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3 주일 설교. 해질녘에 있는 요한일서 묵상 20: 위선 관리 2(요일4:19~21). 양은익 목사

 

위선 관리 2(요일4:19~21)

1.
한국의 예레미야 선지자로 불렸던 이용도(1901~1933) 목사님의 ‘거룩한 구걸’이라는 기도 마지막 대목입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허위의 이 땅 위에 진실한 마음으로 오시옵소서’(부분).

‘구걸’은 나에게 없기에 ‘있는 이’에게 깊게 매달리면서 구하는 은혜입니다. 목사님은 허위와 위선, 거짓이 가득한 조국을 보면서 탄식의 마음을 가지고 구걸하신 것입니다. 주님, 이 땅과 이 백성에게 진실이 필요합니다. 진실을 주십시오’. 시간이 많이 지난 기도지만 저는 이 기도에 깊은 공감이 있습니다.

위선에서 진실로. 위선은 거짓과 내로남불이 대세가 되가고 있는 시대에 교회와 신앙인들이 거부해야 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위선을 관리해야 합니다. 위선을 싫어하자. 진실을 추구하자. 겉만 보지 말고 안을 보자. 지난 주에 묵상한 위선입니다. 오늘 한번 더 묵상합니다. 오늘 위선에 관한 묵상은 ‘척척척’이라는 노래를 보면서 하겠습니다.

겸손한 척, 거룩한 척, 믿음 있는 척, 너도 속고 나도 속고 모두가 속는 나는야 크리스챤. 교회 나와 은혜받고 돌어서면 땡. 너도 취해 나도 취해 세상에 취해. 척척척 연기하지 마 다 속여도 우리 주님 못 속여. 말씀 기도 성령으로 척척 채워라.

회개한 척, 거듭난 척, 믿음 있는 척, 교회 뜰만 밟으면서 모두가 속는 나는야 주일 지킴이.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나만 잘살면 땡. 돈이좋아 명예좋아 세상이 좋아 열심히 믿었으니 나는 성공할거야. 척척척 연기하지 마. 다 속여도 우리 주님 못 속여. 말씀 기도 성령으로 척척 채워라.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위선의 이유와 위선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노래에서 두 가지를 묵상하겠습니다.

2. 위선 관리.
(1) 척을 버리자.
첫 번째 묵상은 ‘척을 버리자’입니다. ‘척’을 버려야 위선이 관리됩니다. 척은 없는데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입니다. 시늉만 내는 게 척입니다. 노래에 나온 ‘척’은 5개입니다. ‘겸손한 척, 거룩한 척, 믿음 있는 척. 회개한 척, 거듭난 척’.

겸손한 척이라고 했는데, 겸손한 척은 겸손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입니다. 겉은 겸손인데 속은 교만입니다. 위선입니다. 다른 척도 다 똑같습니다. 믿음, 회개, 사랑, 용서, 기도, 예배. 다 척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척할 때가 있습니다. 알지만 ‘모르는 척’할 때도 있습니다. 아프지만 걱정할까봐 ‘건강한척’ 할 때도 있습니다. ‘못본척’도 하고, ‘자는 척’도 하고, ‘친한 척’도 합니다. 자신과 상대방을 위해 ‘척’하면서 관계와 삶을 관리해 나갑니다.

‘척’이 필요없다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척’은 신앙의 영역에서는 죄가 되고, 위선이 될 수 있기에 예민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미워하는데 사랑하는 척하고, 예배 드리는데 예배 드리는 척만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잘못입니다. 신앙적인 척은 적당히 넘어가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척만 한다면 어떻게든 ‘척’을 버리고 ‘정말’ 사랑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물론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21절 보십시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 사도가 사랑론의 결론으로 내린 명제입니다. ‘하나님의 뜻(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모습이고, 지향해야 할 목표입니다.

지향하는 목표와 수준까지 가는데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게 맞지만, 어느 누구도 하루 아침에 미움 다 버리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지향하고 있더라도 현실은 미움과 증오, 자책과 후회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라 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나님 사랑, 형제 사랑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지만, 현실은 하나님도, 형제도 사랑할 수 없게 하는 일들로 꽉차서 미움을 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랑이라는 명분과 미움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자책만 하셨습니까? 아니면 척하셨습니까? 자책이 많으셨습니까? 척이 많으셨습니까? 목표에 미달하는 자신을 보면서 자책할 수 있고, ‘척’할 수 있지만, 둘 다 해결책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솔직함’입니다.

자신의 미움과 부족함을 감추고, 억압하게 되면 ‘위선’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위선은 더 큰 자책과 상처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보는 것입니다. 미움이 가득하면 미움이 사라지지 않는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왜 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미움 밖에 할 게 없는지, 내 삶을 이렇게 만들어 가는게 맞는 것인지? 벗어나야 한다면 뭘 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물러서지 말고 정직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아닙니다. 기쁨, 믿음, 기도, 전부 솔직하게 봐야 합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부족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나의 곤란한 문제들, 부끄러운 모습들을 헤쳐 나갈 힘을 주사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되고, 원망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그런 자리까지 끌고 가십니다. 부족함은 척으로 풀면 안됩니다. 영적인 실력으로 풀어야 합니다. 관건은 실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실력은 어떻게 클까요? 위선을 풀어내는 실력은 집에서 큽니다. 두 번째 묵상입니다.

(2) 신앙생활, 집에서 잘하자.
위선 관리, 두 번째 묵상은, ‘신앙생활, 집에서 잘하자’입니다. 중요한 묵상입니다. 집에서 어떤 신앙생활 하고 있는가? 묵상해 보십시오. 위선은 집에서 신앙생활 잘 하면 잘 관리 할 수 있습니다.

노래에 보면 ‘척’하는 주인공은 교회에 나와 은혜받는 주일 지킴이입니다. 하지만 집에만 가면 어떻게 됩니까? 돌변해서 세상이 좋아, 세상에 취해 받은 은혜 전부 ‘땡’ 되고, 나오는 것은 ‘척’ 밖에 없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위선은 영적인 실력이 있어야 관리 할 수 있는데 영적인 실력은 교회 나오는 것만으로는 쎄지지 않습니다. 예배가 중요하고, 예배의 은혜가 커도 예배+알파가 있어야 실력이 쌓입니다.

주일의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면 그 받은 은혜를 집에서, 자신의 삶에서, 목사가 아니라 스스로 내면화 시키고, 다져 나갈 때 실력이 늘고, 그 때 위선과 척은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집’에서 잘해야 됩니다.

신앙의 영역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둘로 나눕니다. 공적 영역은 교회와 함께 하는 신앙이고, 사적 영역은 개인적으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둘 다 필요하고, 두 영역이 균형을 이룰 때 풍성한 신앙의 삶이 나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공적인 영역만 열려 있습니다. 주일에 교회 나와 예배 드리는 것으로만 신앙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는 중요하지만, 사적인 공간인 여러분의 집에서, 생활에서 스스로 하는 신앙의 삶이 없게 되면 신앙은 절대 내면화(=내 안에 자리 잡힘) 되지 않습니다. 내면화 되지 않은 신앙은 활력이 떨어집니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입니다. 성숙이 더디고,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

예언서에서 보십시오. 불의가 만연할수록 사람들은 더 성대하고, 화려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착각합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고. 자신들의 구린내 나는 삶을 한 시간의 예배로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배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리 없다고 말한 사람들이 예언자들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선포했던 것 처럼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성대한 제사가 아닙니다. 일상의 삶에서, 집에서, 삶의 터전에서, ‘정의를 실천하고,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고, 조심스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미6:8. 공동)을 원하십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15:22)는 말씀은 지금도 유효한 신앙의 원리입니다. 위선의 관리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 깊게 만날 때 관리될 수 있습니다. 위선뿐만 아닙니다. 형식적인 신앙, 욕망에 찌든 신앙, 힘빠진 신앙을 극복하려면 집에서, 스스로하는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집에서 하는 신앙생활, 거창하지 않습니다. 말씀 묵상하고, 묵상한 말씀으로 기도하고, 하나 더 한다면 좋은 책을 깊게 읽는 것입니다. 말씀, 기도, 독서가 개인 신앙생활의 중심입니다. 이 세가지를 날마다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주시는 은혜가 크고, 이게 있을 때 신앙의 실력이 늘어납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꼭 하면 좋겠습니다. 바쁜분들이 더 하십시오. 힘든 분들이 더 하십시오. 실력이 늘고, 답을 발견 할 것입니다. 신앙의 삶이 내면화 할수록 척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을 확보 할 수 있습니다. 위선에 극에 달하던 때에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4:6). 산다고 합니다. 찾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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