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이야기 36: 압도하는 하나님의 임재(출19:16~25)
1.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똑같은 질문이 두 번 나옵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36절. 51절입니다. 36절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한 질문입니다. 51절은 소경 바디매오가 질문의 대상입니다. 두 질문 다 이들이 ‘원하는’ 것이 있어서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원하는 게 뭐였습니까? 상당히 다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청탁입니다. ‘주님 높은 자리 앉으면 그 옆자리는 저희에게 주십시오’. 흔히 보는 청탁입니다.바디매오와 비교해보면 배부른 소원입니다. 바디매오가 바라는 것은 절박하고 간절합니다.’주님, 제 눈 좀 뜨게 해 주십시오. 보기를 원합니다’.
결론이 어떻게 납니까? 자리 청탁한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한테는 한 소리 듣고, 동료 제자들은 화나게 만듭니다. 바디매오는 결과가 좋습니다. 주님의 치유로 눈을 뜨게 됩니다.
예,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주님께서 ‘너 바라는 게 뭐니?’ 물어보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이런저런 절실한 것 부탁할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가장 필요한 소원을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바디매오의 소원이 그런 소원입니다. ‘주님, 제가 보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감긴 눈이 보는 것 처럼 간절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소원하는 것이고, 또 하나 바디매오의 소원 속에는 바디매오의 소원을 통해 우리가 소원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복음서 기록자의 소원이 들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이 소원이 나옵니다. 어떤 소원을 가져야 할지 잘 보십시다.
2.바라야 하는 것: 압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산만한 듯이 보이지만 오늘 본문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오심'(God Coming)입니다. 이미 온다고 예고 하셨고, 예고한 그 날에 오셨는데살짝 오신 게 아니고 ‘압도적인’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칩니다. 산에 짙은 구름이 덮입니다. 큰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연기가 치솟고 불길이 솟아납니다. 산이 흔들립니다. 경계선을 넘지 말라고 한 명령을 어기면 죽는다는 무서운 경고가 들립니다. 떨지 않을자가 있겠습니까? 반지의 제왕이나, 헤리포터 보듯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장면은 판타지적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심(God’s Coming), 신학 용어로 ‘신현'(Theophany)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신현은 Theo+phany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theo)이 나타나셨다(phano)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지만 자신과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나타나시는데 그 나타나는 현상을 ‘신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현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증언입니다. 창조가 신현이고, 홍수가 신현이고, 바벨탑의 무너짐이 신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족장들에게 나타나셨고, 모세에게 나타나셨고, 재앙으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셨습니다. 욥과 이사야와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에게 신현하셨고, 결정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빌립이 질문합니다. ‘주님,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주님 뭐라 하십니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요14:8~9). 주님 자신이 신현의 완성입니다.
오심과 나타나심의 방식은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르지만 가장 적합하게 나타나사 하나님을 알려 주십니다. 엘리야에게는 조용하고 여린 소리로(왕상19:12) 신현하시지만, 오늘 노예 신분에서 풀려나 하나님을 모르고 중구난방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압도하는 하나님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권능과 다스림과 위엄을 보여 주십니다.
압도하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선포할 율법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 왕같은 제사장, 세상을 밝혀 줄 거룩한 백성이 되려면 주신 법에 순종해야 하기에 두려움 가득하게 나타나셔서 순종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시대입니다. 신자들도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과거에도 오셨고(came), 지금도 오시고(come), 미래에도 오실 것(will come)입니다. 이 오심에 우리의 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바디매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보기를 원합니다. 저에게도 당신의 임재와 오심과 뜻을 더 선명하게 보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가져야 할 1번 소원입니다. 신현을 통해 무한한 하나님을 만나면 얼마나 압도적이겠습니까?
시내산이 진동하듯이 내 삶의 축이 흔들리겠지만 그 변화의 두려움과 떨림을 통해 하나님의 보화같은 존재가 되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알리고, 세상을 밝히는 거룩한 자가 된다면 기대할만한 떨림과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오심과 신현을 더 깊게 경험하고, 더 환하게 보면 좋겠습니다.
3.신현의 삶을 위해 할 일: 갈망.
가능하겠습니까? 예. 지금도 가능하고, 저에게도 가능하고, 여러분에게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드러내시는 하나님입니다. 드러내시는 수단은 무궁무진합니다. 말씀, 꿈, 자연, 설교, 독서, 다툼, 아품, 눈물과 실패을 통해서 오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살아 있을수록 더 잘 보입니다.
상식적인 질문 하나하겠습니다. 너와 내가 깊은 관계, 마음을 잘 알아주고, 헤아려 주는 사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간과 노력,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추구할 때 깊은 관계가 되고,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신현하사 말씀하시고, 위로하시고, 동행해 주십니다.
영적인 추구없이, 하나님에 대한 갈망없이 하나님의 오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만큼 딱한 것은 없습니다.
출애굽기 33:13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지만 주님 원하건데 주의 길을 다시 내게 보이시고, 주님을 더 알게 해주십시오. 18절. 주의 영광을 보고 싶습니다. 보여주십시오.
모세가 지금까지 본 하나님의 신현이 얼마나 크고 놀랐습니까? 그런데도 모세는 더 보여 달라고 합니다. 열정이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그만하면 됐어. 욕심도 많지. 뭘 더 보여줘’, 하시지 않고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니다. ‘반석 위에 서라’(13:21) 하시더니 하나님이 ‘오사’(신현) 지나가십니다.
신앙인의 삶에서,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져서는 안되는 단어 하나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입니다. 위험한 단어입니다. 이만하면 됐다는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하고, 그 이상해봤자 나올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한해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뭔데 하나님을 제한합니까? 하나님을 예측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깊은 속 마음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내가 어떻게 다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이사야 55:8-9.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하나님은 예측 할 수 없습니다. 이 예측할 수 없음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새로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인자와 긍휼과 오심은 똑같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고백했듯이 아침마다 새로운 긍휼이고,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고 아침마다 새로운 오심입니다.‘그 사랑, 그 자비 아침마다 새롭고 그 신실하심 그지 없어라’(애가3:23)
하나님은 지겹지 않으십니다. 신앙의 삶은 권태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보여주심과 임재를 갈망하면서 지겹지 않은 새로움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만하면 됐어요! 꿈에서도 나오지 않게 하십시다.
4.하나님의 오심이 주는 압도적인 선물
신현이 주는 선물은 압도적입니다. 신현을 경험한 이들의 기록을 보면 세 가지 공통점이 보입니다. 변화, 용기, 소명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이사야, 바울 전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오심으로 그들의 삶은 바뀝니다. 살아가는 방식,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집을떠나고, 적진으로 들어가고, 싫어하던 일을 합니다. 용기입니다. 이런 용기를 가지고 밀어 붙입니다. 해야 한다는 소명과 책임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세, 이사야, 바울, 초대 교회 성도들 전부 거대한 제국과 맞짱을 뜨고, 치명적인 균열을 냅니다. 소명 가진자만이 할 수 있는 헌신입니다.
압도적인 신현 앞에 설 때 하나님 앞에 선 중보자를 통해 가정과 나라와 세상이 바로 서는 이유입니다. 자신을 위해, 자녀를 위해, 교회를 위해 바디매오 처럼 간절하게 주님께 부탁하십시다.
‘주님, 당신을 보기 원합니다. 내 눈을 여사 하나님과 그 나라와 그 생명에 눈뜨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그치지 않는 갈망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odus Story 36: The Overwhelming Presence of God (Exodus 19:16-25)
1.What do you want?
The same question is asked twice in Mark 10: ‘What do you want from me? Verse 36. Verse 51. In verse 36, the question is asked of James and John. In verse 51, the question is asked of the blind man, Bartimaeus. Both questions are asked because they ‘want’ something.
What was it they wanted? It’s quite different. James and John’s is a request: ‘Lord, if you sit on the high seat, give us a seat beside you’. It’s a common request. Compare that to Badimaeus’ wish, which is a full wish. Badimaeus’ wish is urgent and desperate: ‘Lord, open my eyes. I want to see’.
What’s the outcome? James and John, who have asked to be excused, are told off by the Lord, and their fellow disciples are angry. The outcome is favourable: the Lord’s healing opens their eyes.
Yes, now it’s our turn. What would you say if the Lord asked you, ‘What do you want?’ You could ask for this or that desperate thing, but you might as well tell him your most necessary wish. That’s what Bartimaeus’ wish is: ‘Lord, I want to be made to see’. What could be more desperate than to see with your own closed eyes?
That’s why we make wishes, and we should also recognise that in the midst of Badimaeus’ wish is the wish of the Gospel writer, who uses Badimaeus’ wish to teach us what we should wish for. This wish appears in today’s text, so let’s see what we should wish for.
2.Desire: The Overwhelming Presence of God
It seems like a distraction, but one word sums up today’s text: God Coming. He’s already come, he’s come on the day he was foretold to come, and he didn’t come in a trickle, he came in an ‘overwhelming’ way.
There is thunder and lightning. Dark clouds cover the mountains. A loud trumpet sounds. Smoke rises and flames leap. The mountains shake. You hear a terrifying warning that if you don’t obey the command not to cross the boundary line, you will die. Who wouldn’t tremble? Some people see it as Lord of the Rings or Harry Potter, but this is not a fantasy situation.
It’s a scene of God’s Coming, or “Theophany” in theological terms. Theophany is a combination of theo + phany. The idea is that God (theo) has appeared (phano). God is invisible, but he appears to make himself and his will known, and that appearance is called a theophany.
Without theophanies, we would not know God, but God does appear, making his existence and will clear. The Bible is a testimony that God has appeared. Creation is a manifestation, the flood is a manifestation, and the fall of the Tower of Babel is a manifestation. God appeared to Abraham and the patriarchs; God appeared to Moses; God revealed his presence in plagues; God manifested himself in prophets like Job, Isaiah, and Jeremiah; and, crucially, God himself came to earth.
Philip asks: ‘Lord, show me the Father, that I may know you’. The Lord says: ‘Philip, I have been with you for so long, and yet you do not know me; h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John 14:8-9). The Lord Himself is the consummation of theosis.
The manner of his coming and manifestation varies from person to person and from age to age, but he appears and makes himself known in the most fitting way. For Elijah, he came in a still, small voice (1 Kings 19:12), but for the Israelites today, freed from slavery and ignorant of God, he comes as a God who overwhelms them, demonstrating God’s power, dominion, and majesty.
He overwhelms them because of the importance of the law that he is about to proclaim to them. He appears to them full of fear, because to be God’s special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that will light up the world, they must obey the law that he has given them.
These are times of unbelief and doubt in God. Even believers often fail to recognise the manifestation of God, but God has come in the past, is coming now, and will come in the future. Our eyes must be open to this coming.
We need to pray the prayer of Badimaeus: “Lord, I want to see. Help me to see more clearly your presence, your coming and your will’. This is the number one wish we should have. How overwhelming it would be to encounter the infinite God through the Divine Presence.
The axis of my life will be shaken, like the shaking of Mount Sinai, but if through the fear and trembling of that change, I can become a treasure of God, a royal priest, a holy person who makes God known and illuminates the world, then it is a trembling and change to be expected. I wish that I can experience God’s presence, coming, and shinhyeon more deeply and see it more brightly.
3.What to do for the life of theophany: Longing.
Is it possible? Yes. It is possible now, it is possible for me, it is possible for you. God is a revealing God. His means of revealing are infinite. He comes through words, dreams, nature, sermons, reading, arguments, aches, tears, and failures. The more conscious we are of God, the more we see him.
Let me ask you a common-sense question: How do you and I become deeply connected, heart-to-heart, and caring? It takes time, effort, and commitment. God is no different. When we seek God with a hunger like a deer seeks a stream, we become deeply connected, and in that relationship, God manifests, speaks, comforts, and accompanies us.
There is nothing so hard as to say that without spiritual pursuit, without longing for God, there is no coming of God.
In Exodus 33:13, Moses pleads with God. I have come this far by the favour of God, but if You will, show me Your ways again, that I may know You more. Verse 18. I want to see your glory. Show me.
How great and astonishing is the manifestation of God that Moses has seen so far, and yet Moses asks to see more. There is passion. To Moses’ prayer, God does not say, ‘That’s enough, I’m greedy, what more do you want to show me’, but shows him his glory: ‘Stand on the rock’ (13:21) and God ‘comes’ (theophany) and passes by.
There is one word we should never use in the life of a believer, especially in our relationship with God: ‘enough is enough’. It’s a dangerous word, because it implies that this is enough, that there’s nothing more to it, that there’s nothing more to it. It limits God.
Who am I to limit God? Can I predict God? Can I know the deepest inner thoughts of God? How can I know all of God’s plans? I can’t. Isaiah 55:8-9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and my ways are not your ways. For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than your thoughts.
God is unpredictable, and the gift of this unpredictability to us is ‘newness’. God’s grace, compassion and coming are never the same. As the prophet Jeremiah confessed, it is compassion new every morning, grace new every morning, and coming new every morning: ‘His love, His mercy, new every morning; His faithfulness, everlasting’ (Lamentations 3:23).
God is not boring. A life of faith is never boring, and as you yearn for God’s manifestation, revelation, and presence, may God be your God of freshness.
4.The overwhelming gift of God’s coming
The gift of the Theophany is overwhelming. When we look at the accounts of those who have experienced Theophany, we see three things in common. Transformation, courage, and calling. Abraham, Moses, Elijah, Isaiah, and Paul are all the same.
With the coming of God, their lives change. The way they live, the purpose of their lives changes. They leave home, they go into enemy territory, they do things they didn’t like. It’s courage, and they push through. It’s filled with a calling and a responsibility to do. Moses, Isaiah, Paul, the early church, they all took on huge empires and made fatal cracks in them. It’s a commitment that only those with a calling can make.
It’s why families, nations, and the world stand upright through intercessors who stand before God in the face of overwhelming divine presence. For yourself, for your children, for your church, ask the Lord with the same fervour as Bartimaeus.
‘Lord, I want to see you. Open my eyes to you, to the nation, to its life,’ May this be your ‘unquenchable lo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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