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8. 주일설교. 성령을 따르라(삼상16:6-13). 양은익 목사


성령을 따르라(삼상16:6~13)

2017년 새해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올 한해 어려운 일 있으셔도 힘있게 성령님과 동행하시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 사실을 되도록 빨리 깨달으시고 또한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의 삶에서 이 성령께서 주시는 힘을 체험해야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인이면서도 내 힘으로 해보려는 모습은 빨리 탈피하셔야 합니다. 힘이 빠지는 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께 의지하는 영적인 민감성을 우리는 매 순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연합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실제로 내 안에서 나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함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추구하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힘을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께 깨어있어야 영적인 삶이 가능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실제적인 힘을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우심과 힘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자의 힘입니다. 이 성령 하나님께 깨어있지 않는 신앙생활은 고역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하나님께 나아가기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을 깨닫고 경험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춘 신앙생활 하게 되시기를 바라고 축복 드립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인 감각이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루트로 다가오십니다. 어떤 때는 기도로 다가오십니다. 기도가 없으면 성령님의 루트가 차단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고 다가오십니다. 어떤 때는 주변 사람을 통해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좋은 교제는 나를 풍성하게 변화시켜 줍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다가오셔서 도우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 우리는 늘 영적인 예민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올 한해 성령과 동행하시는 삶으로 큰 축복 누리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크게 네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둘째, 속사람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부지불식간에 성령을 모독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주위에 마음 상하고 소외된 이웃을 보살펴야 합니다.

1. 여러분의 고집을 꺾어야 합니다.
고집이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것,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입니다. 고집을 부리는 행위가 10개가 있다면 그중 8개는 왜곡된 것입니다. 남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만 옳다고 버티는 것이므로 옳은 것보다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잘못된 고집을 고수하면 영적인 삶에는 난처한 문제들이 생깁니다. 신앙의 삶이란 매 순간 자신의 부족한 것을 고치고 채워가는 성화, 성숙의 과정입니다. 고집이라는 강한 자아가 개입하면 고침, 성숙, 성화는 어려워집니다. 성령께서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옛사람을 버리도록 push 하십니다. 나의 고집스러움은 이런 성령님의 인도 하심을 막는 큰 장애물(블록)로 작용합니다. 고집스러움이 약화하고 치워지지 않는 한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기는 힘들게 됩니다.

평생 신앙 생활하면서도 고집 버리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고집 버리기는 중요한 신앙의 훈련입니다. 영적인 문제에는 고집부리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유연함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매 순간 들려오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여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나의 고집스러움을 내려놓고 성령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말해 주었건만 백성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삼상8:19.공동번역)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주장합니다. 신정에서 왕정으로 옮기자는 주장입니다. 사무엘은 아직은 아니라고 설득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집을 피웁니다. 다시 사무엘은 하나님을 대변하기에 굉장한 사람이었지만 백성들은 사무엘의 설득조차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고집은 무서운 죄성을 갖고 있습니다. 고집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대부분이 고집스럽습니다. 하나님과 만약 나의 고집이 대결하면 누가 이깁니까? 단기전의 승자는 항상 ‘나’입니다. 하나님조차도 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고집대로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떻게 이 불순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까? 수많은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가슴에 말씀이 뚫고 들어가 여러분을 온전히 변화시킨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심리학자들이 침팬지 4마리에게 먹이를 획득하는 방법을 변화시키는 실험을 했습니다. 젊은 암컷이가장 먼저 새 방법으로 먹이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젊은 수컷 침팬지가 성공했습니다. 제일 마지막까지 버티며 새 방법으로 절대로 먹이를 얻고자 하지 않았던 것은 늙은 수컷 침팬지였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고집으로 늙은 수컷 침팬지는 결국 먹이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 고집스러움은 사람에게도 같게 적용된다고 실험자들은 얘기합니다. 나이 들어가는 남자들은 평균적으로 고집이 셉니다.

버릴 고집이 있다면 버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여시고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개심(開心)이 폐심(閉心)보다 좋습니다. 마음을 열고 고집을 버리는 순간 성령께서 다가오셔서 인도하시며 우리는 그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집을 버리지 않으면 내 신앙생활은 곤고해집니다. 순간순간 말씀이 들려질 때, 영감이 떠오를 때, 내 잘못이 깨달아질 때, 겸손히 고집을 내려놓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2.속사람에 신경쓰는 삶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고후4:16) 우리는 늘 겉 사람에 신경 쓰며 삽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겉 사람은 늙고 낡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사람에 신경 써야 합니다. 속사람에 신경 써야 성령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겉 사람은 아무리 잘 가꾸어도 낡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겉 사람에 신경 쓰면 우리는 비교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비교하면 욕심이 생깁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게 됩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겉 사람에만 신경을 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겉 사람에 치중합니다. 겉 사람에 신경 쓰다 보니 속사람을 챙길 시간과 여유가 없습니다.

겉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늙지만, 속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경륜이 붙어 풍성해집니다. 이렇게 속사람을 신경 쓰고 지낼 때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는 것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속사람이 어떠한지 늘 신경써야 합니다. 자신을 늘 가꿔나가야 열심히 살고 난 인생의 중반기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 사람만 신경 쓰는 삶은 소인의 삶입니다. 속사람을 신경 쓸 때 대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와 성령은 상관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3. 부지불식간에 성령을 모독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하는 어떤 비방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메인다’(막 3:28~29) 주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시자 그들은 주님께서 귀신과 한편이라고 주님을 모독합니다. 주님과 동시에 성령을 모독한 것입니다. 이것은 시험 장소에 감독관이 있는데도 감독관을 무시하고 커닝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성령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엄청난 죄악입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생활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도 겁 없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공자를 읽기 전과 읽고 난 뒤의 내가 똑같은 인간이라면, 그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주희) 여기에 공자 대신에 성경 말씀, 예배, 기도 등 여러 가지를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삶에 집중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약 예배드리고, 말씀 듣고, 기도한 후의 내가 늘 같다면 우리는 깊이 반성하며 나의 신앙생활을 다시금 돌아보아야 합니다.

4. 주위에 마음 상하고 소외된 연약한 사람들을 살피고 돌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섬김과 봉사의 삶에 성령께서는 충만히 임하시게 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돕는 우리 가운데에 성령께서는 충만하게 임재하셔서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초대받는 것에서 소외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크신 축복으로 기름 부어 주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소외된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하갈도 돌보시는 하나님입니다. 나 자신만을 알고 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공동체로써 서로를 돌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모유(母乳)라는 시를 보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미 잃은 배고픈 갓난 강아지 몇마리 이웃집 늙은 암케의 품에 안겨주자 이튿날 암케의 젖망울이 모두 서고 하얀 젖이 흘러 나왔다. 강아지들 하루 종일 그 젖을 빨아 먹고 꼬물 꼬물 웃으면서 기어다녔다’

늙었지만 쓰임을 받는 이 암캐를 보십시오. 늙은 암캐가 우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연약한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 사랑의 젖을 물리면 생명의 따듯한 젖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함으로 여러분의 자녀가 살아나고, 가족 모두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혼자서 힘겹게 사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성령님과 함께 하는 한 해 되시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정리: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