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예루살렘(스가랴 14:8~11)
스가랴는 오늘 본문 (스가랴 14장) 말씀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결정짓는 세 가지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것을 예언합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에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전쟁에 대한 예언이고, 그리고 이 전쟁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인데요, 구체적으로는 감람산에서 발생할 것이라는 그런 예언입니다. 3절, 4절에 보시면 그때 여호와께서 나가사,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전쟁에 감람산에 나타나실 것이다 하는 예언입니다.
감람산(올리브산)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산으로서, 성전을 마주하고 있는 그런 산입니다. 사진에 나와 있는 감람산(橄欖山) 사진 은 동부 예루살렘 올드 시티의 오른쪽 산 능선입니다.예루살렘 동쪽에 있으며 해발 815m이며, 고대부터 감람나무가 무성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 동편 산에는 이러한 감람나무가 무성했기에 산 이름도 감람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메시야는 감람산에서 오실 것이고, 메시야가 오실 때 이는 죽은 자들의 부활이 감람산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감람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주 수많은 무덤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진에서 보시면, 약간 하얗게 이렇게 구조물들이 수없이 등장하는데요, 이곳이 무덤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또 이 글의 저자인 스가랴 선지자와, 또 학개 선지자, 말라기 선지자의 무덤도 이곳에 있는 것으로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감람산은 후일 예수님이 기도의 장소로 애용하셨던 그런 장소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과의 아주 치열한(버거운) 그리고 피곤한 그런 전투를 치르시고 난 뒤에는 반드시 감람산에 오셔서 기도드리시면서 힘을 회복하셨던 곳이 이 감람산, 올리브 산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목요일 밤에, 이곳(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아주 치열한 기도의 싸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아주 간절한 기도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드리셨습니다. 그 겟세마네 동산도 감람산에 있습니다. 자, 이것이(예수님의 간절한 기도가) 바로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쟁의 첫 단추가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순종의 결단을 하지 않으시고, 또 십자가에 쓴 잔을 거부하시는 그런 결정을 하셨더라면, 아마 여전히 우리는 사탄의 지배 아래, 또 죄와 저주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전쟁에 참전하시고, 마침내 승리하십니다. 이 잔을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셨지만, 그러나 아버지 뜻대로 하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이 전쟁을 승리하셨고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고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참된 평화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도시의 뜻 자체가 ‘평화의 도성’이라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전쟁에 승리함으로 인해서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가 된 것입니다. 어떤 평화는 상호 협상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평화는 한쪽이 반드시 멸절해야 항복 문서를 받아야 그 이루어지는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은 한쪽이 반드시 멸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애매한 어떤 서로 함께하는 공존은 있을 수가 없는 이런 것이 바로 영적인 전쟁이고, 사탄과의 어떤 그런 싸움이 되는 것인데요, 예수님께서 바로 이 전쟁에서 사탄의 머리를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뱀(사탄)의 후손의 머리를 밟아 버리시는 승리를 일구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일이다 하는 예언입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에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의 생수가 솟아날 것이라는 예언을 주고 있습니다. 8절 말씀에 보시면, 그날의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이 동해라고 하는 것은 뭐 갈릴리나 요단강 쪽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서해는 지중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동서로 갈라질 것이다. 생수에 대한 예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유명한 생수는 초정 약수가 있죠. 세종대왕의 눈병을 고치 초정 약수가 있습니다.그 다음에, 또 제주도에 삼다수가 있고, 또 프랑스의 에비앙 알프스가 있습니다.
초정 약수나 삼다수나 에비앙 알프스 모두 다 소위 말하는 그 광천수라고 그래서 미네랄이 풍부해서, 몸에 좋은 그래서 그 물을 먹으면 이제 건강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 생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생수, 그런데 이런 생수가 어디서 나오냐면, 예루살렘에서 솟아 나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슷한 환상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에스겔의 환상 유명한 환상입니다. 생수의 강 환상입니다. 에스겔 47장 1절에 보시면,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나왔다 성전에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재단 쪽으로 해서 이렇게 흘러가는데 가면서
이 물이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다 이렇게 그 속에 푹 담글 헤엄칠 정도의 그런 강물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그곳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면 에스겔 47장 9절에 보세요. 9절에 보시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힘이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에 이르는 각처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그야말로 생명의 물입니다. 이 성전의 성소의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에스겔) 47장 12절에 보면,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모든 유실수에, 그 열매가 끊이지 않는 풍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12절)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 나무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이것은 풍요함, 그래서 이 성전에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과 풍요의 역사가 일어난다 라고 하는 그 에스겔 서의 환상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어디냐면, 바로 성소이고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정말 풀 한 포기 다 없이 뽑히고, 또 돌 위에 돌 하나 세워지지 않고, 파괴된, 철저하게 폐허가 되고, 또 그 후에 잡초로 무성한 그런 폐허였지만, 그날이 이르면 하나님에 의해서 이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회복되는데, 그곳은 바로 생명과 또 풍요를 가져다주는 생명의 물이 솟아나는 그런 도시가 될 것이다 하는 그런 예언입니다. 비전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장차 임하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는 말씀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는 예루살렘에서 솟아난다고 그랬는데요, 그러니까 이 예루살렘은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런 물이 솟아나는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이 물을 마시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물이 생수입니다.성경의 생수는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보시면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여러분! 생수 그러면은 성령을 예표, 또는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생수가 급 솟아 나오는 것인데 이것이 성령이라고 하는 생수의 강을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흘러들어가는 이런 성령을 예표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생수가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의 삶에 강처럼 흘러내리는 그런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두 번째 일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초막절을 지키라는 예언입니다. 16절 말씀에 보시면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초막절은 왜 여기서 초막절이 등장하느냐 하면요? 초막절은 유대인들의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유월절이 있고, 또 칠칠절 이라는 오순절, 50일이 지난 뒤에 그 칠칠절, 오순절이 있고, 그 다음이 이 장막절로도 알려지고 수장절로도 알려진 이 초막절이 있습니다.
3대 중요한 이스라엘의 절기(유월절, 칠칠절 이라는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이때가 되면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고 있는 그런 관례입니다만 과일 각종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습니다. 그래서 이 초막, 히브리어는 쑥꽃(Sukkot) 이라 그래요 쑥꽃 이라고 하였고, 밑에 쓰여 진 영어를 보시면 이제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이다. 이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과일을 가지고 초막을 이렇게 꾸리고서 이제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가족들이 함께 살면서 광야에서 텐트를 치고 살았던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그 행사 기간 동안, 일주일씩, 그 온 가족이 장막절, 초막절에, 그 텐트에 살면서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들께서 자녀들에게… ‘아들아, 딸아, 우리가 과거에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단다.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그 광야에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그렇게 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하셨단다..’ 그렇게 지내온 전통입니다.
유월절 절기는 그 무교병, 떡을 먹으면서 예를 들어서, 또 양의 피를 뿌리면서, 이 하나님의 그 구원의 역사를 아이들한테 다 생생하게 체험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걸 매 매년 그렇게 하니까, 어떤 신앙의 전통도 전통이지만, 얼마나 그 유대인들의 가족의 결속력이라고 하는 것이 신앙에서 강력해졌을 것입니다.우리나라도 법으로 한 3일간은 이런 초막절을 지키는 게, 이런 제도를 딱 내걸고 선거에 나오면 우리가 찍어줄 텐데 말이에요. 얼마나 여러분 좋은 발상이에요. 이스라엘 백성의 참 부러운 그런 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초막절이 있는 달은 7월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달력을 잠깐 이렇게 좀 떠올려보면, 이스라엘의 달력으로는 종교력으로 7월입니다.
종교력은 민간 달력과, 다 다릅니다. 근데 종교력으로 7월이 티쓰리 월이라고 그러고, 그 다음에 종교력으로 원년을 닛사 월이라고 그럽니다. 그게 이제 유월절이 있는 달입니다. 유월절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그날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는 시작 되었습니다. 이제 이게 (이제) 종교력이고, 이제 티스리 월은 7월인데요.. 이때가 민간 달력으로는 1월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력과 민간 달력은 6개월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이때 하는 일이 뭐냐 하면, 티스리 월에 첫째 날에 나팔을 붑니다. 양각 나팔로 이렇게 나팔을 불면, 이것이 10년을 새로운 날을 주셨다 하고 해서 그 절기를 나팔절이라 그럽니다. 그 다음에 티스리 월에 10일이 되면 대속제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이 예복을 갖추고서 그 지성소에 1년에 한 번 딱 들어가는 그래서 1년간의 이스라엘의 죄를 다 씻겨주는 용서해주는 대속제제일이 있고, 그것을 이어서 15일부터 일주일간 초막절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초막절은 초막절 하나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이걸 다 종합해서, 이제 새로운 날이 되었고, 죄를 용서받았으니 이제 우리가 초막에서 안식을 누리자는 그런 절기입니다. 유월절이 죄로부터 해방을 기념한다면, 초막절은 안식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참된 평화와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이 안식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이제 이런 것들이 일어나는 예루살렘이 중요한 도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그랬습니다. 첫 번째는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 승리하는 일이고, 또 두 번째는 그 승리의 결과물로 영원한 생명 생명수가 주어지고, 마지막, 세 번째는 초막절입니다. 참된 안식이 주어지는 어찌 보면 죄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들이 다 회복이 되는 예루살렘의 재건이고, 그리고 예루살렘의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스가랴 선지자가 그의 예언의 마지막, 14장으로 삼아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스가랴의 메시지는 두 가지 강조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스가랴의 방식(강조점)입니다. 눈앞에 성전이나 성벽이 참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작아 보이지만, 그것을 보지 말고, 먼 훗날 이루어질 온전한 예루살렘 (예루살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림을 보라 그래서 환상이 여덟(8) 개나 등장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여러분! 비전이라고 하는 것, 환상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비전은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어떤 명분이라든지, 그 동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은 다릅니다. 멀리 비전이 없이 그냥 일하게 되면, 아이고, 이거 예루살렘 이거 꼭 재건해야 돼? 그것보다 급한 게 있는데, 힘든데… 다 그러지만, 멀리 그 비전을 그림을 가지고 이 일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지치지 않는 것이고, 거기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는 이런 어떤 비전을 보여줄 때에 좋은 지도자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스가랴 선지자를 포함하여, 많은 선지자들은 이와 같은 비전을 잘 보여준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주님, 예수님께서도 4복음서를 통해서, 크리스천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셨고, 실천하셨으며, 좋은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 스가랴의 방식은 물리적인 재건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을 재건하자는 것이 이 스가랴의 강조점입니다. 눈앞에 역사적인 이런 것도 물론 하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참 성전이 재건돼야 됩니다. 그와 같은 성전을 우리가 지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승리와 생명(생수)과 안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러분 재건해야 될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힘겹고 어렵고 또 이렇게 고통당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과연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어디서 무너져 내렸는지를 먼저 우리가 살펴보아야 되고, 하나님이 떠나간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떠나가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약해진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어떤 교통의 끈이 약해진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이 사실 지겨워지고 힘들어지고 무너져 내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오시면, 승리가 있는 것이고, 생수가 솟아나고,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것을 재건하는 이런 성소, 참된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가장 큰 과제요, 또 목표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안에, 또 여러분들의 가정 안에, 이런 성령의 생수가 흘러넘치고,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는 그래서 성전이 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여러분! 이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을 회복해야 되고, 평등을 회복해야 되고, 좋은 슬로건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 땅을 통치하시는 그 날이 올 때에 이 땅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예루살렘, 하나님의 나라, 온전한 천국을 바라보면서 더욱 더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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