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2월14일 주일예배
산상설교5: 소중한 의로움(마태5:6)
오늘은 주님의 산상설교 4번째 복에 대한 설교입니다.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의로움’은 저절로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죄성과 악마성 때문입니다. ‘의’라고 하는 것이 좁은 의미에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의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기에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며 간절히, 절실히 ‘의’를 추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는 신앙 수련의 큰 과제입니다. 절실하게 의를 추구하는 삶이 제자의 삶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세상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에게 의로움이 사라지면 우리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롭고 정결치 못하면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에 의를 설교하기란 정말 어렵고 부끄럽습니다. 최근 매스컴에 계속 오르내리는 목사 자녀 구타로 인한 사망과 1년간 은폐 사건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충격적 사건입니다. 우리는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연대 책임이 있습니다.
의를 추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주리고 목마를 정도로 강렬하고 절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애쓰는 삶은 복 받은 삶이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배부를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악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그리스도인들의 의로운 삶은 너무 소중하고 절실합니다.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매 순간 고민하고 애쓰는 삶이 복 되다고 하십니다.
마 6:10절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가장 우선순위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실제 상황은 어떻습니까?
무엇이 걸림돌이 되어 우리에게 하나님 뜻을 따르는 걸 뒷전으로 미루게 하는겁니까? 야고보 사도는 예리하게 분석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욕망이 큰 장애물이라 말씀합니다. 야고보 1:14~16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우리의 고난과 어려움의 많은 원인이 우리가 초래한 욕심과 욕망의 결과입니다. 욕심과 욕망의 마음 상태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를 불순종의 삶으로 추락시킵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도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금하신 과일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거라는 욕망에 무너집니다. 전혀 부족함이 없는 낙원의 삶이었지만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하나님이 금하신 여자 문제, 부정부패함으로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흔히 욕심은 마음속에서 생기는 마음의 문제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욕심은 대부분 외부 요인에서 더 많이 만들어집니다.(견물생심) 외부적 자극(부러움, 욕망)으로 우리는 하나님 뜻에 어긋나도 일을 저지릅니다. 아담과 하와도 뱀의 유혹으로 타락했듯이 최초의 인류 타락의 욕심도 외부에서 들어왔습니다. 욕심에 취약하면 하나님 뜻에 어긋난 삶을 살게 됩니다.
한국 사회의 큰 욕망은 “인정욕망”입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욕망입니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모두 인정 받고자 하는 이 욕망에 시달리며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 일렬로 서서 달려갑니다. 우리는 이 욕망을 “꿈”이라는 고상한 포장을 씌워서 얘기합니다. 무시당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희망”이라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입니다.
정신 분석가들은 좀 더 심한 표현으로 착각이라고 말합니다. 즉 욕망이나 착각은 내가 그 욕망을 이루면 엄청나게 행복 해질 거라고 믿고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표가 이루어져도 그것으로 내가 얻는 행복감은 유효 기간이 길지 못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내 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너의 욕망을 나도 욕망했기에 결국 나는 타자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우스 푸어(집은 있으나 쓸 돈이 없는 사람) 메리지 푸어(marriage poor)(결혼할 상대는 있는데 결혼의 행복 조건으로 여기는 집, 자가용, 가전 제품 등이 준비 안되어 결혼을 못하는 젊은 세대들)등이 넘쳐납니다. 시대가 만든 병든 환상과 욕망 때문입니다. 혹시 나도 인정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 뜻을 뒷전으로 미루는 큰 죄를 짓고 있지 않은지요?
우리의 신앙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한테 인정받고 싶은 겁니까? 주위의 몇몇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이 욕망과 욕심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을 향해 얘기할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구원을 얘기할 수도 없습니다.
토마스 머튼 수도사는 “인생은 당신이 살아가는 목적에 의해 그 모양새가 결정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품고 있는 갈망에 의해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될지 결정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욕망으로 인해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쉼없는 정화가 필요합니다. 욕망의 정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욕망을 이기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그냥 본다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나를 이끌어 줘야 합니다. 믿음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하는 단계(want)/ 하나님이 필요한 단계(need)/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되는 단계(must) 우리 모두 세 번째 단계의 믿음 단계로 들어 갑시다. 하나님의 뜻(의로움)을 이뤄드리기 위해 매 순간 애쓰는 승리하시는 삶이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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