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4월3일 주일예배
말씀:산상설교11: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것처럼(마5:43~48)
우리의 사랑의 대상과 범위는 편협하여 우리가 좋아하는 이웃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이웃사랑은 세리나 이방인들도 하므로 주님께서는 그런 사랑의 범위를 넓히라고 명령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명령은 형용모순입니다. 사랑할 수 없어서 원수가 된 것인데 원수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이것은 “네모” 더러 “원”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형용모순처럼 보입니다.
서양 속담에는 “보복은 꿀보다 달다”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합니다. 어떤 걸 택하겠습니까? 주님은 보복을 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최인호 작가와 안성기 씨는 친분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최인호 작가가 안성기 씨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의미를 아느냐고? 이런 답을 했다고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가까우면서도 서로 미워하는 존재가 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주님은 원수 사랑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까요? 아시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주님은 우리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그토록 엄청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이미 인정하신 것이니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의를 아는 너희만이라도 실천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자비와 오래 참으심과 관용을 우리가 깊이 알아 갈수록 즉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조금씩 사랑의 깊이가 깊어 집니다.(도덕법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관용의 법칙) 나는 얼마나 수시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죄를 짓고 배신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가볍게 대하지 않으시고 가엽게 대하심으로 현재의 내가 있지 않았습니까?
원수 사랑의 조건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2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특권, 그 사랑을 배워 따를 수 있는 특권, 그 영광의 자리로 부르시는 초청. 이 모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 안에 잠재된 사랑의 능력이 놀라운 에너지로 흘러나와 내 주변에 있는 가족, 이웃, 교회를 모두 사랑으로 물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에 잠시 실패해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사랑하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포기보다는 실패가 낫습니다.
독일 라덴스부르크 처형장(92000명의 어린이와 여성이 처형되었습니다)에서 기도한 그들의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주님 좋은 뜻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 기억하지 마시고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도 기억하소서. 하지만 그들이 저희에게 준 고통만을 기억하지 마시고 그 고통으로 저희들이 얻게된 열매인 저희들의 우정과 충성심, 겸손함과 용기, 관대함,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통해 성장한 저희들 마음의 위대함도 생각하소서.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날에 저희가 맺은 이 모든 열매들이 저희에게 고통을 준 그 사람들을 위한 용서의 제물이 되게 하소서.
오늘 본문 4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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