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3. 주일 설교. 예수님의 질문 4: ‘너는 얼마나 진지하니'(요4:3~26). 양은익 목사.

 

예수님의 질문 4: 너는 얼마나 진지하니? (요 4:3-26)

1. 진지함에 대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살펴보는 중입니다. 오늘은 네 번째 질문입니다. ‘너는 얼마나 진지하니?’ 요즘은 잘 하지 않는 질문입니다. 진지하면 부담스럽고, 무게 잡는 것 같아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재미있고, 짧고, 가벼운게 대세입니다. 진지하면 피곤합니다. 

그럼에도 진지함은 없으면 안 됩니다. 진지하다는 것은 대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중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진지한 것이라면, 세상이 가벼움(대충)을 추구한다해도 진지함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진지함이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는 진지한 것이 싫을 수 있지만, 진지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진지할 때는 진지해야 합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은 진지함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진지함이 없으면 신앙은 진짜 꽃(生花)이 아닌 가짜 꽃(造花)과 같습니다. 향기도 없고, 생명도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진지하고, 제자도에 진지할 때 향기나는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신자들에게 진지함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성품이고, 태도이며, 삶의 자세입니다.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진지해야 합니다. 삶과 신앙에 진지해질 때 하나님을 깊게 알게 되고, 성숙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진지함은 깊이 보는 눈이고, 깊이 듣는 귀이며, 깊이 이해하는 지혜입니다. 신앙이 단순한 ‘정보’라면 진지할 필요가 없겠지만, 신앙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너는 얼마나 진지하니?’ 부담스럽지만 꼭 필요한 질문입니다.

2. 주님의 진지하심
사실 주님은 이 질문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한적은 없지만 주님의 모든 질문과 말씀, 행동에는 항상 진지함이 있었습니다. ‘네가 찾는 게 뭐니?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아픈 자들을 치유하시며, 소외된 죄인들을 만나고, 산상에서 설교하시고, 십자가를 지시는 그 순간까지 주님은 영혼을 향한 진지한 열심으로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매 순간 진지하셨습니다. 당신이 진지하셨기에 대놓고 ‘얼마나 진지하냐’고 물어보지 않으셨지만, 주님의 모든 질문에는 진지함이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질문을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여하튼, ‘너는 얼마나 진지하니?’라는 질문은 주님이 하실만한 질문이고, 직접 하지 않았다고 해도 실제로는 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무엇에 진지하고 싶으십니까? 지금 무엇에 진지하십니까? 진지해야 할 것에 진지하십니까, 아니면 진지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진지하십니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견지해야 할 진지함이 있다면 어떤 진지함이겠습니까? 각자 진지해야 할 것이 많겠지만,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절실한 진지함이 나옵니다. 주님이 던지는 진지함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두 번의 요청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사마리아 지역 수가성에 사는, 삶의 환경이 힘든 한 여인과 유대 남자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만납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가고 없습니다. 주님도 혼자, 여자도 혼자입니다.둘 밖에 없으니 어색했을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먼저 어색함을 깨고 말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물 좀 달라” (요 4:7)

본문에는 두 번의 요청이 나옵니다. 7절의 “물 좀 달라”와 16절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둘 다 하기 힘든 요청이고, 위험한 요청입니다. 

(1) 물 좀 달라
‘물 좀 달라’. 물을 퍼서 먹을 바가지가 없으니 부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물 달라’고 부탁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반목하고 살았습니까? 말 붙이기도 힘든 때입니다. 그런데도 ‘물 달라’ 하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여자가 놀랐을 것입니다. 유대인 남자가 혼자 있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붙이다니.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 좀 달라’는 말에 기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을 준다고 해도 바가지로 줘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서로 불결하다 하여 그릇조차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간단한 부탁 같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은 요청입니다.

심지어 여자는 그 말을 듣고 조롱까지 합니다. 9절입니다. “유대인인 당신이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할 수 있는가?” (요 4:9)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자존심도 없나. 목말라 죽으면 죽었지 유대남자가 사마리아 사람에게 그것도 여자에게 물을 달라 하나!’

주님 입장에서는 이런 말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누가 봐도 피해 다니는 사람이고, 별 볼일 없는 여자입니다. 행색도 남루합니다. 말을 섞을 필요도 없고, 말을 섞다 조롱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을 섞으시고, 조롱까지 받으십니다. 그런데도 ‘당신이 뭔데,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하며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각설하고, 오늘 우리 단어로 말하면 주님은 이 여자에게 ‘진지’하십니다. 가볍게 보지 않고, 여자에게 진심을 다하십니다. 왜 진지하게 대하셨을까요? 주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여자를 보자마자 알아차리십니다. ‘아, 이 여자도 목이 마르구나’. 영혼의 갈증을 보셨던 것입니다.

물 좀 달라는 요청 뒤에는 이 여인을 향한 주님의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너는 왜 목마르니? 왜 갈증을 느끼니? 나도 너에게 물을 주고 싶다. 이 물은 너의 존재를 해갈시켜줄 생명의 물, 생수다. 나는 이 생명의 물을 너에게 주고 싶다.’

14절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은 이 여자가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에 매여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한 존재가, 땅에만 매여 하늘을 한 번도 쳐다보지 못하는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진지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이 말의 의미를 당장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에게는 이 여인에게 생명의 물을 주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대충 만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상당히 ‘진지’하십니다.

(2)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두 번째 요청은 16절에 나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 요청을 하신 시점은 여인이 비아냥거릴 때였습니다. “당신이 뭔데 야곱처럼 생수를 준다고 하는가? 당신이 야곱보다 큰가?” (요 4:12) “어떻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수 있는가?” (요 4:14)

계속 비아냥거리면 생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는데, 그게 바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요청입니다. 남편 얘기를 꺼낸 것은 남자들, 남편들 때문에 한이 맺힌 여인에게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민감하고 위험한 요청이었습니다. 여인의 수치와 인생의 고통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십니다. 이 여자가 가진 상처와 고통의 본질이었고,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이 여자의 삶이 변할 수 없기에 주님은 건드리신 것입니다. 

남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더 좋아요.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위험천만한 요청을 하신 것입니다.

남편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남편을 불러오라”. 부끄럽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기줄일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문제에 정직하게 대면하게 함으로써 일으켜 세워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물 좀 달라’는 요청과 마찬가지로 ‘남편을 불러오라’는 요청 뒤에는 ‘너의 아픔이 뭐니? 왜 아픈지 아니?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니?’라는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수술하려면 상처를 드러내야 하듯이, 회복하려면 힘들어도 끄집어내서 대면해야 합니다.

이 여인을 보십시오. 수치심으로 잠시 몸을 떨었겠지만, 주님이 드러낸 상처 덕분에 주님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어떻게 나의 과거를 알고 계실까? 선지자 아닌가?” 호감이 생기기 시작하고, 결국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28절부터 보면 변한 여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떳떳하지 못한 과거로 인해 피해 다니던 사람이 이제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외칩니다. “내 과거를 다 알고, 다 알아맞힌 사람이 있다” (요 4:39). 담대해졌습니다. 진지함의 열매입니다. 주님의 진지함으로 아픈 인생이 변하고, 은둔자가 세상으로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만 보십시오. 주님이 얼마나 진지하셨는지, 진지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지함이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 주님이 보여주신 진지함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계와 차이를 허무는 진지함이고, 다른 하나는 힘들어도 본질에 대면하는 진지함입니다. 둘 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진지함입니다.

사방에 벽이 가득합니다. 쌓는 사람만 많고 허물려는 사람은 드뭅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군가가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작은 행동이라도 벽을 허물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합니다. 담은 차별을 만들고, 싸움을 만듭니다. 알면서도 허물지 못하는 우리의 죄성이 안타깝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고, 악착같이 삽니다. 하지만 왜 사느냐고 물으면 자신이 없습니다. 삶의 본질과 핵심과 중심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피상적인 것에만 진지할 때가 많습니다. 본질을 놓치면 병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 가정, 사회 전부 똑같습니다. 본질을 잃으면 겉은 화려해도 속은 비게 됩니다. 신앙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가 본질입니다.

왜 예배하는지, 왜 열심히 일하는지, 왜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지? 이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말도 통하고, 사랑도 생기며, 의미도 생깁니다. 본질을 놓치면 예배도, 일도, 사랑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본질을 찾을 때 문제가 보이고, 해법이 보입니다. 관계가 깊어지고, 신앙도 삶도 풍성해 집니다.

진지함은 무게가 아닌 깊이입니다. 부담이 아닌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보여주신 진지한 관심과 사랑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힘 드시면 심기일전해서 다시 진지해 지십시다. 삶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가십시다.하나님께 진지하고, 사람에게 진지하고 말씀에 진지하고, 기도와 사랑에 진지하십시다. 큰 선물 주셔서 우리도 사마리아 여자처럼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Jesus’s Question 4: How Serious Are You? (John 4:3-26)

1. About Seriousness
We are examining Jesus’s questions. Today is the fourth question. ‘How serious are you?’ This is not a commonly asked question nowadays. People don’t like it because being serious feels burdensome and heavy. Fun, short, and light things are trending. Being serious is tiring.

Nevertheless, seriousness is essential. Being serious means not doing things carelessly. If being serious means being careful and diligent, then seriousness must remain alive even if the world pursues lightness (casualness). The reason seriousness must stay alive is that life is never easy. While young people might dislike being serious, there are moments when you can’t help but be serious. When it’s time to be serious, you must be serious.

Especially believers cannot ignore seriousness. Without seriousness, faith is like an artificial flower (造花) rather than a real flower (生花). It has no fragrance and no life. Only when we are serious about the Word and prayer, and serious about discipleship, can we bloom with fragrant flowers.

For believers, seriousness is not an option but an essential character trait, attitude, and approach to life. To break free from superficial and formal faith, we must be serious. When we become serious about life and faith, we can deeply know God and live a mature life. Seriousness is the eye that sees deeply, the ear that listens deeply, and the wisdom that understands deeply. If faith were merely ‘information,’ there would be no need to be serious, but faith is a matter of life. It cannot be done carelessly. ‘How serious are you?’ It’s a burdensome but necessary question.

2. The Lord’s Seriousness
In fact, the Lord never asked this question. Although He never asked it directly, all of His questions, words, and actions always contained seriousness. ‘What are you looking for? Who do you say I am?’ Until the moment He performed the miracle of five loaves and two fish, healed the sick, met marginalized sinners, preached on the mountain, and carried the cross, the Lord conducted everything with serious zeal toward souls.

The Lord was serious at every moment. Because He was serious, He didn’t directly ask ‘how serious are you,’ but all of His questions contained seriousness. Looking back now, I wish He had asked this question, and feel some regret. Anyway, ‘How serious are you?’ is the kind of question the Lord would ask, and even though He didn’t ask it directly, He is actually asking it.

What do you want to be serious about? What are you serious about now? Are you serious about what you should be serious about, or are you serious about things that don’t require seriousness? If there is a seriousness that should be maintained until the last moment of life, what kind of seriousness would it be? While everyone may have many things to be serious about, today’s text shows us a crucial seriousness. It can be considered the Lord’s challenge about seriousness.

3. Two Requests
This is a well-known text. A woman living in the town of Sychar in Samaria, who has difficult life circumstances, meets Jesus, a Jewish man, at a well. The disciples have gone to town to buy food. The Lord is alone, and the woman is alone. With only the two of them, it must have been awkward. That’s when the Lord first breaks the awkwardness and starts speaking. “Give me a drink” (John 4:7)

The text contains two requests. “Give me a drink” in verse 7 and “Go, call your husband and come back” in verse 16. Both are difficult requests and dangerous requests.

(1) Give me a drink
‘Give me a drink.’ Though He had to ask because He had no bucket to draw water with, it was a situation where even asking for water was difficult. How much hostility existed between Jews and Samaritans at that time? It was a time when even speaking to each other was difficult. Yet He starts the conversation by saying ‘give me a drink.’

The woman must have been surprised. A Jewish man speaking to a Samaritan woman who was alone. Even with no one watching, it wasn’t an easy thing. She might have been shocked at the words ‘give me a drink.’ Even if she were to give water, it would have to be with a dipper, but these people wouldn’t even share utensils, considering each other unclean. What seems like a simple request is absolutely not simple.

The woman even mocks Him upon hearing these words. Verse 9 says, “How can you, a Jew, ask me, a Samaritan woman, for a drink?” (John 4:9) What does this mean? ‘Do you have no pride? Would a Jewish man ask a Samaritan, especially a woman, for water, even if he died of thirst!’

From the Lord’s perspective, there was no reason to hear such words. Anyone could see she was someone to be avoided, an insignificant woman. Her appearance was shabby. There was no need to mix words with her, and no reason to be mocked. But the Lord mingles words with her and even receives mockery. Yet He doesn’t back down saying ‘who are you to say that, do you know who I am?’

In any case, in today’s terms, the Lord is ‘serious’ with this woman. He doesn’t take her lightly but gives her His sincere heart. Why did He treat her so seriously? Wasn’t it because He had something to give? As soon as He saw the woman, He noticed. ‘Ah, this woman is also thirsty.’ He saw her soul’s thirst.

Behind the request for water lies the Lord’s question for this woman: ‘Why are you thirsty? Why do you feel thirst? I want to give you water too. This water is living water, water of life that will quench your existential thirst. I want to give you this water of life.’

Verse 14 says: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the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them will become in the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The Lord wanted this woman to live as a proper human being. He wanted a being bound by her unfortunate past and living a hard life to break free from the unfortunate life of never looking up at the sky, being bound only to the earth. This is why He was serious. The woman probably didn’t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se words right away. But the Lord had an earnest desire to give this woman the water of life. He couldn’t meet her casually. The Lord is quite ‘serious.’

(2) Go, call your husband
The second request appears in verse 16. “Go, call your husband.” This request was made when the woman was being sarcastic. “Are you greater than Jacob who gave us this water?” (John 4:12) “How can one never be thirsty again?” (John 4:14)

If she keeps being sarcastic, she cannot receive the living water. He takes a drastic measure, which is the request “Go, call your husband.” Bringing up the husband was a sensitive and dangerous request that touched the Achilles’ heel of a woman who had grievances because of men and husbands. It was her shame and life’s pain.

But the Lord doesn’t avoid it and confronts it head-on. This was the essence of this woman’s wounds and pain, and the Lord touched it because without resolving this, this woman’s life couldn’t change.

You don’t have to get involved in others’ lives. That’s better. Pretend not to see even when you see, pretend not to know even when you know. There’s no need to invite danger. Yet the Lord made this extremely dangerous request.

Even though He already knew she had no husband, He said “Call your husband.” It wasn’t to shame her or to put her down. He wanted to raise her up by making her honestly face her problems.

Like the request “give me a drink,” behind the request “call your husband” lies the questions ‘What is your pain? Do you know why you’re hurting? How can you break free?’ Just as surgery requires exposing the wound, recovery requires facing what’s painful even if it’s difficult.

Look at this woman. Though she might have trembled briefly with shame, thanks to the wound the Lord exposed, she becomes interested in the Lord. “How does He know my past? Could He be a prophet?” She starts to feel drawn to Him, and eventually discovers Christ.

From verse 28, we see the changed woman. Someone who used to avoid others due to a shameful past now stands before people and cries out. “He told me everything I ever did” (John 4:39). She became bold. This is the fruit of seriousness. Through the Lord’s seriousness, a painful life is changed, and a recluse comes out into the world.

Look at just one thing in today’s text. How serious the Lord was, what seriousness is, and what seriousness created. The Lord showed two types of seriousness. One is seriousness that breaks down boundaries and differences, and the other is seriousness that faces the essence even when it’s difficult. Both are types of seriousness we desperately need.

Walls are everywhere. There are many who build them but few who try to break them down. But someone among us must start first. It’s important to take the first step toward breaking down walls, even if it’s a small action. Walls create discrimination and fights. It’s sad that our sinful nature prevents us from breaking them down even when we know this.

Everyone lives earnestly and desperately. But when asked why they live, they’re not confident. We’re often serious only about superficial things, not knowing what the essence, core, and center of life is. When we miss the essence, we can only become sick.

Faith, family, society are all the same. When we lose the essence, the outside may be splendid but the inside becomes empty. In faith,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with God is the essence. In family, love and trust between family members is the essence.

Why do we worship, why do we work hard, why do you and I live together? When we don’t lose sight of this essence, communication works, love grows, and meaning emerges. When we lose the essence, worship, work, and love can only become empty. We must find the essence. When we find the essence, we see the problems and solutions. Relationships deepen, and both faith and life become abundant.

Seriousness is not weight but depth. Not burden but blessing.

May the serious interest and love that the Lord showed to the Samaritan woman become our image today. If you’re tired, refresh yourself and become serious again. Love life and live earnestly. Be serious with God, serious with people, serious with the Word, serious with prayer and love. He will give us a great gift and make us rise up like the Samaritan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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