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0. 주일 설교: 나의 감사를 기다리시는 주님(눅17:11~19). 양은익 목사. 감사절

 

나의 감사를 기다리시는 주님(눅17:11~19)

오늘 감사절에 나누기를 원하는 말씀의 제목은 ‘나의 감사를 기다리시는 주님’입니다. 너의 감사가 아닌 ‘나의 감사’입니다. 또하나, 주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성공’과 ‘만족’이 아니라 ‘감사’라는 것도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를 기대하시는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감사절 주일 아침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제목을 중심으로 두 가지를 묵상하겠습니다.

1. 감사, 중요하다.
첫번째 묵상입니다. ‘감사는 중요하다’. 다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한번 깊게 담으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중요합니다. 그냥 중요한게 아니라 ‘무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나병 환자 10명을 주님께서 치유한 사건입니다. 나병환자 열명이 주님을 보면서 간청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13절).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것으로 봐서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소리에 반응하십니다. 난데없이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가라’. 나병은 그대로 있는데 몸이 나은 다음에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10명은 나병 걸린 몸 가지고 떠납니다. 속는 셈 치고 가보자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웬걸요? 가다 보니 몸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야, 너 깨끗해졌어’. 아니야 너도 깨끗해졌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은혜입니다. 아무 한 것도 없고, 자격도 없는데 나병의 수모와 고통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열명의 나병 환자 전부 나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상황을 보면 주님은 이 열 명이 전부 돌아와 감사하면서 기쁨을 나누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게 보여집니다. 하지만 한명만 돌아와서 감사합니다(15절). 아홉명은 뭔가 바쁜지 그대로 가 버립니다.

17절에 보면 이 장면을 보시는 주님의 아쉬운 탄식이 나옵니다.‘아홉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갔습니까? 이 사람들. 이 사람들이라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감사하다. 고맙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아홉명 어디갔니?’ 화난게 아니라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습니다. 이들의 감사를 못받아서 아쉬운 게 아니라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이 받게 된 구원 사건을 누리지 못한 게 아쉬웠던 것입니다.

19절입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감사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주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 그 동안의 서럽고 낙인으로 가득찬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 변화의 삶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은 ‘손해’를 본 것입니다. 주님과의 깊은 관계, 삶의 새로움을 ‘감사의 실패’로 놓치게 된 것입니다.

감사를 사소하게 보면 안됩니다. 감사는 중요합니다. 감사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감사가 없는 세상은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는 거나 다르지 않습니다. 화해와 사랑은 사라지고, 거짓과 싸움만 가득하게 됩니다. 성경이 감사를 명령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좋은지 모릅니다. 감사가 명령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감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나 혼자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면 감사는 없어서는 안됩니다. 감사가 있을 때 관계가 시작되고, 유지되고, 깊어집니다. 경험하시지 않습니까? 감사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은혜를 베풀었는데 감사가 없습니다. ‘사람이 뭐 저래’. 하나님은 값없이 은혜를 베풀지 모르지만 사람은 감사가 없으면 뒤돌아 설 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관계는 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과 감사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 일 것 같으세요. 어떤게 먼저 와야 합니까? 감사가 먼저 와야 됩니다. 감사가 없으면 사랑도 없습니다. 사랑이 식었다면 꼭 살펴 보십시오. 감사가 식었을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사명과 헌신의 세계 이전에 감사의 세계입니다. 감사가 있어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신앙인들의 입발린 소리도 아니고,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도 아니고, 약자들의 어쩔 수 없는 합리화도 아닙니다. 감사는 신자들이 가질 수 있는 힘이고, 능력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개입하사 하나님이 개입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감사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감사를 과소 평가하면 안됩니다. 고통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감사의 힘은 대단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깊게 공명하여 나오는 감사는 우리를 견디게 하고, 아픈 가운데서도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감사없이 돌아간 아홉명은 감사를 하지 못함으로 이런 기회를 놓쳤습니다. 병이 낫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정도의 세계 밖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게 아쉬웠습니다. ‘아홉은 어디에 갔니!’우리도 이러기 쉽습니다. 은혜받고 더 나가지를 못합니다. 은혜에 기뻐합니다. 근데 그걸로 끝입니다. 감사도, 순종도 없습니다.

2. 잊어버린 감사, 찾아라.
수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두번째 묵상이 필요합니다. 잊어버린 감사, 있다면 찾아라. 살펴 보십시오. 은혜 받고 잊어버린 감사가 있는지.

중세 시인 루미(13세기 Rumi)의 말입니다. ‘과거에 나는 영리했으므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지금 나는 현명하므로 나 자신을 바꾼다’ 맞는 말입니다. 영리한 머리, 좋은 학벌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제대로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부터 바꿔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자신을 바꾸지도 못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자신을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선하게 바꿔야 합니다. 선한 마음이 어디에서 옵니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 옵니다.

우리 시대의 특징이 ① 만족치 못하는 것과 ② 당연히 여기는 것, ③ 불안이라고 합니다. 감사를 막는 큰 장애물들입니다. 세 개 중에 가장 잘하는 게 뭡니까? 다 잘하면 곤란합니다. 당연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산게 내 노력이라 생각하지 마십시다. 머리 좋은게 내 능력이라 생각하지 마십시다. 나라가 선진국 된 것을 우연이라 생각하지 마십시다.

감사로 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슬픔이 막고, 약함이 막고, 억울함이 막고, 실패가 막고, 가난이 막고, 독하게 해야 살아남는 정글같은 세상이 막고, 그 세상의 악이 감사를 막습니다. 감사는 언제나 환경과 처지와 형편의 도전을 받습니다. 감사가 힘든 이유고, 감사를 잊어버리는 까닭입니다.

감사한다는 것, 정말 쉽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깊게 보지 않으면 감사의 샘물은 항상 메말라 있게 됩니다. 감사의 샘물을 흐르게 하려면 ‘범사의 감사’(살전5:18)를 꼭 생각해야 합니다. 범사의 감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작은 은혜를 가볍게 보지 말라는 사인입니다. 살펴 보면 감사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은 감사를 세 글자로 풀어냅니다. 감사는 고마움이다. 어떤 수식어도 달지 않습니다. 그냥 고마움. 이게 감사입니다. 살펴 보면 고마운것 투성입니다. 눈이 가려져서 못보지 눈만 뜨면 고마운 것 투성입니다. 감사는 넘칩니다. 은혜도 넘칩니다.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기에 어떤 사람들보다도 감사와 고마움을 잘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16절에 보면 돌아온 한 나병 환자가 한 위대한 행동이 나옵니다. 돌아온 나병 환자는 세 가지 행동을 합니다. 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②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고, ③ 감사하고.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발 아래 엎드릴 때 나오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분 발 앞에 엎드리는 것.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힘입어 그 분 앞에 나와 엎드리어 경배하며 감사하는 것. 이게 예배고, 이 예배가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살아나게 만듭니다.

감사를 찾고 싶으십니까? 감사-없이도 감사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분의 발 앞에 엎드리십시오. 온전히 예배 하십시오. 함께 모여 예배하고, 매일의 시간에 예배하십시오. 나도 모르게 감사가 보이고, 감사가 나오며, 그 감사가 나를 살려 낼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더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셔야 합니다. 더 귀하게 예배하셔야 합니다. 예배는 드려 주는게 아닙니다. 그런 예배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예배는 내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살고 싶으시지요. 예배 잘 드리세요. 예배하는 자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입니다. ‘평생 드리는 유일한 기도가 감사합니다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감사가 그만큼 귀하고,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말씀 맺겠습니다.지금 감사하기 제일 힘든게 무엇입니까? 제일 불만인거, 속상한게 무엇입니까? 바로 거기서 감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찾아지면 좋겠습니다. 이 감사가 나를 살리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나의 감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아오지 않는 아홉 사람이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를 찾고 회복하는 감사절 아침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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