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오미가 달라졌어요(룻2:17~23)
1.
천양희 시인(1942~)의 시 보면서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웃음과 울음이 같은 음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색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음색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 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 빛이란 걸 알고 난 뒤 내 독창이 달라졌다. 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나는 골똘해졌네.(천양희, 생각이 달라졌다, 부분)
굴곡 많은 삶을 산 시인의 체험입니다. 시인은 어둠과 울음이 끔찍하게 싫었는데 살다 알게 됩니다. ‘어둠을 통해서 빛이 오고, 울음을 지나서 웃음이 온다. 어둠이 없으면 빛도 없다. 울음이 없으면 웃음도 없다. 어둠도 빛만큼 중요하고, 울음도 웃음만큼 중요하다’ 어둠과 울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아는 것 같지만 몰랐고, 알았어도 잘 받아내지 못한 사실을 밝혀주는 귀한 시 입니다.
2. 불씨.
오늘 본문의 나오미에게서 이 모습이 보입니다. 나오미에게 다시 빛이 비치고, 웃음이 보입니다. 어둠을 지불하고 얻은 빛이고, 울음을 지불하고 터진 웃음입니다. 힘든 삶을 살면서 소진됐던 나오미입니다. 참았지만 힘들었습니다. 버거웠고, 서러웠습니다. 결국 초라하게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폭발합니다. 나는 ‘나오미’, ’기쁜자’가 아니다. 나는 ‘마라’, ‘쓴자’다. 짙은 어둠과 우울입니다. 하지만, 이랬던 나오미에게 설렘이 일어납니다. 질문이 터져 나옵니다. 사라진줄 알았던 축복의 말을 쏟아냅니다. 희망이 느껴집니다. 꺼진줄 알았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보기 좋습니다.‘나오미가 달라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미를 타오르게 만든 불씨가 있습니다. 두 개입니다. ‘먹는 것’과 ‘사람’입니다. 둘 다 나오미와 룻에게 절실한 것들인데, 여기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1) 불씨 1: 식량
첫 번째 불씨는 식량입니다. 먹을 거 구하러 갔던 룻이 저녁이 되서 집에 돌아옵니다. 룻을 밖으로 내 보내고 나오미가 노심초사, 걱정하면서 기다렸을텐데 ‘어머니’ 하면서 들어오는 룻의 목소리가 들떠있습니다. 식량을 들고 오는데 ‘보리 한 에바’(17절), 한 눈에 봐도 많은 양입니다.
한 에바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40Kg에서 20Kg까지 다양한 설이 있는데, 최소한 20Kg은 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트에서 20Kg 보셨겠지만 작은 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상당 기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인데, 처음 나간 이삭줍기에서 엄청난 양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많은 식량을 보면서 나오미가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나오미는 금새 알아 차립니다. ‘누가 도와 줬구나’. 그래서 19절에서 말합니다. ‘너를 돌 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한다’. ‘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살 수 있겠구나’. 꺼져가던 불씨가 살아나고 나오미가 밝아집니다.
(2) 불씨 2: 사람
두 번째 불씨는 사람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어디서 이삭을 주웠니, 어디서 일했니? 흥분이 느껴집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뒤부터 말 수가 적어졌을텐데 갑자기 말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룻이 이름을 알려 줍니다. 19절.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어머니’ 보아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나오미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을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룻에게 말합니다. ‘얘, 네가 만난 사람, 너를 돌봐준 그 유력한 사람이 누군지 아니?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다. 친척이다.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한 사람이다’(20절) ‘기업’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이고, ‘무르다’는 이전 상태,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입니다. 재산을 잃어 버리면 재산 찾아 주고, 노예로 팔리면 다시 사와 구속해 주는 사람이 ‘기업 무를자’들입니다.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보아스가 이런 친족 중 한 사람입니다.
룻이 그런 사람의 밭으로 갔고, 거기서 보아스를 만났고, 보아스의 환대를 받아, 보리 한 에바를 품에 안고 돌아왔습니다. 우연이라 하지만 우연이라 하기에는 이상한 일을 보면서 보리 한 에바로 뜨거워졌던 나오미의 마음이 보아스로 인해 한번 더 뜨거워집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전능자의 자비와 한결 같은 사랑이 만들어낸 일이다’
지금 변한 것은 없습니다. 변한 것은 보리 한 에바가 생긴 것하고, 보아스라는 친족이 룻에게 친절을 베푼게 전부입니다.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도 모르고, 보아스가 큰 재산을 안겨준 것도 아닙니다. 시큰둥하게 반응해도 뭐라 할 수 없습니다. ‘얘, 이거 가지고 얼마나 먹겠니! 그 사람이 무슨 힘을 써 주겠니?’ 이래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크게, 선하게, 아름답게 반응합니다. 작은 끈이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뜨겁게 느낍니다. 나오미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3. 달라짐.
두 가지 달라짐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입니다.
(1) 생각의 달라짐
첫 번째 달라짐은 나오미의 생각과 나오미의 인식입니다. 나오미의 생각이 변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집니다. 나오미는 힘든 세월 지나면서 하나님이 힘들었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터져 나온 말, 우리가 봤습니다. 1:20. 전능자가 나를 괴롭혔다. 전능자가 나를 텅비게 만들었다, 전능자가 나를 불행하게 했다(1:20,21) 하나님에 대한 불화가 깊습니다.
이런 나오미의 입에서 복 얘기가 자꾸 나오더니 20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여기서 ‘그’를 보아스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여호와, 전능자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그가= 여호와가’ ‘살아 있는 자와 =나오미와 룻’, ‘죽은 자=죽은 그들의 남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괴롭히고, 불행을 주는 하나님에서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으로 180도 달라집니다. 대단한 물주를 잡은 것도 아니고,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소진했던 그 영혼에 작은 빛이 들어오면서 신실하신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이 인식되면서 달라진 것입니다. 놓쳤던 전능자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어인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주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내 판단과 생각과 삶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낫다. 하나님이 더 쎄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곁에 계신다.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들어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게 믿음이고, 믿음의 삶입니다. 나오미에게 하나님이 主語인 믿음이 다시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구나!가장 중요한 달라짐이 나오미에게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달라지라는 것이고, 수준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높이십시다. 높여야 될 것, 달라져야 할 것 많습니다. 생각, 말, 행동, 성품.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부정이 많았다면 긍정으로, 덤덤함에서 사랑으로, 관심 밖에서 깊은 관심으로, 수단에서 목적으로, 수식어에서 주어로. 달라져야 합니다. 달라짐을 경험하는 한 해,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2) 감정의 달라짐.
나오미의 달라짐 두 번째는 감정입니다. 나오미의 감정이 달라집니다. 앞에서 봤지만 상황이 변한 것은 별반 없습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감정은 달라집니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처짐에서 설렘으로, 냉대에서 환대로 변합니다. 스스로를 쓴자로 여기면서 힘들어 하던 사람인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향해 복을 빌어 줍니다. 사라졌던 ‘은혜’(자비, 선대, 긍휼)라는 말을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나오미의 가슴 한쪽에서 불붙기 시작한 불씨가 만들어낸 변화입니다. 나오미가 선하게, 편하게, 아름답게 달라졌어요.
感情은 일어나는 일에 대한 마음의 해석인데, 나오미가 해석을 잘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면서 해석에 빛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거야’. ‘하나님이 은혜 베풀실거야’ 아멘. 평안하고, 잔잔합니다.
감정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감정이 어두우면 어둠이 오고, 밝으면 밝음이 옵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잘 다루지 못하면 분노, 의심, 억울함, 두려움, 수치 같은 것들이 사랑, 우정, 배려, 화해, 믿음 같은 선한 가치들을 죽여 버립니다. 지나간 자리에 선혈이 낭자해 집니다. 뒤돌아보면 ‘그때 왜 그렇게 밖에 못했나’, 후회막급할 뿐입니다. 감정은 지금 다스려야 하고, 지금 달라져야 합니다. 삶이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도, 해석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면 많이 달라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 있는 가장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렘29:11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잘못 들으면 약올리는 소리고, 상한 감정을 더 상하게 만들 수 있는 말인데도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비한 것은 평안이다. 미래다. 희망이다. 나쁜 감정에 무너져서 일을 그르치지 말라, 견뎌내라’
나오미 다시 한번 보십시오. 남편 잃고, 두명의 아들마저 잃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진 재산 다 허비한 텅빈 인생입니다. 허무하고, 슬프고, 초라하고, 어둡고, 속상한 사람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전능자를 원망할만 합니다. 하지만 작은 불씨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해석하면서 밝아집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감정이 달라집니다. 이 달라짐이 나오미의 미래를 달라지게 합니다. 잘보고, 잘 해석하고, 잘 받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가 또 선물처럼 왔습니다. 살던 대로 살 것이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습관적으로 하지 마십시다. ‘살던 대로 살다 죽지, 뭘 바꿔’. 아닙니다. 살던 대로 살면 안됩니다 살던대로 살다 마치지 마십시다. 주님 앞에 서는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화해, 연민, 환대, 한 뼘이라도 깊어지고, 달라져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서로 마음 다해 응원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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