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고(요3:22-36). 2017.1.10

20170110

2017년 1월 10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3:27-30)

오늘 말씀은 우리와 우리 교회 현장에 도전을 주는 세례요한의 말씀입니다. 주님과 세례요한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22절) 서로에게 제자들이 있고 따르는 무리가 생깁니다. 먼저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은 세례요한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집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그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마음이 상하고 불쾌해집니다. 그들은 주님과 세례요한 중 누가 더 위대하냐?에 대해 논쟁합니다.(25절)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대책을 세우도록 요청합니다. 그때 스승인 세례요한이 보인 반응은 너무나도 태연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합니다(27~30절).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임을 얘기하며 제자들에게도 밖에 나가서 우리 스승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증언하라고 시킵니다. 그리고 ‘그는(주님) 흥해야 하고 나는(세례요한)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합니다. 나는 들러리이며 나는 이 들러리의 사명과 직분을 감사한다고 진심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진심을 담은 세례요한의 진정성 있는 고백입니다. 속으로 딴마음을 품지 않고 하는 진실한 마음의 고백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하며 속마음을 숨기고 초연한 척, 안 그런 척 하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주님과 비교했을 때 이미 부족하고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던 것입니다. 이런 솔직한 세례요한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실제로 큰 그릇임을 보게 됩니다. 요한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의 천성적인 성품이 그랬을까요? 그의 성향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논쟁과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요한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사명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1장에서 살펴봤듯이 자신은 주님 앞에서 그분이 오실 것을 알리고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임을 요한은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드러내고 높일 이유가 없었던 것 입니다. 즉 세례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알리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또한 지금 우리의 사명이자 교회의 사명이기에 우리는 세례요한의 이 귀한 모습을 본받고 배워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들러리의 역할에 대한 큰 기쁨을 갖고 있습니다. 본인은 조연의 역할을 기쁨으로 충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가 주인공이 되고자 해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미움, 질투 등이 생겨납니다.

우리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사명, 성도의 사명은 내가 높아지고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하나님 사랑을 전하여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망각하고 우리가 주인공이 되고자 할 때 우리는 문제를 일으키는 주체가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세례요한에게 많은 도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를 인생의 모토(신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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