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9. 주일 설교. 출애굽 이야기 18: 고집에 대하여(출7:8~13). 양은익 목사.

 

 

출애굽 이야기 18: 고집에 대하여(출7:8~13)

1.
출애굽 이야기 18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고집에 대하여’입니다. 제목이 어중간합니다.’고집부리지 맙시다’ 아니면 ‘고집의 나쁜 결과’. 이렇게 하면 분명한데, ‘고집에 대하여’ 이러면 고집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애매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고집’ 자체가 애매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집은 있어야 합니까? 없어야 합니까? 고집이 있는 사람은 싫습니까? 좋습니까? 그러면 나는 고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많은 경우 고집이 있는데도 고집이 있는지도 모르구요, 자기 고집은 고집이 아니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니 고집이 얼마나 애매합니까? 고집은 애매합니다.

분명한 것은 고집은 있어야 할 때는 있어야 하고, 없어야 할 때는 없어야 합니다. 고집 없이 무슨 일을 합니까? 고집스럽게 밀어 부쳐야 뭔가를 만들어 내지 물러 터지면 이룰 일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상황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려야 할 때도 있는데 끝까지 ‘아니다’ 그러면서 고집을 내려 놓지 않으면 ‘똥고집’이 되서 지독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쓰고, 고립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우스개 소리로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강 다리 중에 세 번째 놓인 다리가 한남대교입니다. 한남 대교의 첫 번째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제3 한강교입니다. 이 때부터 다리가 계속 놓이게 되는데 그걸 안 누군가가 이름을 바꾸자고 해서 한남대교로 바꿨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 때 윗선의 누군가가 고집해서 ‘제3한강교가 좋지’ 그러면서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잠실대교는 제24한강교가 됐을 거고, 이렇게 되면 집을 알려 줄 때 ‘우리 집은 제24한강교 건너 직진해야 되. 23이 아니고 24야. 25한강교로 가면 안되’. 다행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고집 부리지 않고 결정을 뒤집은 덕분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고집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고집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관건은 고집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고집을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부려야 할 고집은 부리고, 버려야 할 쓸데없는 고집은 버리면 됩니다. 이것만 잘해도 고집이 주는 많은 문제는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립니다. 삶은 변하기에 고집의 내용도 변합니다. 한 때의 좋은 고집도 아집과 독선에 빠져서 ‘옹고집, 똥고집’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고집할 때는 잘 살펴봐야 합니다. 고집은 아닌가? 내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바꿀 것은 없는가? 고칠 것은 없는가? 우리는 고집을 ‘확신’ 내지 ‘소신’이라고 부르지만,
아차 하는 순간 ‘고집’으로 돌변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2.
오늘 ‘고집’이라는 단어를 보는 이유는 13절에 나오는 애굽 왕 바로 때문입니다. 13절 다시 봅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頑惡)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개역개정은 완악頑惡하다로 번역했고, 대부분은 ‘고집 부리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은 harden(굳은, 딱딱한)으로 나옵니다. 바로를 악하게 그리기에는 고집 보다는 ‘성질이 사납고 고집스럽다’는 뜻을 가진 완악이 더 나아 보입니다.

여하튼 바로가 고집이 세고, 그 고집으로 인해서 자신들을 내 보내라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앞으로 일어날 10가지 재앙의 예고편입니다. 열번의 재앙이 전부 이 패턴으로 계속됩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갑니다. 바로의 요청대로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 기적을 애굽의 마술사들이 따라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그들을 제압합니다. 바로는 계속 고집하고, 그렇게 고집부리다가 ‘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만남은 모세와 바로의 두번째 만남입니다. 첫 번째 만남에서 바로의 뜨거운 맛을 본 모세는 의기소침한 상태이고, 바로는 의기양양한 상태입니다. 9절에 보면 바로의 의기양양함이 보입니다. ‘야웨, 너희들의 신이 보냈다면 이적을 보여봐라’. ‘Prove yourselves by working a miracle’(ESV)’기적을 행해서 스스로를 입증해 봐라. 그러면 혹시 아냐? 내가 움직일지’. 이때까지만 해도 바로는 자신만만했습니다.

바로가 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돈있지, 힘있지, 거기다 권세까지 있습니다. 바로는 태양의 아들, 신입니다. 고집이라는 단어를 쓰고있지만 이 정도되면 ‘고집’ 안 가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보통 사람도 고집이 센데 이 정도되면 쎌 수 밖에 없습니다.

고집이 오는 경로는 비슷할 것입니다. 고집은 자만과 독선에서 싹틉니다. 편견도 고집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토양입니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고집이 만들어 집니다. 편견에서 오는 고집은 정말 강합니다. 경험도 무시 못할 고집의 요소입니다. 바로는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의 기적으로 쉽게 포기할 고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네 뱀이 모세와 아론의 뱀한테 잡혀 먹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뜨끔은 했겠지만 내려 놓기에는 멀어 보입니다. 그래서 열번의 재앙이 시작됩니다. 열번의 재앙은 바로 안에 들어 있는 편견과 독선과 오만함과 고집과 경험과 아집을 깨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구절 때문에 원래 바로의 마음은 좋았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바로는 하나님이 시켜서 고집을 피운게 아니라 스스로 고집을 피운 것입니다. 바로는 재앙을 겪을 때마다 ‘나쁜 고집’을 버릴 기회가 있었지만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만 곤욕을 치릅니다.

고집의 결과가 얼마나 뼈아픕니까? 나라 전체가 망가집니다. 바로만 이런 게 아닙니다. 그 유명한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이 사람들의 잘못된 고집으로 수 천만의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대원군의 고집이 상투는 지켰을지 몰라도 나라는 지키지 못합니다. 고집이 뭐라고, 남편의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아내의 고집과 자존심으로 가정도 몰락합니다.

고집은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고집을 ‘우상 숭배’로 여길 정도로 심각하게 봤습니다. 삼상15:23 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자기 멋대로 한 사울을 향해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삼상15:22)는 말을 한 후에 한 말입니다. ‘사무엘이 나무랐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다’.

고집이 왜 우상 숭배입니까? 고집은 에고라는 자기 중심에서 나옵니다. 에고는 자기 주장이 강합니다. 자기 주장이 강하면 자신의 생각과 뜻이 절대화되서 하나님도 끼어들기 힘들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높아 지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되서 고집이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고집을 내려 놓기 힘든 이유입니다. 신자도, 불신자도 고집은 자기 높임이고, 감정의 응집이기에 ‘턱’하고 내려 놓을 수 없습니다. 고집의 끈은 길고 깁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게 ‘고집부림’입니다. 좋은 고집도, 나쁜 고집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변하는 세상에서 안전한 고집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고집도 하나님보다 앞서게 되면 우상이 되서 치고 들어 옵니다.

바로의 고집을 보지만 바로의 고집은 얼마든지 내 고집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의 고집이 뭡니까? 나보다 못한 너희들의 신과 너희 노예들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자만과 오만함,눈 앞에서 자신들의 신으로 숭상하는 뱀이 무참히 삼켜지고, 생명의 근원인 나일강이 핏빛으로 변해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자존심, 재앙으로 인해 눈물 흘리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굳을 대로 굳어 버린 마음, 그 일을 행하고 있는 영적인 실재인 야훼에 대한 거부.

이런게 다 바로의 고집인데, 보십시오. 얼마든지 내 고집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고집’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고집의 강도를 낮출 수 있을까요? 자신만의 원칙과 습관과 고집이 있어도 ‘유연’해 지면 좋겠습니다.

온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순한거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고집을 꺾는게 온유입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면서 양보 한 번 없이 마음이 굳어있으면 ‘온유’ 할 수 없습니다. 마음 풀려 부드러워 질 때 온유해져서 고집으로 일관하지 않고 넉넉해 지게 됩니다. 다른 것도 받아 주고, 말도 들어 주고.

‘부드러움’은 보통 마음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신성’(신의 성품)이 깃든 마음입니다. 에스겔 36:26.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우리 모두의 마음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부드러운 마음이 고집으로 일관하지 않게 해서 평화와 화목을 만들어 주십니다.

고집으로 인한 불화와 고집으로 인한 긴장과 고집이 만들어 내는 상처에서 벗어나는 길은 ‘온유’, 자신의 고집을 꺾는데 있습니다.

3.
처음 시작할 때 ‘고집’의 애매함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고집을 부리면서도 고집인줄도 모르는 게 고집이기에 잘 살펴봐야 합니다. 고집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좋습니다. 그 기준에 따라서 고집할 것은 고집하고, 아닌 것은 버리면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여러 기준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기억하기 쉬우라고 JOY라는 단어를 드리겠습니다. 고집의 기준 첫 번째는 첫 글자 J 입니다. Jesus. 고집이 불가피하다면 이왕이면 예수님이 하신 행동, 말씀,성경의 뜻. 이런 것을 가지고 고집하자는 것입니다. 사랑, 고집해도 됩니다. 고집스럽게 하나님 사랑하고, 고집스럽게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 겸손, 연민, 인내., 전부 가질만한 고집입니다. 고집이 나올 때 ‘Jesus’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래도 됩니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되면 고집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 없는 고집이다 생각하시고 웃으며 버리시기 바랍니다.

고집의 두 번째 기준은 Others, 너, 상대방입니다. 나만 위하는 고집은 유보하는 게 좋습니다. 고집은 내가 세운 잣대의 성벽이기 때문에 ‘나’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이게 허물어져야 너를 위할 수 있게 됩니다. 고집의 기준을 나로 삼지 말고 너로 삼아 고집해 보십시오.어떤 게 있을까요? 좋은 일 많이 생길 것입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바로의 고집을 보면서 고집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고집은 삶의 방향을 바꿀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버려야 하는 고집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살펴 보시고 버리시는 유쾌함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odus Story 18: On Stubbornness (Exodus 7:8-13)
by Pastor Eun Ick Yang

1.
This is the 18th sermon time of the Exodus story. The title of today’s message is “On Stubbornness. The title is ambiguous: ‘Don’t be stubborn’ or ‘Bad consequences of stubbornness’. That’s clear, but with “On Stubbornness,” it’s unclear whether we’re being told to be stubborn or not. We did this because ‘stubbornness’ itself is ambiguous.

What do you think, should you be stubborn or shouldn’t you be stubborn, do you hate people who are stubborn or do you like people who are stubborn, and then do I have stubbornness or don’t I have stubbornness, and a lot of times people have stubbornness and they don’t even know they have stubbornness, and they don’t think their stubbornness is stubbornness, so how ambiguous is stubbornness? Stubbornness is ambiguous.

What’s clear is that stubbornness is there when it should be, and it’s not there when it shouldn’t be. What do you do without stubbornness? You have to be stubborn to make something happen, and if you back down, you’re not going to get anything done. On the other hand, sometimes things change, times change, and you have to let go of an idea that you had, and if you don’t say “no” and let go of your stubbornness, you’re going to be labeled “shitty stubborn,” and you’re going to be isolated.

I once heard a story that sounded ridiculous. The Hannam Bridge is the third bridge on the Han River. Do you know what the first name of Hannam Bridge was? It’s the third Han River Bridge. From that point on, the bridges kept being built, and someone said, “Let’s change the name,” so they changed it to Hannam Bridge. What would have happened if someone at the top had insisted and said, “I like the 3rd Han River Bridge,” and didn’t change it? Jamsil Bridge would have become the 24th Han River Bridge, and then when you show your house, you can say, “My house is across the 24th Han River Bridge. It’s 24, not 23. Don’t go to 25th Han River Bridge. Luckily, that didn’t happen because I was stubborn enough to reverse my decision.

Stubbornness is necessary, and no one is stubborn. The key is how you handle it. It’s not hard to figure out how to handle your stubbornness: use it when it’s needed and discard it when it’s unnecessary. If you do this, many of the problems that stubbornness causes will disappear like a crab out of water. As life changes, so does the content of your stubbornness. What was once a good stubbornness can become stubbornness and self-righteousness.

When you’re stubborn about something, take a good look at it. Is it stubbornness? Am I just talking about myself? Is there nothing to change? Is there nothing to fix? We call stubbornness “conviction” or “conviction”,
but we have to be careful because it can quickly turn into stubbornness.

2.
The reason we see the word ‘stubborn’ today is because of Pharaoh, the king of Egypt, in verse 13. Look again at verse 13: ‘But Pharaoh’s heart was hard(頑惡), and he would not listen to them.
as the LORD had said’. The King James Version translates it as stubborn 頑惡, and most translate it as stubbornness. The English Bible translates it as harden, hard. To paint Pharaoh as evil, I think wicked is a better word than stubborn, which means “fierce in temper, obstinate.

In any case, Pharaoh is stubborn, and because of his stubbornness, he’s not listening to Moses and Aaron when they tell him to let them go. Our text is a foreshadowing of the ten plagues to come. All ten plagues continue in this pattern. Moses and Aaron go to Pharaoh. At Pharaoh’s request, they perform a miracle, which is copied by the magicians of Egypt. Moses and Aaron subdue them. Pharaoh insists, and because of his stubbornness, he is “ruined.

The encounter in today’s text is the second meeting between Moses and Pharaoh. In the first encounter, Moses was discouraged by Pharaoh’s hot temper, and Pharaoh was encouraged. In verse 9, we see Pharaoh’s cheerfulness: ‘Yahweh, if your god has sent you, show me the signs. ‘Prove yourselves by working a miracle’ (ESV) ‘Prove yourselves by working a miracle, and then, just maybe, I’ll move’. Up until this point, Pharaoh was confident.

There’s no reason for Pharaoh to be cocky. He’s got money, he’s got power, and he’s got authority. He’s a god, the son of the sun. I’m using the word stubborn, but who doesn’t have stubbornness at this level? Even the average person is stubborn, but at this level, you can’t help but be stubborn.

The path to stubbornness is probably similar: stubbornness springs from pride and self-righteousness. Prejudice is also an important soil for stubbornness: being prejudiced creates stubbornness. The stubbornness that comes from prejudice is really strong. Experience is also a factor in stubbornness that cannot be ignored. Baro has all of them. It’s just that it’s not the kind of stubbornness that’s easily given up by a single miracle.

When they see their snakes eaten by Moses and Aaron’s snakes, they may have gotten a kick out of it, but it’s a long way from letting go. So the ten plagues begin. The ten plagues are a process of breaking down the prejudice, the self-righteousness, the arrogance, the stubbornness, the inexperience, and the stubbornness within Pharaoh.

Because it says that God made Pharaoh’s heart hard, don’t be misled into thinking that Pharaoh’s heart was originally good and God made it that way. Pharaoh was not stubborn because God made him, he was stubborn because he chose to be. With each plague, Pharaoh has the opportunity to let go of his “bad stubbornness,” but he doesn’t, and it’s the Egyptians who suffer, not him.

The consequences of stubbornness are painful: the entire nation is destroyed. It’s not just Barack Obama; it’s Hitler, Stalin, and Mao Tse-tung. Tens of millions of people die because of the misguided stubbornness of these men. Their stubbornness may have saved them, but it didn’t save their country. Speaking of stubbornness, families also fall because of a husband’s stubbornness and pride, and a wife’s stubbornness and pride.

Stubbornness is no laughing matter; the prophet Samuel took it so seriously that he considered it “idolatry. 1 Sam 15:23. This is after the prophet Samuel rebuked Saul for his selfishness in the war against Amalek, saying, ‘Obedience is better than sacrifice’ (1 Sam.15:22). ‘Samuel rebuked him. To rebel is like the sin of divination, and to be stubborn is like the sin of serving idols’.

Why is stubbornness idolatry? Stubbornness comes from the self-center called the ego. The ego is assertive. When you are assertive, you absolutize your thoughts and will, making it difficult for God to intervene. You’re exalting yourself above God, and that’s when stubbornness becomes idolatry because you’re serving an idol.

This is why it’s so hard to let go of stubbornness. For believers and unbelievers alike, stubbornness is self-exaltation, it’s a clump of emotions, and you can’t put it down with a ‘snap’. The cord of stubbornness is long, long, long. If it can be avoided, it should be avoided. Good stubbornness is dangerous, as is bad stubbornness. Few things are safe in a changing world, and any stubbornness that gets ahead of God becomes an idol and creeps in.

We see the stubbornness of Pharaoh, but Pharaoh’s stubbornness can become my stubbornness. What is Pharaoh’s stubbornness? The pride and arrogance that says I have no reason to listen to your gods and your slaves, who are lesser than me; the pride that says I cannot acknowledge the serpents they worship as their gods when they are devoured before my eyes; the pride that says I cannot acknowledge the Nile, the source of life, when it turns to blood; the pride that turns a blind eye to the suffering of those who weep because of the plagues.
A hardened heart, a rejection of Yahweh, the spiritual reality that is doing the work.

This is all the stubbornness of Pharaoh, and look. This is what my stubbornness looks like, and this is what “stubbornness” looks like in many people. How would you like to be less stubborn? How would you like to be more ‘flexible’ with your own principles and habits and stubbornness?

What do you think meekness is? Meekness is being gentle, but that’s not all. Meekness is being stubborn. You can’t be ‘meek’ when you’re hardened, insisting on getting your own way and never giving in. You become meek when you let go and soften, so you’re less stubborn and more generous. You accept others and listen to them.

‘Tenderness’ is not an ordinary heart; it is a heart imbued with ‘divinity’ (the character of God) given by the Holy Spirit. Ezekiel 36:26: ‘I will give you a new heart and put a new spirit within you, and I will give you a new mind.
I will take away the heart of stone from your body and give you a heart of flesh’ May this be the heart of all of us. The tender heart given by the Holy Spirit creates peace and harmony by not being inconsistent with stubbornness.

The way out of the discord caused by stubbornness, the tension caused by stubbornness, and the hurt that stubbornness creates, is through ‘meekness’, the breaking of one’s own stubbornness. Translated with www.DeepL.com/Translator (free version)

3.
We talked about the ambiguity of “stubbornness” at the beginning. You can be stubborn and not even realize you’re stubborn, so you have to be careful. It’s good to have criteria for stubbornness, so that you can be more flexible in what you stick to and what you don’t.

You can think of a lot of criteria, but I’m going to give you the word JOY to make it easy to remember. Criteria number one for stubbornness is the first letter J. Jesus. If you’re going to be stubborn, let’s start with what Jesus did, what he said, and what the Bible says. That’s what I’m saying, let’s be stubborn with these things. Love, it’s okay to be stubborn. Stubbornly loving God, stubbornly loving our neighbors. Forgiveness, humility, compassion, patience, all good things to have. When you’re stubborn, think of Jesus, my Lord and my God. Is it okay to do this? Wouldn’t you be ashamed? Then you can be stubborn. Otherwise, think of it as a useless stubbornness and laugh it off.

The second criterion for stubbornness is Others, you, the other person. It’s best to reserve stubbornness for yourself. Stubbornness is an excessive attachment to “me” because it’s a rampart of standards I’ve built. It needs to be torn down so you can be there for you. Don’t make me the standard of your stubbornness, make you the standard of your stubbornness.Guess what? A lot of good things will come of it. Let me close by saying that watching Pharaoh’s stubbornness got me thinking about stubbornness.

Stubbornness has such power that it can change the direction of your life.Stubbornness that needs to be discarded is good to discard. I hope you have the pleasure of examining and discarding them.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