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0. 주일 설교. 예수님의 질문5: ‘이 여자를 보느냐?'(눅7:36~50). 양은익 목사.

 

예수님의 질문 5: ‘이 여자를 보느냐?'(눅7:36~50)

1.중요한 질문
오늘은 5번째 주님의 질문입니다. 독일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의 질문은 언제나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흔든다. 주님은 우리가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보게 하신다’

주님의 질문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질문을 왜 하신다는 겁니까? 진실을 보게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게 해서 우리를 흔들려고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구하는게 뭐니?’ 분명히 알고 따르라고 하는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질문은 ‘이 여자를 보느냐?’입니다. 별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피하고 싶은 진실을 직면하게 하는 뼈아픈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 보겠지만 이 질문 속에 저와 여러분의 고민이 있고, 시대의 병폐가 숨어 있습니다.

이 질문 누구한테 했습니까?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에게 합니다. 왜 했는지가 이제 밝혀 질 것입니다.

2.두 시선의 대립
오늘 본문은 한 여자를 둘러쌓고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시몬은 초대합니다. 초대한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좋아서 초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예수님을 살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죄인으로 알고 있는 한 여자가 갑자기 만찬 자리에 들어와 난감한 행동을 합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이 예수님의 발로 떨어지자 머리털을 풀어 그 눈물을 닦아 드립니다. 공손히 무릎 꿇어 냄새나는 더러운 발에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가져온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순간 향유의 그윽한 향기가 만찬장을 채웁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입니다. 모두가 놀라움 속에지켜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여자이길래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쉬운 자리가 아닙니다.그런데도 밀고 들어와 하려고 했던 것, 망설이지 않고 해 버립니다.

창녀라는 설이 많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자의 과거가 좋지 않아 죄인으로 낙인 찍힌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거룩한 바리새인들의 모임에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와서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보게’ 됩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여자가 하는 행동을 본 것입니다. 하지만 보는 시선은 갈립니다. 같은 것을 봤지만 다르게 봅니다.

시선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긍정의 시선과 부정의 시선이 부딪칩니다. 긍정의 시선은 예수님의 시선이고, 부정의 시선은 바리새인 시몬의 시선입니다. 예수님은 귀하게 봤고, 시몬은 혐오스럽게 봅니다.

시몬이 이 여자의 행동을 보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39절 입니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여자의 행동을 보고 속이 뒤틀린 것 같지요? 여자는 물론이고, 초대한 주님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판단합니다. ‘여자를 제지하지 않는 예수도 똑같다. 이제 알겠다. 예수는 선지자가 아니다’.

이 때 시몬의 생각을 간파하신 주님이 한마디 하십니다. ’50억 빚진 사람과 5억 빚진 사람이 있다. 둘 다 갚을 수 없어 모두 탕감해 주었다. 둘 중에 누가 더 감사하고, 감격했을 것 같으냐? 50억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격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시몬에게 묻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Do you see this woman?) 여자를 보는 시몬의 시선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제대로 본 거 맞느냐?? 제대로 봤다면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지 않겠느냐?. 그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봐라. 너는 내가 네 집에 들어갈 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환영의 입맞춤도 하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감람유 하나 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어떻게 했느냐? 너희가 그토록 경멸하고 무시하는 죄인이지만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아 주었다. 더러운 발에 입도 맞추었다. 귀하고 비싼 향유를 내 발에 부었다. 그 행동이 얼마나 귀하냐? 오죽했으면 그런 행동을 했겠느냐?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더 감사한 것 처럼, 이 여자도 죄가 많지만 그래서 더 감사하는 것 아니냐? 제대로 보고, 보는 시선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같은 모습을 봤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시선, 보는 눈이 달라서 그런 것입니다. 시몬의 시선과 예수님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가 보십시오. 시몬의 시선은 과거에 매여 있습니다. 죄에 대한 정죄가 강합니다. 평판을 중요시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합니다. 여인의 절박함 보다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집착합니다. 죄인이니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몬의 시선이 위험한 이유는 세 가지 입니다. 첫째, 사람을 과거의 틀에 가두는 것. 둘째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것. 한번 나쁜 사람은 영원히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합니다. 세째.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우월감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 거룩하게 살려는 것은 이해 할 수 있지만, 율법 때문에 사랑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사랑의 시선을 잃어 버리니 차갑고, 비난하고, 거부하고, 거만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시선의 차이가 주는 감정의 대립을 보십시오. 죄인으로 판단하는 시몬의 시선은 냉정과 거부와 비난과 거만과 무관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를 보는 주님의 시선에는 따뜻함이 보입니다. 이해하고 포용하십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여자를 보는 주님의 시선은 시몬의 시선과 다릅니다. 여자의 과거는 수치스럽고 부끄럽지만 과거로 규정하지 않고 현재의 갈망을 보고,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 놓으십니다.

이 여자만 이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세리장 삭개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 다 흠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의 말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창조적이다. 그분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시되, 동시에 그가 될 수 있는 모습도 함께 보신다’.

여자를 보는 주님의 시선에는 용서가 있고, 측은함이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지 않고 내면을 보십니다. 아픔에 공감하고, 회개를 받아 주십니다. 죄인이라 거리를 두지 않고 관계하십니다.

3.가져야 할 시선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까요? 어떤 시선을 갖고 싶으십니까? 말하나마나 주님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우리, 다 주님의 시선 가지십시다. 쉽지는 않습니다.

살펴보면 많은 것은 ‘시몬의 시선’이지 ‘주님의 시선’은 아닙니다. 교회도, 신자도, 사회도 대세는 시몬의 시선입니다. 시몬의 시선이 왜 많을까요? 편합니다. 유리할 때가 많습니다. 쉬워요. 안전합니다. 비판하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시선은 힘듭니다. 따뜻하게 대하는 것, 공감하는 것, 이해하는 것, 관계 맺는 것. 어렵습니다. 가지라고 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같은 현실에서 주님의 시선을 가지고 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안그렇습니까?

주님의 시선을 가지려면 사람을 믿어야 하는데 사람을 어떻게 믿습니까? 믿었다가 발등 찍히는 일이 한두 번입니까? 믿음이 악용되고, 선의가 배신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양보하고 포용하는 듯하면 치고 들어와 속된 말로 ‘해 처먹어 버립니다’.

단호하고, 냉정한게 훨씬 유리하고 안전합니다. ‘예수님의 시선을 가지자’.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시몬의 시선이 대세라 해도 주님의 시선쪽으로 가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겉만 보지 말고, 속도 보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은혜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은혜의 시선이 필요한 이유는 나나 너나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판단하고 비판하지만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입니다. 제 얼굴에 침 뱉을 때가 많습니다. 다 은혜가 필요합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다'(딤전1:15) 이런 자기 인식이 있을 때 시몬의 시선에서 벗어 날 수 있습니다.

‘부랑아 복음'(The Ragamuffin Gospel,브레넌 매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은 이 여자 죄인처럼 부랑아들을 위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부랑아가 아닙니까?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시몬의 시선이 아무리 대세라 해도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은 품고 살아 가십시다.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제대로 보고 있느냐?’ 주님의 시선으로 보는 은혜와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더 풍성하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Jesus’s Question 5: ‘Do You See This Woman?’ (Luke 7:36-50)

1. A Crucial Question
Today, we examine Jesus’s fifth question. German theologian Helmut Thielicke said this about Jesus’s questions: “The Lord’s questions always shake the deepest parts of our souls. He makes us face the truths we wish to avoid.”

This high regard for the Lord’s questions begs the question: why does He ask them? The answer is simple – to make us see the truth. Particularly, He uses questions to shake us by confronting us with truths we’d rather avoid. Questions like “Who do you say I am?” and “What do you seek?” are meant to awaken our consciousness and encourage deliberate discipleship.

Today’s question is “Do you see this woman?” While it might seem insignificant at first glance, it contains a piercing message that forces us to confront uncomfortable truths. As we shall see, this question reveals not only our personal struggles but also the societal ills of our time.

To whom was this question directed? To Simon, a Pharisee. The reason for this question will soon become clear.

2. The Clash of Two Perspectives
Our text revolves around an incident concerning a woman. Simon invites Jesus to his home. Although the Pharisees generally dislike Jesus, Simon extends this invitation. While his motivation isn’t explicitly stated, it seems less like genuine hospitality and more like a mixture of curiosity and suspicion – an opportunity to observe Jesus closely.

Then, an unexpected event unfolds. A woman, known throughout the town as a sinner, suddenly enters the banquet and behaves in a startling manner. She weeps at Jesus’s feet. As her tears fall on His feet, she lets down her hair to wipe them. She humbly kneels and kisses His dirty, odorous feet. Then she pours perfume on His feet. Instantly, the fragrant aroma fills the banquet hall.

This sudden, unprecedented event leaves everyone astonished. Who is this woman to act in such a way? This is no ordinary gathering, yet she boldly enters and does what she came to do without hesitation.

While many suggest she was a prostitute, this isn’t certain. What is clear is that her past was questionable enough to brand her a sinner. Such a woman has now entered uninvited into a gathering of “holy” Pharisees, causing quite a commotion.

Everyone present “sees” this scene. They all witness the same woman performing the same actions in the same place. Yet their perspectives differ dramatically. Though they see the same thing, they see it differently.

A collision of perspectives occurs. The positive perspective clashes with the negative one. The positive perspective belongs to Jesus, while the negative belongs to Simon the Pharisee. Jesus sees something precious; Simon sees something repulsive.

Simon observes this woman’s actions and thinks to himself. Verse 39 reads: “When the Pharisee who had invited him saw this, he said to himself, ‘If this man were a prophet, he would know who is touching him and what kind of woman she is—that she is a sinner.'”

Doesn’t it seem like the woman’s actions disturb him deeply? He criticizes and judges not only the woman but also his invited guest. “Jesus’s failure to rebuke her proves He’s just like her. Now I know – He’s no prophet.”

At this moment, Jesus, perceiving Simon’s thoughts, speaks: “Two people owed money – one fifty million, another five million. Neither could pay, so both debts were forgiven. Which one would be more grateful and moved? Wouldn’t it be the one forgiven fifty million?”

Then He asks Simon, “Do you see this woman?” The implication is that Simon’s perspective is flawed. “Are you really seeing correctly? If you were, wouldn’t you view her differently? Look at what she has done. When I entered your house, you didn’t give water for my feet. You gave no welcome kiss. You didn’t even offer common olive oil.

But look what this woman did. Though you despise and dismiss her as a sinner, she wet my feet with her tears and wiped them with her hair. She kissed my dirty feet. She poured expensive perfume on my feet. How precious are these actions? What must have moved her to act this way? Just as one forgiven more is more grateful, isn’t this woman, despite her many sins, showing greater gratitude? See properly and correct your perspective.”

3. The Perspective We Must Have
What perspective should we adopt? Which perspective do you desire to have? Needless to say, we need the Lord’s perspective. Let us all strive to have Jesus’s perspective, though it isn’t easy.

Upon examination, much of what we see reflects “Simon’s perspective” rather than “the Lord’s perspective.” This is true in churches, among believers, and in society at large. Why is Simon’s perspective so prevalent? Because it’s comfortable. Often advantageous. Easy. Safe. Criticism isn’t difficult. Neither is judgment.

But the Lord’s perspective is challenging. Showing warmth, empathy, understanding, building relationships – these are difficult. Though we’re told to adopt it, we lack confidence. In our reality, living with the Lord’s perspective seems enormously risky. Isn’t that so?

To have the Lord’s perspective, we must trust people – but how can we trust? How many times have we been betrayed after showing trust? Abuse of faith and betrayal of goodwill are commonplace. When we show tolerance and acceptance, others often take advantage and, as the saying goes, “eat us alive.”

Being stern and cold is far more advantageous and safe. “Let’s have Jesus’s perspective” – this isn’t something we can say lightly. Yet we shouldn’t give up either. Even if Simon’s perspective dominates, we must strive toward the Lord’s perspective. We need a perspective of grace that looks beyond the surface and isn’t trapped by prejudice.

We need this perspective of grace because we are all sinners. Though we judge and criticize, we’re looking at reflections of ourselves. Often, we’re spitting at our own faces. We all need grace. Paul confessed, “I am the chief of sinners” (1 Timothy 1:15). Only with such self-awareness can we break free from Simon’s perspective.

There’s a concept called “The Ragamuffin Gospel” (by Brennan Manning) which suggests that the gospel came for ragamuffins like this sinful woman. Aren’t we all ragamuffins before God? We are people in need of grace.

Even if Simon’s perspective prevails in society, let us hold onto the scripture that says, “Rejoice with those who rejoice; mourn with those who mourn” (Romans 12:15).

The Lord asks us, “Are you seeing properly?” May we all have more abundant grace and courage to see through the Lord’s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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