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갈림길 앞에서(시1:1~6)
1.
오늘부터 기도로 가득한 시편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기도가 깊어지고,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오늘 나눌 시편은 시편을 여는 시편인 시편 1편입니다. 시편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배경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후기 시대(BC2500)에 원망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시편으로 보고 있습니다.
1편에 보면 반대되는 두 개의 길이 나옵니다. 하나는 의인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악인의 길입니다. 지혜자가 요청하는 길은 당연히 ‘의인의 길’입니다. 살기 힘들다고 ‘악인의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인의 길로 가는 이들이 많았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이 주는 재미와 이득이 있기 때문에 명분만으로는 의의 길을 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에 ‘끝없다’는 말을 붙이게 됐는데, 우리는 사는 날 동안 ‘계속’, ‘끝없는’ 갈림길 앞에 서게 됩니다. 인생을 BCD라고 합니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사이에서 끝없는 선택(Choice)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갈림길이 앞에 있기에 선택해야 하고, 선택했으니 선택의 결과를 고스란히 떠 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선택을 잘하면 기쁨이 넘치고, 잘못하면 후회막급, 힘들게 됩니다.
중요한 선택일수록 선택의 결과는 엄중합니다. 선택의 결과를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계산을 잘하고, 위험 요인을 제거하고, 계획을 세워서 선택해도 내 뜻 대로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짐이고, 어렵습니다.
2.
지금까기 어떻게 선택을 해 오셨습니까? 자신의 선택에 점수를 주면 몇 점 정도나 주시겠습니까? 선택할 때 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을 하셨습니까? 감으로만 하셨습니까? 계산 열심히 했습니까? 선택을 할 때 선택을 하게하는 첫번째 조건이 있다면 어떤 조건입니까?
사람들이 잘 쓰는 선택 기법 3가지가 있습니다. 후회가 적은 쪽, 포기해도 되는 쪽, 선택의 위험이 적고, 혜택이 많은 쪽으로 선택합니다. 중요한 선택의 조건들입니다. 선택의 결과가 엄중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선택은 이런 조건만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선택에는 선택의 기준과 선택의 방향이 중요합니다.시편 1편의 지혜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게 이것입니다. 갈림길 앞에 설 때 성공과 이익만을 셈하지 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시편 1편 보십시오. 대조가 선명합니다. 시편 기자가 강조하기 위해서 선명하게 대조 시킨 것 같습니다. 의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의인에게는 말씀(토라)이 있고 말씀이 있기에 나무처럼 견고하게 뿌리 박혀, 하는 일이 형통하며, 여호와의 인정과 복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반대입니다. 악인은 얕은 꾀로 악을 도모하고, 벼와 같이 이리 저리 휩쓸리다가 결국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악이 주는 유익과 혜택이 많지만 악인의 길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지 않을 수 있습니까? 2절에서 시인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악이 주는 달콤한 유혹을 피하고, 의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말씀과 그 말씀이 묵상된 사람, 말씀으로 삶과 정신과 마음이 형성된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 아닙니까? 말씀이 묵상돼 말씀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선택의 순간에 말씀이 살아나, 하나님이 인정하고 기뻐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씀들이 살아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고, 방향 아닙니까?
갈1:10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기억되는 말씀, 묵상된 말씀이 많을수록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확신을 가지고 선택 할 수 있게 됩니다.
3.
선택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습니다. 잘못하는 선택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선택은 과정이지 결론이 아닙니다. 잘못된 선택도 바꿀 수 있고, 만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하나님이 뭔가를 시키실 때 준비됐다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세는 애굽을 가라고 할 때 ‘나는 말 주변이 없다. 혀가 둔하다. 가지 못한다'(출4:10) 하면서 거절합니다. 기드온은 힘이 없다고 거부합니다.(삿6:15) ③ 아브라함은 늙었다고 자신에게 자식을 준다는 하나님의 선택을 비웃습니다(창17:17) ④ 예레미야도 자신은 어리고 말 못한다고 거부합니다(렘1:6) ⑤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하나님이 선택한 길을 마다합니다.(사6:5) ⑥ 에스더는 왕궁의 예법을 들이밀면서 왕 앞에 나가기를 거절합니다(에4:11) ⑦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아 주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떠납니다(마19:22)
하나같이 거절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을 통해 큰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의 선택이 절대적인 것 같지만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시편37편의 말씀처럼.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그 길을 기뻐하십니다. 시 37:23~24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 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 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새번역) 그대로 믿고, 수긍하면 좋겠습니다. 의의 길을 가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길을 간다면 설사 선택으로 인해서 실패하고, 고생한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고, 복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4.
그리스도인들의 선택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은 결과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결과에 집착할 때 잘 쓰는 말 있습니다. ‘~했더라면’. 그 때 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그 직장에 들어갔더라면, 그 때 옮겨더라면, 그 때 집을 팔았더라면..아쉬운 마음에 말할 수 있지만 결국은 신세한탄이고, 속상함이고, 과거에 묶어 두는 것입니다. 설사 그 때 그렇게 했더라도 글쎄요, 내가 바로 서있지 못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얼마나 많이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제도 선택했고, 오늘도 선택하고 있고, 내일도 선택할 것입니다. 젊을 때도 선택하고, 나이 들어서도 선택할 것입니다. 사는 날 동안 끝없이 나타나는 게 갈림길이고, 선택입니다. 갈림길 앞에 설때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혜자가 권면하는 것은 우리들이 가진 경험, 예리한 판단, 계획을 말하지 않고 말씀을 말합니다. 말씀을 품은 경험, 말씀을 품은 계획,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선택을 하라고 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의인의 길이고 복된 길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6절의 결론이 좋고, 믿음직스럽습니다.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보살피신다(시1:6. 공동)
우리가 갈림길의 선택 앞에서 ‘말씀’을 따르는 이유입니다. 악한 자의 길은 결론은 좋지 않습니다. 멸망한다는 말을 ‘하는 일이 안되고’, ‘실패한다’는 뜻으로 자꾸 보는데 그런 실패가 아니라 ‘속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과 영혼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화려해 보여도 악한 자의 속은 멸망한 것이고, 실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의 결과가 어떠하든 의인(말씀을 따라 사는 이)은 하나님께서 보살피십니다. 남편이 보살피고, 아내가 보살피고, 부모가 보살펴고, 자녀가 보살피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살피십니다. 아멘. 실감나게 느껴지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이 결정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결정하고, 하나님이 보살핀다는 사실, 마음에 담고 하나님께 견고한 뿌리를 내리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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