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31. 주일 설교.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 24: 가까이 할 것, 멀리할 것(요일5:14~21). 양은익 목사

 

가까이 할 것, 멀리할 것(요일5:14~21)

1.
김형영 시인의 ‘건들대봐’라는 시입니다.
나뭇잎은 흥에 겨워 건들대는 거야
천성이 그래 사는 게 즐거운 거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비 내리면 비와 함께
새들이 노래하면
새들의 날개에 얹혀
같이 날아보는 거야

그런 게 즐거움 아니냐고
너도 건들대보라고
죽기 전에 후회 없이
한번 건들대보라고

나뭇잎의 ‘건들거림’은 건방진게 아니고 ‘천성’입니다. 시인은 ‘건들대는’ 나무잎을 보면서 다짐합니다. 자신도 후회없이 ‘건들대 ‘보겠다. 주신 ‘생명’ ‘누리면서’ 살아 보겠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마음에서 요한 사도의 마음을 읽게 됐습니다. 13절에서 요한이 힘들게 살아가는 요한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애정을 품고 전한 말이 뭐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다. 이 생명을 누려보라’. ‘건들대 보라’는 것입니다. 바람도 누리고, 사랑도 누리고, 믿음도 누려라. 누리면 이긴다.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천기누설(天氣漏泄)급의 비밀을 편지를 마감하면서 전하고 있습니다.

2.
영생의 비밀을 전한 요한은 누림을 위한 중요한 조건, 가까이 할 것과 멀리할 것 두 가지를 말합니다. 가까이 할 것은 ‘기도’고, 멀리 할 것은 ‘우상’입니다. 기도는 가까이 하고, 우상은 멀리할 때 영생의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노 사도 요한이 구십 인생 살면서 터득한 두 가지를 묵상하겠습니다.

(1) 기도는 살린다(14~16절)
첫 번째 묵상은 ‘기도는 살린다’ 입니다. 기도가 우리를 살립니다. 마음에 담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살린다면 기도는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삶의 풍경이 바뀌고, 살 맛도 납니다. ‘설마?’ 실감나지 않는 분들은 기도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사인으로 받으시면 됩니다.

바울은 기도를 ‘기도’와 ‘간구’, 둘로 구분합니다. 엡6:18.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간구’는 자신의 문제를 지향하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지향점이 다르지만 둘 다 있어야 합니다.

간구는 간절히 請함입니다. 부족한 게 있고, 원하는 게 있기에 간구합니다. 주님도 간구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7:7.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주실 것이고, 찾을 것이고, 열릴 것이다. 간구 없는 기도는 없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간구가 필요하지만 간구만 하면 안됩니다. 간구만 있으면 기도가 협소해 집니다. 내 문제만 크게 보이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이끄심의 더 큰 그림을 놓치게 됩니다.

간구의 위험은 응답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기도는 중단되고, 급기야 신앙마저 위태로워 집니다. 간구로 인해 오히려 기도가 중단됩니다. 이 문제가 상당히 크게 다가 옵니다. 간구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간구해야 하고, 청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간구만 있으면 안됩니다. 문제가 클수록 하나님을 지향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바라보면서 내 입장을 주장하기 전에 주의 뜻을 구하고, 은총과 자비를 구하며, 이끌어 주심을 소망하면서 탄식 많던 시편 기자들 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때 주시는 은혜가 큽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고, 놀라운 용서가 있습니다. 인내가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받게되고, 구하게 됩니다. 간구가 응답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기도를 통해서는 가장 큰 응답, 하나님 자신을 받게 됩니다.

기도가 나를 살린다 할 때 기도는 간구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도가 나를 일어서게 하고, 살립니다. 원하는 바가 응답되면 신나고, 살아나지만 유효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문제는 계속 일어나고, 그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응답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생각처럼 잘되지 않습니다. 간구와 기도 둘 다 필요합니다. 간구로 시작하지만 간구를 넘어서 기도로 가야 합니다. 넘어설 때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하는 오래된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안하면 기도할 게 없습니다. 무엇을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지향하는 기도를 배우면 항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 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평안할 때 기도가 더 깊어집니다. 나만 기도하지 않고 중보 기도까지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고, 감사 할 일, 찬양 할 일, 웃을 일이 많아집니다. 삶을 누리게 됩니다. 기도가 살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 사도는 기도에 대한 자신의 경험 두가지를 들려줍니다. 14,15절.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 16,17절. 중보 기도로 죄를 범한 형제가 다시 생명을 얻게된다. 14절 보십시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이 구절은 요15:7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 봐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두 구절 다 무엇을 구하든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구해야 합니다. 이 조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구하든 다 이루어 주십니다. 하지만 그 뜻 안에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구하면 허황된 것을 구하지 않고, 합당한 것을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Yes든, No든, Wait든 우리의 판단을 넘어서는 응답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을 깊게 찾고, 지향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 때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되고,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전체 맥락을 보게 하십니다. 무엇이 정말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기도와 간구. 둘 다 균형있게 잘하면 좋겠습니다. 그 기도가 우리를 살려냅니다.

(2) 우상은 죽인다(17~21절)
두번째 묵상은 ‘우상은 죽인다’ 입니다. 기도는 살리지만 우상은 죽입니다. 나를 죽이고, 나와 관련된 사람을 죽입니다. 우상은 신앙인들을 죽이는 킬러(Killer)입니다. 요한이 우상을 얼마나 심각하게 봤으면 편지의 마지막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쓰면서 마쳤겠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우상을 멀리하십시오(공동, 5:21)

요한 사도만 우상을 멀리하라 말한 것 아닙니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으로 부터, 선지자들, 사도들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한 말은 우상을 섬기지마라. 만들지말라. 속지마라. 경고한다 떠나라. 그런데도 버리지 않다가 망합니다.

우상은 흔히 하는 말로 내가 만든 신입니다. 가짜 신입니다. 가짜 신이 신이 되니 진짜 하나님은 밀려나고, 가짜 신이 내 마음의 중심에 앉아 지배합니다. 모든 게 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있으면 편안해지고,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고, 의지가 되고, 없으면 불안한 모든 것은 다 우상 후보 입니다. 한 개가 될 때도 있고, 여러개가 될 때도 있습니다.

내 마음의 우상 찾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네 단어만 살펴보면 금새 나옵니다. 실망. 불평, 걱정, 화. 네 단어입니다. 그것 때문에, 실망이 크고, 불평이 많고, 걱정이 태산이고, 화를 참아내지 못하면 우상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게 있나 없나 살펴 보십시오. 가장 귀한 것, 가장 소원하는게 우상이 됩니다. 소원하는 거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소원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소원으로 인해 하나님이 밀려나는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밀려나야 할 존재가 아닌데, 소원하는 우상으로 인해 밀려나게 됩니다. 밀려남의 위험성을 우리가 알까요? 알면 밀어내지 않겠지요. 우상은 죽인다. 가능한 일찍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부터 보면 ‘우리는 안다’(We know)는 표현이 18절, 19절, 20절. 세 번 연속해서 나옵니다. 18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을 안다. 19절.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안다 20절.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21절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답게 ‘우상을 멀리하라. 우상에 눈돌리지도 말고, 우상에 지배 당하지 말라’

(3) 기도와 우상의 비교
기도는 하나님을 구하고, 우상은 하나님을 버립니다. 기도는 가까이 하고, 우상은 멀리해야 합니다. 기도를 가까이 하고, 우상을 멀리하는 삶은 다릅니다. 기도는 영생을 누리게 하고, 우상은 삶에 매이게 합니다. 기도는 어둠을 빛으로 바꾸지만, 우상은 빛을 어둠으로 바꿉니다.

기도는 해같이 빛나게 하고, 우상은 먹구름을 몰고 옵니다. 기도는 감사와 만족을 주지만, 우상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기도는 웃음을 주지만, 우상은 잠시 기쁘다가 뼈아픈 눈물을 줍니다. 기도는 평화를 주고, 관계를 좋게 하지만 우상은 불화를 주고, 관계를 나쁘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도, 사람도 친밀하게 만들지만 우상은 하나님도, 사람도 멀어지게 만듭니다. 기도는 정의를 따르게 하지만 우상은 불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성령을 따르지만, 우상은 악령을 따르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만 우상은 세상의 뜻을 따르게 합니다.

둘은 많이 다릅니다. 요한 사도가 담대히 기도하고, 우상을 멀리하라 한 이유 아니겠습니까? 노 사도의 바람대로 기도는 가까이 하고, 우상은 멀리하십시다. 나뭇잎 흥에 겨워 건들대듯, 매 순간의 삶을 우리도 후회없이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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