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초라한 당신에게(눅15:11~24)
말씀 제목은 ‘너무 초라한 당신’이지만 ‘너무 초라한 당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전하겠습니다. 지난 주 말씀의 적용으로 들으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초라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학개 선지자를 통해 ‘힘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초라한 성전의 겉만 보지 말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과 성전 가운에 영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무너진 성전, 멈추지 말고 재건해 내라는 사명과 격려를 주십니다.
1.초라함
초라하다는 말에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초라함은 피해 갈 수 없는 감정이고, 현실입니다.가진 게 많고 이룬게 많아도 초라함은 튀어 나옵니다. ‘왜 이것 밖에 안되지’. 겉을 중시하는 물질의 세상은 초라해지기 쉬운 세상입니다.
‘너무도 초라한 당신’에 속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너무도 초라한 당신, 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선생의 소설(1998년) 제목에서 오늘 말씀 제목을 따왔습니다. 소설에서 초라함을 느끼는 사람은 부인이고, 초라함의 대상은 남편입니다. 부인이 초라함을 느끼는 결정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 읽어 보겠습니다.
‘욕실에서 나오는 남편을 들여다보다가 그녀는 소리를 지를뻔하게 놀라면서 얼굴을 돌렸다. 팬티만 입은 남편의 하체가 보기에 흉했다. 넓적다리에 약간 남은 살은 물주머니처럼 축 저쳐 있고, 툭 불거진 무릎 아래 털이 듬성듬성한 정강이는 몽둥이처럼 깡말라 보였다. 순간적으로 닭살이 돋을 것처럼 혐오스러웠다. 징그러운 것하고는 달랐다. 징그럽다는 느낌에는 그래도 약간의 윤기가 있게 마련인데, 이건 군더더기 없는 혐오 그 자체였다’
사이 좋은 부부는 아니었지만, 세월지나 초라해져 버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쓸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측은한 거에요. 남편만 초라한 당신이겠습니까? 부인도 초라한 당신이고, 우리도 맞이할 초라하고 쓸쓸한 모습입니다. 초라함은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비교하다 초라해지고, 인정 받지 못해 초라합니다. 초라하다 화내고, 초라하다 우울하고, 쓸쓸하고, 부끄럽고, 그러다가 은둔해 버립니다. 초라함과 쓸쓸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겨내는 가는 중요한 삶의 숙제입니다.
초라할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초라할 때 사람들이 자주 쓰는 방식이 포기와 과로이지만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초라하다 포기하면 무능해 질 뿐입니다. 초라하여 과로하게 되면 탈진하게 됩니다. 포기도 과로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초라함은 겉으로 보이는 외부의 문제지만, 초라함의 해결은 겉에 있지 않고 속(내면)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탕자의 비유를 보면서 초라함에 무너지지 않는 은혜와 능력,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2.초라한 탕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중 동생이 죽지도 않은 아버지의 유산을 챙겨 가지고 집을 나갑니다. 주머니 두둑하겠다, 쓰고 싶은대로 씁니다. 요즘 말로 ‘돈지랄'(분수에 맞지 않게 돈을 마구 쓰는 것)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 돈이 다 떨어집니다. 돼지 우리까지 가게 됩니다. ‘초라해 졌습니다’. 초라해진 아들,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 흔쾌히, 너무나 기뻐하면서 받아줍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이고, 집 떠난 둘째 아들은 하나님을 떠난 이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수 많은 이들을 뜨겁게 만들었던 말씀입니다. 비유의 요지는 한 마디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입니다. 탕자는 자신이 다 끝난줄 알았지만 그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고, 돌아가보니 자신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아파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됐겠습니까?
오늘 비유에서 두 가지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는 조율이고, 다른 하나는 부드러움입니다. 둘 다 탕자를 초라함에서 벗어나게 만든 귀한 모습입니다.
(1) 조율(Tuneing)
조율은 탕자를 초라함에서 벗어나게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조율은 기준되는 음에 음을 맞추는 것(tuneing)입니다. 조율이 안되면 불협화음이 되서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탕자가 이 조율을 초라할 때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누구의 음도 맞추지 않았지만 초라하고 쓸쓸한 상황에서 기준음을 듣기 시작합니다. 기준음이 뭡니까?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초라함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가게도 합니다. 탕자는 지금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를 부르면서 아버지와 조율하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17절 제 정신이 들고나서 부터(스스로 돌이키고 나서부터, 개정) ‘아버지’라는 호칭이 탕자의 입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아버지, 제가 죄인입니다. 아들이라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일 곱번 나옵니다. 생각하지도 않던 아버지가 그의 말과 생각 안에 들어오고, 자신이 떠난 그곳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께 음을 맞추고, 생각을 맞추고,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귀 기울여 들어야 소리는 비로서 이야기가 되는 법’인데 듣지 않던 이가 들으면서 음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초라함이 만들어 준 은혜입니다. 초라하고, 힘들수록 조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도 조율하고, 소중한 사람들과도 조율해야 합니다. 떨림을 가지고 한음 한음, 기준음을 찾아 맞출 때 초라함에 무너지지 않는 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조율하면서 사십니까? 꼭 하나님의 음을 섬세하게 찾아서 조율하시기 바랍니다. 조율이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갈 때 아버지는 버선발로 달려나와 저도 맞아주고, 여러분도 맞아 주실 것입니다. 초라한 자에서 존귀한 자로 컴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인생의 상처와 부끄러움과 실패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조율될 때 치유되고 일어설 수 있게 됩니다.
(2) 부드러움
두 번째 탕자에게서 배워야 하는 모습은 ‘부드러움’입니다. 탕자가 부드러워졌습니다.
부드럽다는 것은 거칠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드러운 사람이 좋습니까? 사사건건 거칠게 구는 사람이 좋습니까? 좋아하는 것은 자유지만, 거친 것보다 부드러운 게 좋은 것을 훨씬 더 잘 만들어 냅니다.
탕자가 하나님과 조율하면서 받은 선물이 부드러움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날때만 해도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당돌했고, 거칠었습니다. 내 재산 내 것이니 주십시오. 무슨 자기 재산입니까? 건방이 하늘을 찔러습니다.
아들의 거침에서 우리의 거침이 오버랩됩니다.모든 불순종에는 하나님에 대한 반발과 거침이 들어 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께 거칠었습니다. 하지만 초라해 진 후에는 부드러워집니다. 사람은 초라해지면 자신을 방어하기 더 전투적이 되는데 탕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돈 떨어져서 겸손해진 겁니까? 돼지를 치면서 거칠고 거칠었던 아들은 눈물로 젖은 빵을 먹으면서 유해집니다. 부드러워지지 않았다면 아버지께로 돌아갈 생각도, 회개도, 겸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부드러움이라는 단어 오늘 아침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우면 손해 보는 세상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삶의 모습이고, 태도입니다. 거침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부드러움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부드러움이 더 강합니다. 탕자가 부드러워졌기에 아버지께 돌아가 회복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부드러움에는 회복을 만들어 내는 절대적인 힘이 있습니다.
삶이 힘들고, 받은 상처가 많을수록 거칠어지면 안됩니다. 부드러워져야 찢겨진 상처들이 아물어 갑니다. 거칠수록 회복은 늦어집니다. 자신에게, 타자에게, 하나님에게, 받은 상처 전부 부드럽게 대할수록 좋아집니다. 하나님과 조율하면서 부드러움을 자꾸 연습해야 합니다.
가깝게 여기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세요. ① 평온하다 ② 불안하다 ③ 화난다 ④ 짜증난다.. ②번에서 ④ 번으로 갈수록 부드러움을 더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21절에 보면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고백입니까? 그리고 22절인데, 새번역은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메시지 성경은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the father wasn’t listening)로 번역합니다. 저는 이 메시지 번역이 너무 좋습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들은 구구절절 잘못했다고 고백하는데 아버지는 하나도 안 들어요. 왜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오는 순간 아버지는 이미 다 용서했고, 아버지의 관심은 온통 잔치에 쏠려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옷 가져와서 입혀, 반지도 끼우고, 신발도 가져와서 신기고. 살지 송아지 잡아. 내 아들이 죽었다고 살아났어. 잃어다가 다시 찾았어’
우리는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집 떠나지 말랬지’. 이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할텐데 이런 말이 없어요. 돌아온 아들이 너무 좋고, 귀한 거에요. 내가 이 아들이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벅찬 일입니까? 이 귀한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초라한 당신들 모두’에게
더 크고, 깊게 울리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사야 49:15 입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초라한 우리’에게 주시는 감격적인 하나님의 고백입니다.기쁨으로 들으십시다. 생의 초라함에서 일어나는 은혜가 오늘 아침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Too Shabby for You (Luke 15:11-24)
The title of this sermon is ‘Too Shabby for You’, but I don’t want it to be ‘Too Shabby for You’, so let’s hear it as an application of last week’s sermon. God is saying to the humbled Israelites through the prophet Haggai, ‘Be of good cheer’. Looking beyond the outward appearance of the shabby temple and seeing a God who is faithful to his covenant and a God who is present in spirit in the temple robes, God gives them a mission and encouragement to not stop and rebuild their broken temple.
1.Shabbiness
You may feel bad at the word shabby, but shabbiness is an inescapable emotion, a reality.No matter how much you have and how much you have achieved, shabbiness pops up.’Why not just this’. The world of outward material things is a world where it is easy to feel shabby.
Who wouldn’t belong to ‘you who are so shabby’, you who are so shabby, you who are so lonely. I took the title of today’s talk from the title of Park Wan-seo’s novel (1998). In the novel, the person who feels shabby is the wife, and the object of shabbiness is the husband. There is a crucial scene where the wife feels shabby, let me read it to you.
‘As she peeked at her husband coming out of the bathroom, she turned her face in surprise, almost screaming. Clad only in his boxers, his lower body was a sight to behold: what little flesh remained on his broad legs was shrunken like a water bag, and the hairy shins beneath his bulging knees looked like clubs. I was instantly disgusted, but not in the same way as gross. There’s a certain lustre to being disgusting, but this was sheer, unadulterated disgust.’
‘They were not a good couple, but she couldn’t help but feel lonely when she saw how shabby he had become over the years. It’s a pity, because he’s not the only shabby you. You’re a shabby you, and you’re a shabby you, and you’re a shabby, lonely you, and that’s what we’re going to get. There’s no escaping it.
You’re low because you’re compared, you’re low because you’re not recognised. Shabby to be angry, shabby to be depressed, lonely, ashamed, and then reclusive. How we understand and deal with lowliness and loneliness is an important life challenge.
What do you do when you’re lonely? What do you do when you’re lonely? Giving up and overworking are two common ways people do when they’re lonely, but they’re not the answer. Giving up will only make you incompetent. If you overwork because you’re humbled, you’ll burn out. Neither giving up nor overworking is the answer. Shabbiness is an external problem, but the solution to shabbiness is not external, it’s internal.
In today’s text, the parable of the prodigal son, we hope to discover grace, power, and the ability to not be defeated by shabbiness.
2.The Prodigal Son
There were two sons, and the younger of the two left home with the inheritance of his father, who hadn’t even died. Pockets full, spend it however you like. They ‘splurged’, as we say these days (spending money out of proportion), and then they run out of money. You end up in the pig pen, ‘shabby’. The son, now shabby, returns to his father. The father welcomes him back with open arms, with great joy.
The father here is God, and the second son who left home is a parable about those who have left God. It’s a parable that has struck a chord with many. The gist of the parable is, “Even when the sky falls, there is a hole to rise. . The prodigal son thought he was finished, but he had a ‘father’ he could go back to, and when he did, he found that he still had a father who missed him, who was waiting, who was hurting, who loved him. How comforting and reassuring that must have been.
There are two things to ponder in today’s parable: one is tune, the other is tenderness, both of which are precious qualities that brought the prodigal son out of his shabbiness.
(1) Tuneing
Tuning is what brought the prodigal son out of obscurity. Tuning is the alignment of a note to a reference note. If it’s out of tune, it’s dissonant and unlistenable. This is what the prodigal son does when he’s in tune. So far, he hasn’t tuned in to anyone’s note, but in his humble, lonely situation, he begins to hear the reference. What’s the reference note? It’s the Father. It’s God.
Humbleness can bring you down, but it can also push you forward. The prodigal son is now thinking of his father, calling on his father, and he begins to tune in to his father. It’s moving forward. Verse 17 From the time he came to his senses (from the time he turned himself around, paraphrased), the title ‘father’ pours out of his mouth.
Father, I am a sinner. I am not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Father. Father, God, God. Over and over again, the unthinking father enters his words and thoughts, and he begins to tune in, tune up, tune in, look up, and listen to the Father who remains unchanged in the place he left.
‘A sound becomes a story when it is listened to,’ and the unlisteners begin to listen and tune in, note by note. This is the grace of humble beginnings. The shabbier, the harder, the more important it is to tune in. We need to be in tune with God, and we need to be in tune with the people we care about. When we tune with trepidation, when we find the note, the reference note, and tune it in, we find the strength to not be broken by our shabbiness.
How much do you live in tune? I encourage you to delicately find and tune into the notes of God. When you are in tune and return to the Father, He will come running out to greet you, and you will greet Him. Shouldn’t you make a comeback from the lowly to the honourable? The wounds, shame, and failures in your life will be healed and you will be able to stand up when you are in tune with God’s will and heart.
(2) Tenderness
The second characteristic we should learn from the prodigal son is “tenderness”. The prodigal son became gentle.
To be gentle is to not be rough. Do you like people who are gentle or do you like people who are rough in every way? You are free to choose your favourite, but gentle produces much more good than rough.
Gentleness is the gift the prodigal son received when he got in tune with God. The prodigal son was not soft when he left his father; he was brash, he was rough. My property is mine, give it to me. What kind of property is yours? The arrogance pierces the sky.
In the son’s coarseness, our coarseness overlaps.Every disobedience contains a backlash and coarseness against God. The prodigal son was rough with his father, but after becoming shabby, he becomes tender. When people become shabby, they become more combative in defending themselves, but not the prodigal son. How fortunate is that?
The son who was rough and tough by beating pigs becomes harmful by eating bread wet with tears. If he hadn’t been softened, he wouldn’t have thought of returning to his father, he wouldn’t have repented, he wouldn’t have humbled himself.
Gentleness is a word I want you to take to heart this morning, it’s an attitude, a way of life, an attitude that the world loses out on if you’re not gentle, but it’s an important one for Christians to have. Toughness can be done by anyone, but gentleness can’t be done by anyone; gentleness is stronger. Just as the prodigal son was able to return to his father and be restored because he was softened, there is an absolute power in gentleness that produces restoration.
The harder life is, and the more wounds you’ve received, the harder you shouldn’t be. Gentleness is the only way to heal the wounds. The harder you are, the slower your recovery. The gentler you are with yourself, with others, with God, and with the wounds you receive, the better. You need to practice gentleness over and over again, in tune with God.
Take a look at how you feel when someone close to you is around. Do you feel ① calm, ② anxious, ③ angry, ④ upset annoyed…? As you move from ② to ④ you need to practice gentleness more and more.
In verse 21 we see the returning son asking his father for forgiveness: ‘I have sinned before heaven and before my father; from now on I am not even worthy to be called my father’s son’. What an important confession. And then verse 22,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 says, ‘But the father said to his servants’. The Message Bible translates it as ‘the father wasn’t listening’. I love this Message translation.
Imagine this scene. The son confesses to his father that he’s done everything wrong, but the father isn’t listening. Why? Because by the time the son comes home, the father has already forgiven him, and his attention is focused on the feast: ‘Bring your best clothes and put them on, put on your rings, bring your shoes and put them on. Get the fatted calf. My son was dead and he’s alive. He was lost and found.’
We’re like, ‘So what did I tell you, I told you not to leave home’. ‘ I’m at the end of my tongue to say, ‘This is so good, this is so precious, this is my son back. Imagine if I were this son. How overwhelming it would be to think that this precious fatherly love, this love of God, would resound louder and deeper to ‘all of you lowly people’
to “all of you, the lowly ones.
Isaiah 49:15 . ‘How shall a mother forget her suckling, how shall she not have compassion on the son of her womb; though a mother forget her child, yet will I never forget you.
This is God’s stirring confession to ‘us lowly ones’.Let us hear it with joy. May you have grace this morning to rise from the lowliness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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