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12. 주일 말씀. 불안한 시대에 읽는 룻기 10: 보람찬 결말(룻4:11~17). 양은익 목사.

보람찬 결말(룻4:11~17)

겨울 초입에 룻기서를 시작했는데 겨울을 마치면서 마치게 됐습니다. 지금 룻기서는 봄이 오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룻기의 시작은 추웠습니다. 슬펐습니다. 장례식만 세 번 치룹니다. 아버지 한번, 아들 두 번.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습니다.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이들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먼 것처럼 보였던 구원이 일어납니다. 장례식이 결혼식으로 바뀝니다(13절) 축복이 쏟아집니다. ‘후사가 생겨 라헬과 레아같은 위대한 어머니가 되시라’(11절). 축복 때문인지 불임이었던 룻이 임신을 하더니 아들을 낳습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보아스도 안고, 룻도 한번 안고, 나오미도 안고. 나오미가 가장 감격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네 할머니들 처럼 나오미도 아기를 품에 품고 정성껏 기르기 시작합니다(16절)

서러움과 원망이 많았는데 이제 뿌듯함과 감사가 넘쳐 납니다. 절간 같던 집안에 간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퍼집니다. 결말이 좋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sad ending이 아니고, happy ending 입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보람찬 결말로 룻기서는 끝납니다. 나오미, 룻, 보아스 전부 자랑할만한 ‘생의 결말’을 만들어 냅니다.

룻기서의 결말을 보면서 두 가지 묵상하겠습니다. 룻기서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보람찬 결말이 무엇인가? 룻기서의 결말이 보람찬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들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하나하고 또 하나는 이들이 미래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질만한 결말을 남깁니다.

1. 무너지지 마라.
(1) 첫 번째 묵상은 ‘무너지지 마라’입니다. 룻기서의 결말이 주는 중요한 도전입니다. 좋은 결말, 부끄럽지 않은 결말, 자부심을 가질만한 결말을 얻으려면 무너지면 안됩니다. 그래야 보람찬 결말, 누릴 수 있습니다. 죽도록 분하고, 죽도록 힘들고, 죽도록 슬프면 장사 없습니다. 무너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무너집니까? 성품이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지고, 믿음이 무너지고, 의지가 무너집니다. 무너지면 좌절하고, 망가집니다.

죽을 일 앞에 사람은 둘로 나뉩니다. 이기는 사람, 무너지는 사람. 이기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룻기에서 본 나오미, 룻, 보아스는 공히 다시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은 것입니다.

나오미가 얼마나 위험했습니까? 나는 나오미, 기쁜자가 아니다. 나는 마라다. 나는 쓴자다. 전능자가 나를 비게 만들었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혔다. 룻은 남편 죽고 홀로 된 순간부터 위험했습니다. 시아버지 없는 시댁은 가난하기 짝이 없고, 나오미 따라 남의 나라 왔지만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방에 남자 늑대들이 우글 거립니다. 떨어진 이삭 줍고 사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시어머니가 시켜서 야밤에 보아스에게 가지만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보아스도 다를바 없습니다. 지금은 유력한자로, 성공한자로 살지만 그의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창녀였습니다. 얼마나 쓰라렸겠습니까?

하지만 나오미, 룻, 보아스 모두 무너지지 않고 이겨냅니다. 성품도, 인격도 안 무너집니다. 대신 서로 의지합니다. 환대합니다. 동행합니다. 선대합니다. 나오미는 동병상련의 룻을 선대합니다. 룻을 위합니다(3:1). 롯은 홀로된 가난한 어머니를 존중하고, 환대합니다. 항상 함께 합니다. 순종하고, 섬깁니다. 보아스는 자기 어머니의 아픈 삶을 마음에 품고 똑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룻과 나오미를 선대합니다. 룻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합니다.

김남조 시인은 ‘생명’이라는 시에서 ‘친구’를 말합니다.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생명, 부분) 이 시를 보면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는 좋은 친구간입니다. 서로의 일그러진 것, 상한 것을 품어주면서 무너지지 않고 일어섭니다. 이보다 보람된 일이 어디있습니까? 서로에게 대단히 보람찬 일을 한 것입니다.

(2) 세한도(歲寒圖): 추운 시절에 그린 다짐
그림 한 장 보겠습니다. 세한도입니다. 1844년에 그린 추사 김정희의 그림입니다. 세한도는 추운(寒) 시절(歲)에 그린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되 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변함없이 자신을 섬기는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입니다.

풍경은 추운 겨울입니다. 창문 없이 입구만 있는 집 하나하고, 심하게 구부러진 소나무 한 그루, 차면 부러질 것 같은 잣나무 세 그루가 그림의 전부입니다. 척박하고, 쓸쓸합니다. 추사의 마음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추사는 아내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었지만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마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소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볼품없이 구부러져 있지만 겨울에도 시들지 않습니다. 자신도 시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푸르름으로 봄을 맞이 할 것이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天敵은 나’라고 하는데, ‘자신’을 잘 이기고, ’마음’ 잘 먹으면 추운 시절도 무너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2. 미래를 열라.
(1 )두 번째 묵상입니다. 미래를 열라입니다. 미래는 닫히면 안됩니다. 미래는 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엽니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엽니다. 무너지면 미래도 무너집니다. 룻기서의 결말이 보람찬 이유는 무너지지 않은 사람들이 미래를 열었다는데 있습니다. 자부심 넘치는 결말입니다. 나오미도 룻도 미래는 커녕 한 치 앞도 내다 보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인맥도, 돈도, 남편도 없습니다. 보아스는 좀 나은 편이지만 뛰어 봐야 벼룩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미래를 엽니다.

룻기서의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망해가는 시대, 희망 없는 시대, 자기만 아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등장한 사람이 나오미고, 룻이고, 보아스입니다. 룻기서는 효도책도 아니고 연애책도 아닙니다. 어둡고 희망없는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자기만 아는 시대인데 너무 다른 사람들이 보입니다. 손해 보면 안되는데 손해를 봅니다. 나올게 없는데 함께 합니다. 떠나야 되는데 안 떠납니다. 서로가 선대하고, 동행하고, 환대하고, 헌신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바보짓이고, 호구짓인데 그렇게 합니다. 왜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절실한, 남들이 하지 못하는 호구짓을 합니다. 희안하고,희귀합니다. 하나님이 이 희귀한 사랑과 희귀한 헌신과 희귀한 환대를 버리지 않고 쓰십니다. 16절에 보면 나오미가 룻이 낳은 아들을 품에 안고 감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사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열리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아이 이름이 오벳인데,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2) 미래는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세상이 사사시대 같을수록 밝은 미래를 열어야 합니다. 누가 미래를 열겠습니까?  룻기서가 보여준 메세지가 있지 않습니까? 미래는 호구짓 하는 사람들이 엽니다.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 유불리만 따지는 사람, 계산에 밝은 사람은 미래를 열지 못합니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나무를 심겠다’. 잘 알려진 말입니다. 이 말을 누가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스피노자 설도 있고, 마틴 루터 설도 있습니다. 누가했건 미래를 원하는  사람은 새겨 들어야 할 말입니다.  내일 종말이 와서 끝나는데 사과나무를 심어서 뭐합니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처신할 것입니다. ‘다 끝났어. 죽을날 기다려. 더 뭘해, 살던 대로 살다가!’ 하지만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상황이 아무리 안 좋아도 내가 아닌, 앞으로 살아갈 이들을 위해 희망 버리지 말고, 사랑을 품고 무엇인가를 심으라는 것입니다.

앞서 가는 자의 가장 보람찬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미래를 열어 주는 것입니다. 출세시키는 미래는 약합니다.  먹고 살게 만드는 미래는 너무 뻔합니다. 그런 미래만 추구하다 세상이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사랑하고, 환대하고, 동행하며, 아픈 이들을 껴안아주는 그런 미래의 삶을 열어 줘야 합니다. 정도를 넘어선 버린 적대와 비난으로 내리막 길로 질주하는 한국 사회를 위한 최고의 처방이고, 최고의 미래입니다. 사과 나무를 오래 전에 심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때 심지 못했으면 늦었다 포기하지 말고, 지금 심으면 됩니다. 헌신의 나무, 사랑의 나무,믿음의 나무, 매일 매일 성실하게 심어서 자녀든,  남편이든, 아내든, 누구든,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미래를 만들어 주십시오.

흔히 하는 말 있습니다. ‘나 하나 변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나무 한그루 심어서 언제 씁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은 스스로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택도 없다 생각하면 그만 두시고, 할만 하다 생각하시면 심으십시오. 룻기서의 말씀에 의하면 심을만 합니다. 호구짓 처럼 보여도인내와 존중과 환대와 헌신이 한 사람의 새로운  미래를 만듭니다. 그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삶의 난관 앞에 우리도 ① 무너지지 마십시다. ② 선한 미래를 만들어 가십시다. 이런 보람찬 결말이 여러분의 인생이 되기를 바라겠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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