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1. 주일 설교.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 12: 아바의 자녀(요일3:1~3). 양은익 목사.

 

해질녘에 읽는 요한일서 묵상 12: 아바의 자녀(요일3:1~3)

1.
‘나는 나를 어떻게 보는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다른가?’를 묻는 물음을 정체성 물음이라고 합니다. 어떤 답을 하는 가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껏, 어떤 자아상,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 오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노년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자아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구십 다된 노년의 요한이 당당하게 교회와 배교자들을 향해 나설 수 있었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 들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기 쉬운데 요한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견고하고, 담대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를 ‘아바의 자녀’라는 더 정감나는 말로 바꿨습니다. ‘아바’는 주님이 쓰신 단어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아바’로 부르셨습니다. ‘아바’는 ‘아버지’라고 하는 아람어입니다. 이 ‘아바’라는 말 속에 하나님을 향한 주님이 마음이 오롯히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기도 중에 ‘아바’를 불렀고, 힘들 때 ‘아바’께 나가 힘을 얻었습니다. 주님은 아바의 자녀였고, 그 아바의 아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바의 아들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아바의 아들’ 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이 ’신’’이 아니라, ‘아바’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은 멀고, 무섭지만, ‘아바’는 가깝고, 사랑이 넘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요한만이 아니라 우리도 아바의 자녀로, 아바의 아들로부르십니다.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서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바의 자녀’입니다. 아바의 아들, 아바의 딸이 우리의 신분이고, 신원이고,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아바의 자녀’ 처럼 살아야 하는 게 우리들입니다. 세상에 수 많은 ‘자아상’이 있지만 ‘아바의 자녀’라는 신분만큼 값진 자아상은 없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거대하고 웅장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하나님이 아버지입니다. 실감하면서, 자부심을 품고, 이 존귀함의 무게를 느끼면 좋겠습니다.

2.
‘아바의 자녀’라는 신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부모의 이름 안에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듯이, 아바의 자녀라는 이름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있습니다. 1절 보십시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이게 아바의 자녀인 성도의 신분이고, 자아상입니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수도사, 작가, 칠층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누군인가? 묻는다면 나는 그리스도께 사랑받는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신에 대한 정의를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로 완전히 바꿔라. 다른 모든 정체는 허구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진실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43:1, 4절)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패망했지만 여전히 아바의 백성이고, 자녀이며 보배롭고 존귀한 아바의 자녀들입니다. 그 사람들 뿐이겠습니까? 아바의 자녀인 우리도, 부족함이 차고 넘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들입니다. 설마, 그러지 말고, 가슴 활짝 열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십시오.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이게 하고 싶은 말 1번은 ‘사랑한다’ 입니다. 주님이 세례받을 때 하늘에서 들은 음성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마3:17)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존귀함이 여러분의 인생 길에 힘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3.
‘아바의 자녀’라는 이름이 주는 두 번째 뜻이 2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고, 장래에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 신분이 보장하는 ‘아름다운 미래’가 있습니다. ‘아바의 자녀’들이 맞이하는 미래는 주님과 함께 맞이하는 ‘영광스러운 미래’입니다. ‘밝은 미래’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올지, 어떤 성공을 할지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의 마지막은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노년의 삶을 지나가는 것이 힘겹고, 벅찰 수 있어도 여러분을 기다리는 장래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장래입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지금의 고난, 지금의 부족함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장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바의 자녀’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영광스러운 ‘상속자’입니다.

4.
그러므로 아바의 자녀들인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하고,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요한도 3절에서 이 얘기를 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아바의 자녀답게 살라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바의 자녀들은 존귀한 이름에 걸맞는 삶을 확보해야 됩니다. 사랑을 받고, 미래가 보장된 사람답게 每事가 아바의 자녀다우면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담대하고, 선하고, 넉넉하고, 깊게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보고 대하는 태도가 아바의 자녀다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봐 주신다면 나도 나 아닌 너를 볼 때 그렇게 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안목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하십니까? 아바의 자녀들이 사람을 보는 눈은 두 가지여야 합니다.

첫째, 최선을 다해 좋은 점과 선한 점을 발견해 내는 게 아바의 자녀들이 사람을 보는 안목입니다. 최선을 다해 선한 것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하나의 단점과 한번의 기분 나쁨 때문에 관계를 끊고 돌아서는 것은 아바의 자녀들에게는 없어야 합니다.

둘째, 아바의 자녀들은 사람을 귀하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잣대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바의 자녀들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사람은 오십보 백보입니다. 판단하고 배제 하는 것 보다 받아 들여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게 귀합니다. 점수를 짜게 주지 말고 후하게 주십시오. 하나님의 후한심 때문에 아바의 자녀가 된 거라면 우리도 후한게 맞습니다. 이 후함이 서로의 길을 열어주고,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바의 자녀라는 놀라운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되십니다. 행복하셔도 되고,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 영광스러운 이름을 품고 사시는 여러분의 인생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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