀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교회보다도 위에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내 입맛에 맞게 교회 생활을 하려 하게 됩니다. 고쳐야만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규율에 순종하는 믿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이 사라지면 그냥 사람의 모임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입니다. 순종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이 계속 넘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로 넘치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 좋은 교회입니다. 또한, 소망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하시는 자는 자신의 부족을 알고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입니다. 교회에서도 늘 겸손하며 늘 당하는 것 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최고로 인정해 주십니다. 여러분들도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바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늘 함께하시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늘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고 인도하심을 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시편 79편)에서 시인은 너무나도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고 성도가 다 죽임을 당합니다.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됩니다'(4절) 그들은 ‘하나님이 과연 있냐?’며 조소하고 조롱합니다. 이것은 요즘 시대 우리가 비방을 받고 조롱과 조소를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인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9절). 이 기도는 우리도 간절히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꼭 드리시기 바랍니다.

간 이식을 앞두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한 아비처럼 우리도 깊이 질문해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같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많은 시대입니다. 시인은 ‘구원의 하나님’을 호명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이시여 돌아오셔서 도와주십시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이 절박한 기도를 우리는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humility)의 어원은 휴무스(humus.흙) 입니다. 흙은 우리 인생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흙으로부터 와서 흙으로 가는 인생, 정말 내세울 것 없는 인생들입니다. 흙으로 생겨난 인생이 교만한 것은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세속 사람들의 교만은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본질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거기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교만을 벗은 사람들입니다. 겸손의 아름다운 옷을 입은 순결한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겸손은 위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겸손한 성도가 하나로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겸손한 이들이 더 겸손해지려고 가다듬는 곳이 교회입니다. 위로는 하나님께 겸손하고 옆으로는 교우들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이며 참된 모습입니다. 그 겸손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표현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겸손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가 교만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잠언 서에는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3:34)라고 했습니다. C.S 루이스는 ‘교만한 이는 항상 내려다보는 사람들인데 내려다보는 자가 어떻게 위 (하나님)를 볼 수 있는가?’라는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습니다. 겸손해야 위(하나님)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고, 나보다 너를 더 낫게 여길 수 있고 나와 너가 연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연합은 겸손에서 나옵니다. 겸손의 열매는 아름답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나’ 밖에 다른 이들을 볼 수 없습니다. 겸손이란 이 소중한 가치가 내 안에 자꾸 생겨나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며, 이 영광은 주위에 드러나게 됩니다. 교회가 작은 것은 이 일을 이루는데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보다 더 겸손해지십시오. 기도와 말씀 보는 생활을 꾸준히 순종의 마음으로 해 나가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십시오. 겸비하게 무릎 꿇고 겸손의 마음, 순종의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몸부림하십시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마치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주신 말씀은 천기누설의 말씀입니다. 반드시 받아내시고 깊이 새기십시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7:13-14) 불가항력의 사태 앞에서 무릎 꿇으십시오. 스스로 겸손해지십시오.

오늘 교회의 존재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 스스로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음 때문에 우리를 홀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 겸손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순종하며 열심히 할 때 하나님은 크신 축복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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